작가가 주인공인 소설, 작품 속 작가의 모습은?

2012. 7. 5. 09:34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너희의 젊음이 노력해서 얻은 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도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PLAY CGV '상반기 영화, 웃고울린 명장면·명대사 10' -



국내 최대 멀티플렉스 체인인 CGV는 한 언론을 인용하며 2012년 상반기 명대사 중 하나로 위와 같이 영화 ‘은교’의 대사를 꼽았습니다. 극중 제자의 시상식에서 시인 이적요가 제자의 수상을 축하하면서 인용한 문구인데요. 요즘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 스크린셀러가 늘어나고 있죠? 그중에서도 ‘은교’처럼 책 속 주인공으로 작가가 직접 등장하는 작품이 눈에 띕니다. 과연 대 시인 이적요는 어째서 제자를 축하하는 자리에 이런 적적한 말을 남겼을까요? 작가들이 써 내린 작품 속의 작가, 함께 살펴봐요.^^




[출처-네이버 영화]





작가도 욕망한다 – 은교, 박범신


영화 ‘은교’는 ‘촐라체’, ‘고산자’로 유명한 박범신의 소설 ‘은교를 원작으로 합니다. 이 세 작품은 이른바 갈망3부작이라고 하지요. 


원작은 영화와 달리 이적요가 사망한 후 변호사가 그의 유언대로 노트를 공개하려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노트에는 당대에 존경 받는 대 시인이 17살의 소녀 한은교를 사랑했고, 촉망받던 제자를 자신이 죽였으며, 심지어 상을 받은 제자의 소설들 역시 자신이 쓴 것이었다는 걸 고백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당대의 시성이라고 추앙받지만 이적요는 자신의 늙음과 대비되는 은교의 젊음을 보며 시에 필적하는 아름다움과 관능을 느꼈고, 다시는 가질 수 없는 그 젊은 시간들을 갈망했습니다.




[출처-인터넷 서점 알라딘]




늙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범죄'가 아니다, 라고 나는 말했다.

노인은 '기형'이 아니다, 라고 나는 말했다.

따라서 노인의 욕망도 범죄가 아니고 기형도 아니다, 라고 또 나는 말했다.

노인은, 그냥 자연일 뿐이다.

젊은 너희가 가진 아름다움이 자연이듯이.

너희의 젊음이 너희 노력에 의하여 얻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노인의 주름도 노인의 과오에 의해 얻은 것이 아니다.


박범신 ‘은교’ 中




박범신이 그린 ‘은교’ 속 작가인 이적요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위대한 시인이자 작가라고 떠받들어지지만, 스스로는 젊음 앞에 초라하고, 여자의 싱그러운 아름다움에 자연스럽게 끌리는 초라한 남자일 뿐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을 갖고 싶어하는 그 갈망과 이를 자신이 가진 시간으로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양가적인 감정을 영화의 대사와는 달리 위와 같이 긴 문장을 통해 시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작가도 가족이다 – 즐거운 나의 집, 공지영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처럼 눈물을 쏙 빼놓은 영화들의 원작 소설을 지은 공지영의 작품 역시 주인공으로 작가가 등장하기도 한답니다. ‘즐거운 나의 집’ 에서는 아얘 작가인 공지영 본인 가족의 이야기를 소설로 만들었는데요. 수차례 거듭된 이혼, 생활인으로서 마감에 신경질을 내는 작가의 모습, 딸에 대한 미안함 등 생활인이자 엄마 그리고 여자로서의 작가가 가족 속에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출처-인터넷 서점 알라딘]




“너한테 아직 말하지 못한 게 있어. 미안해, 엄마…… 이혼했어.” 

담담한 말투였는데 엄마는 말끝에 주르르 눈물을 흘렸다. 이럴 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나는 들고 있던 가방을 가슴에 꼭 안았다. 

“……근데 왜 나한테 미안해?”

엄마는 눈물을 흘릴 때면 늘 그렇듯이 휴지를 찾아서 코를 풍풍 풀다 말고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공지영 ‘즐거운 나의 집’ 中




위에서 소개드린 ‘은교’와는 달리 아픈 상처를 입었으면서도 발랄하게 살아가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가 참 힘이 되는 소설이지요. 상처를 이겨낸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건강한 낙관주의라고 할까요? 그녀는 ‘나를 키운 건 팔할이 상처’라면서도 ‘오늘 행복하지 않으면 영영 행복은 없어.’라고 가족과의 일상 속에서 행복을 찾는 생활 작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작가도 사람이다 – 태연한 인생, 은희경


무수한 명대사로 꾸준히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은희경의 ‘태연한 인생’에서도 주인공으로 작가가 등장하죠. 소설가인 요셉은 냉소와 위악으로 무장했어요. 예술가로서의 자의식에 충만하고 생활을 우습게 알며 이데올로기를 비아냥대죠. 모든 관계에서 자유롭고자 하지만, 작가로서의 그의 현실은 자신을 둘러싼 뻔한 통속 속에 작품 한 자 못 쓰는 퇴물 작가죠.




[출처-인터넷 서점 알라딘]




완전히 맛이 가려면 몇 단계가 더 남았다고. 그게 뭔데요? 예술혼인지 뭔지를 불태운다고 수선 피우던 놈들이 그다음 하는 짓이 있지. 글이 안 써져 고민하다가 짐 싸들고 떠나는 작가 이야기 말야. 여행지에서 또 반드시 누구를 만나지. 그런 소설은 대개 독백이 길고 대화도 장황해. 뜻이 애매한 관념적 문장도 많고. 그러고는 예술가소설이라고 갖다붙이는 거야. 


은희경 ‘태연한 인생’ 中





힘겨운 자기자신을 지키기 위해 일부러 주변에 날을 세우고, 자신도 제대로 할 수 없으면서 아무에게나 허세를 부립니다. 마치 직장 생활과 생활에 치인 현대인 같지 않나요? 작가라면 마치 하늘 위의 신선처럼 이슬만 먹고 사는 고매한 사람이란 이미지를 갖기 십상이지만 알고 보면 작가도 인생에 태연하게 대처하기 힘겨워 하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보여준 소설이랍니다.


어떠셨어요? 생각보다 작가가 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작가들도 작품 숫자만큼이나 다양하죠? 하지만 그들 역시 우리와 같은 희로애락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써낼 수 있는 것이겠죠. 이번 여름휴가에는 오랜만에 시원한 곳에서 느긋하게 글로 풀어낼 수 있는 아름다움과 함께 하면 어떨까요? 그리고 그 감상을 블로그나 SNS에 글로 적어 보세요. 여러분이 바로 작가가 되는 순간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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