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8. 23. 09:42ㆍ다독다독, 다시보기/미디어 리터러시
매일 아침 신문을 읽으며 오늘은 어떤 기사를 아들과 함께 읽는 ‘기사 한 꼭지’로 선정할까 신이 난다. 군대에 보낸 아들 편지에 담을 기사를 고르는 일은 신문 읽기의 즐거움을 더한다. 스마트폰과 트위터 등 SNS 시대에 아들과 편지로 소통하면서 나는 ‘신문 러브레터’를 보내는 특별한 엄마가 되었다. 지금 사랑하는 아들을 군대에 보낸 엄마들에게 ‘신문 러브레터’ 를 보내는 아날로그식 멋진 사랑법을 소개하고 싶다.
'신문 러브레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선생님, 요즘도 아들에게 편지 쓰나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지금쯤 상병 달았겠네요?”
“네.”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군대 간 아들의 소식을 물었다. 작년에 아들이 입대하고 나서 내가 훈련소로 매일매일 편지 쓴다는 소식을 듣고, 본인도 군대에 다녀온 경험이 있다면서 가족 특히 엄마의 편지가 큰 격려가 된다고 했다. 서울에서 공군 훈련소가 있는 진주까지 특기학교 기간 동안 두 번이나 왕복 14시간을 걸려 면회 다녀왔다니 대단한 엄마라고 치켜세웠다.
[출처-서울신문]
그러고는 아들이 훈련소를 수료하고 특기학교 기간 동안까지도 거의 매일 아들에게 러브레터를 보내는 엄마의 극성(?)에 그분은 내게 농담 한 마디 던지기도 했다.
“여자 친구도 아니고 엄마가 석 달 동안 매일매일 편지를 보내면 아마 난 탈영했을 거예요.” 라고 말이다.
“여자 친구가 없으니 엄마라도 격려의 편지를 보내야죠.”
대답했으나 극성은 극성이었나 보다. 훈련소 홈페이지에 가족 한 명당 한 편씩 쓸 수 있는 인터넷 편지는 아빠 담당 시키고, 딸 아이랑 나는 식탁에 앉아 밤마다 손편지를 썼다. 칠순의 외할머니도 손자에게 삐뚤삐뚤 위문 편지를 썼다. 딸 아이는 오빠에게 몇 통 편지를 쓰더니 엄마 뭐 써 하면서 편지 쓸 내용이 없다고 투덜댔다. 오빠가 너의 편지를 받으면 얼마나 기쁘겠니? 엄마 편지보다 더 반가울 거야 라고 하면서 열심히 쓰라고 재촉했다. 그러면 딸 아이는 여자 친구 편지도 아니고 엄마 편지를 매일 받으면 군대에서 오빠 친구들이 오빠를 마마보이로 알거야 하면서 딸 아이는 오히려 나의 편지 쓰기를 말렸다.
절절한 사랑과 그리움을 담아 훈련소 6주간의 편지는 그럭저럭 잘 썼다. 하지만 올 것이 오고 말았다. 나 또한 가족의 안부와 아들의 안부 묻기, 집안의 사소한 이야기 재밌게 부풀리기 등 쓸 레퍼토리가 점점 똑같아지기만 했다.
유치환의 ‘행복’ 시 구절처럼 우체국에 가서 총총히 우표를 사고 그리운 이에게 편지를 쓰고……. 그 즐거움에 빈 사연을 보낼 수는 없는 터. 예쁜 편지지에 담을 내용을 고민해야 할 수 밖에 없었다. 에궁! 이 녀석 여자친구 하나 안 만들고 군대 갔니 하면서 속으로 투덜대기도 했다. 엄마로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편지 쓰기가 가장 쉬웠어요'라고 말할 수 있다면, 직업인으로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은 신문 읽기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래! 기사 선물을 보내는 것이다. 이후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는 점점 더 두툼해졌다. 어떤 편지에는 스포츠지에서 유머를 한 꼭지 스크랩해서 보냈다. 또 어떤 편지에는 귀감이 될 만한 인물 기사를 스크랩하고, 내가 어떤 감동을 받았는지 또박또박 적어서 보냈다. 36.5℃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신문에서 찾고 또 찾아서 편지에 담았다. 광주 비엔날레 기사처럼 미술 관련 기사도 디자인을 전공하는 아들에게 정보가 될 것이라 생각해서 아낌없이 편지로 보냈다.
아들이 준 선물, 국방일보
나의 ‘신문 러브레터’가 속속 배달될 즈음 아들이 훈련소를 수료하고 1박2일 격려 외박을 나왔다. 아들의 푸른 제복에 완전 홀려 뜨거운(^^) 포옹을 하려는 순간 아들은 자그마한 가방에서 신문 한 부를 꺼내 내 손에 건넸다.
“엄마, 선물이에요.”
받아 보니 국방일보였다.
“엄마는 여러 신문 보시지만 국방일보는 처음 보시죠?”
참 귀한 선물이다. NIE지도사, 미디어교육지도사로 일하는 엄마를 위해 7시간을 품고 왔을 아들의 선물은 최고였다. 글자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신문 읽기를 시작한 녀석은 언론사의 시사퀴즈 대회 입상, 한국신문협회 신문 패스포트 공모전 입상 등 NIE 대회에 입상해서 엄마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하지만 국방일보는 신문 읽기 교육을 중시하며 키운 엄마에게 아들이 준 가장 큰 선물이 되었다.
“혹시 입대 동기들이 엄마 편지 보고 뭐라 안 하던? 누가 잘못 보면 신문 기사만 잔뜩 들어있는 줄 착각할지 모르잖아? 호호.”
“기사 선물이 든 편지가 정말 엄마 편지답잖아요.”
아들은 미소를 지었다.
‘기사 한 꼭지’는 너를 위해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쓸까? 아니다 오늘은 무슨 기사를 보낼까이다. 공군은 휴가가 많다고 하던데 정말 거의 매달 한 번씩 휴가 온다. 육군이나 해병대보다 더 자주 아들 얼굴을 본다지만 나의 ‘신문 러브레터’는 계속되고 있다. 부대에서 신문도 보고 인터넷도 사용 가능하고, 전화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지만 ‘신문 러브레터’는 아들과 나의 귀한 소통의 장이 되고 있다. 매일 신문을 읽으면서 보석을 발견하는 기쁨도 만끽하고 있다. 이 기사를 아들한테 선물로 주어야지 하면서 스크랩하다 보니 내 스크랩북은 넘치고 있다. 아들에게 ‘신문 러브레터’를 보낼 때마다 내가 선정한 기사를 가족에게 돌려 읽게 한다. 기사를 읽은 딸 아이의 한마디 코멘트도 편지에 담는다. 매일 신문을 읽을 때마다 아들을 위한 ‘기사 한 꼭지’를 마련한다.
여름날 오후 라디오 음악 방송으로 청취자들의 신청곡들이 쏟아진다. 아들이 군입대하니까 ○○○○ 노래 신청합니다, 아들 면회 다녀오니 ○○○○ 노래 꼭 틀어 주세요라고. 국방의 의무도 멋지게 다하고 있는 아들들을 그리워만 하지 말고 엄마만의 ‘신문 러브레터’를 보내면 어떨까 제안한다. 신문 읽기는 사랑하는 이와 더 가까워지는 길이 되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나는 오늘도 아들에게 말할 수 있다. 아들아, ‘기사 한 꼭지’는 너를 위해 준비한단다.
©다독다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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