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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런 버핏이 신문사 63개를 사들인 이유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면서 신문의 위기에 대한 말이 부쩍 회자되고 있다. 미디어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인 니컬러스 네그로폰테는 “2015년 이내에 신문이 소멸할것”이라고 예측했는가 하면, 수많은 신문사를 직접 경영하는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마저 인터넷 신문의 유료화를 선언하면서 “2019년에 종이 신문은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공언하기까지 했다. 그래서인지 신문은 사양산업이라는 표현도 이젠 생소하지 않을 정도다.




‘위업’인가 ‘싼맛에 저지른 실수’인가


신문의 미래에 대해 암울한 전망이 지속되는 가운데, 63개나 되는 신문을, 그것도 돈이 될 것 같지 않은 군소 지역 신문들을 통째로 사버린 사람이 있다. 주인공은 바로 워런 버핏이다. 워런은 2011년 자신의 고향지역 신문사인 오마하월드헤럴드를 매입한 데 이어 올해 5월에 1억4,200만 달러를 들여 63개 지역 신문의 모기업인 미디어제네럴 그룹을 인수했다. 여느 미디어 그룹이나 일반 기업이 구입했을지라도 화제가 되었을 법한데 금세기 최고의 투자 귀재라고 일컬어지는 워런이 인수했다는 소식에 의견이 분분했다. 한편에서는 단순한 신문사 인수를 뛰어넘는 ‘금융공학적 위업’이라고 극찬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 서는 아무리 투자의 귀재일지라도 ‘싼값에 집착한 이번 거래는 애 좀 먹을 것’이란 비아냥거림도 나왔다. 그러나 당사자인 워런의 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신문을 둘러싼 환경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지만 지역 신문의 미래는 밝습니다. 더구나 나는 평생에 걸쳐 신문을 사랑해왔고 그 사랑은 죽을 때까지 변치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계 최고의 거부’, ‘월스트리트의 제왕’, ‘투자의 달인’, ‘오마하의 현인(賢人)’ 등 자신에게 따라붙는 온갖 수식어보다도 ‘신문 중독자(papers addict)’라는 말을 더 좋아하는 워런은 거의 숙명적이라 할 만큼 신문과 인연이 깊다. 워런의 아버지인 하워드 버핏은 신문 배달을 통해 학비를 조달했고 대학에서 언론학을 전공하면서 대학 신문기자와 편집장을 지낸 경력을 갖고 있다. 어머니인 레일라 스탈 또한 지역 신문 경영자 집안 출신으로 하워드 버핏과 함께 기자 활동을 했다.


워런과 신문의 직접적인 인연은 열세 살 무렵인 194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버지인 하워드 버핏이 사업가에다 4선의 하원 의원을 지낸 만큼 경제적여유가 있었지만 어려서부터 신문을 좋아했던 워런은 열세 살 때 신문 배달을 시작했다. 열 살 때부터 ‘돈버는 일’을 인생의 목표로 삼은 워런에게 신문 배달은 돈도 벌고 사업적 수완도 발휘해볼 수 있는 대상으로 아주 적격이었다.


워싱턴포스트, 타임스, 헤럴드 등 3개의 신문을 배달하면서 단순한 배달원으로서만 일한 것이 아니라 사업가로서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배달경로를 개발하고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신문을 접어서 던지는 투입방법을 고안하기도 했다.



▲2012년 3월 오마하 프레스 클럽쇼에서 신문 배달부 복장으로 ‘나는 신문 배달부일 뿐이에요’ 라는 노래를 부른 워런 버핏[출처-오마하.닷컴]



한때 배달구역이 변경되어 오전 4시 30분부터 11시까지 쉼 없이 달려야 하는 구역을 배정받고 매일 수백 부의 신문을 배달하는 지루한 작업을 그저 지루하게만 생각하지 않고, 자신과 싸우는 흥미로운 도전 과정으로 삼았다. 어린 시절 워런의 신문 배달 경험은 인생행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 신문 배달을 하면서 끝없이 읽고 생각하고 그것을 실천하면서 길러진 역량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무엇보다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또 4년간의 신문 배달을 통해 번 돈 2,000달러와 그것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사업 수완을 발휘해 모은 돈 5,000달러는 오늘날의 버크셔 해서웨이를 설립하는 종자돈이 되었다.


워런은 지금도 그 시절을 회상하면서 공식석상 에서 신문배달원 복장을 하고 신문 접어 던지기 시범을 하곤 하는데, 그에게 신문 배달은 결국 정신적·경제적 성장의 원천이었던 셈이다.


“어린 시절 나는 아버지가 퇴근할 때 들고 오는 월드헤럴드를 샅샅이 읽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라고 회상하는 워런은 여든 살이 넘은 지금도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등 하루에 모두 5개의 신문을 읽고 있다. 워런이 어린 시절부터 취해온 신문 읽기 방법은 한마디로 정독이다. 지금도 5개의 신문을 단어 하나 하나까지 샅샅이 읽고 필요하면 스크랩을 하면서 내용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워런 버핏의 자서전 ‘스노볼1’(랜덤하우스, 2008년, 294쪽)에 나오는 내용은 그가 신문 읽는 방법을 잘 보여준다. 



[출처-yes24]



“컬럼비아 대학원을 다닐 때(1950~1951년) 1929년 을 기준으로 해서 이후에 발간된 신문을 모두 읽었습니다. 아무리 읽어도 늘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죠. 기업계나 주식 관련 뉴스뿐만  아니라 뭐든 다 읽었습니다. 신문 속에 있는 역사는 심지어 광고 속에서도 특별한 것들이 있습니다. 신문 속의 역사는 나를 다른 세상으로 데려다줍니다.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생생하게 증언하게 해줍니다.”



스스로 중독자라 할 만큼 신문을 사랑한 워런이지만 기사 그 자체를 맹신하지는 않았다. 또 그날그날의 뉴스를 보고 주식 투자하는 것을 금기시했다. 그렇다면 하루 5개나 되는 신문을 샅샅이 읽으면서 얻어내는 것은 무엇인가.


워런은 2012년 5월 자신이 소유한 투자 지주회사인 버크셔 헤서웨이 주주 총회에서 ‘주주들과의 대화’ 도중에 한 중학생으로부터 “세상에는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이 많지만 학교에서 다 가르쳐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해요. 어떤 것을 읽어야 할까요?”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이에 워런은 서슴없이 “일간 신문을 읽으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어느 시점에 스포트든 경제 뉴스든 관심 가는 분야가 생기게 마련이고, 더 많이 알수록 더 배우기를 원하게 될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이 대답에는 워런이 오랜 세월에 걸쳐 체득한 신문 읽기의 철학이 그대로 녹아 있다. 이처럼 워런은 신문을 통해 세상과 돈의 흐름을 파악하고 자신의 관점과 전문성을 덧붙여 10년 이후를 내다보면서 연구하고 ‘보이지 않는 가치’를 찾아낸다. 이것이 바로 투자의 달인으로 칭송받는 워런의 신문 읽기 방법이자 투자의 기본 공식이다.




워싱턴포스트 주식은 절대 안 팔아


워런의 이런 신문 읽기 방식은 학교 현장에서 널리 활용되는 NIE(Newspaper in Education, 신문활용교육)를 연상케 한다. NIE로 할 수 있는 교육이나 학습방법은 다양하지만 NIE의 진수는 ‘신문에 널려 있는 여러 정보를 융합하고 재구성해서 자신의 관점으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워런은 오랜 체험을 통해 최고 수준의 신문 읽기 방법을 터득한 NIE의 종결자’인 셈이다. 


워런의 신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그를 독자로만 남겨두지 않았다. 1960년대 말 순 자산만 해도 2,600만 달러가 될 정도로 주식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둔 워런은 신문잡지업 쪽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워런의 주 관심사는 돈을 벌고 가치 있게 쓰는 일이었지만 그의 뇌리에는 ‘수집가’, ‘설교자’, ‘경찰’ 이라는 세 가지 역할 모델이 늘 자리를 잡고 있었다. 수집가 역할은 돈과 사람과 영향력을 확보하는 일이고, 설교자 역할은 이상주의를 설파하는 일이며 경찰 역할은 악당을 잡고 정의를 실현하는 일이었다. 이미 버크셔 해서웨이를 통해 수집가 역할을 완성한 워런에게 신문잡지업은 설교자와 경찰 역할을 완성할 수 있는 최적의 사업으로 생각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워런의 계획은 1969년 고향의 지역 신문인 오마하선의 인수를 계기로 처음 실현되었다. 오마하선이 워런의 이상을 실현하기에는 턱없이 작은 신문이었지만 그는 이 신문을 경영하면서 탐사 보도 전문기자에 버금가는 족적을 남겼다. 워런은 ‘보이스 타운’이라는 청소년보호기관의 비리에 대해 오랫동안 문제의식을 품어오다가, 1972년에 자신의 신문사 탐사보도팀에 이 문제의 기사화를 제안했다. 


곧바로 탐사보도팀이 꾸려지고 6개월여에 걸친 취재에 들어갔는데, 그 과정에서 워런은 넓은 인맥을 바탕으로 많은 정보를 직접 캐냈는가 하면 완벽하게 조작된 보이스 타운의 재정보고서를 분석해 결정적인 증거를 잡아내기도 했다. 이 보도는 결국 1973년지역문제 탐사보도 부문에서 퓰리처상을 수상하는 개가를 올렸다.


1973년에는 그가 소년 시절에 처음 배달을 했고 오랫동안 동경해왔던 워싱턴포스트의 주주가 되었다. 그 당시 워싱턴포스트는 미 국방성 기밀문서 보도, 워터게이트 사건 보도 등으로 신문의 주가를 한껏 올리고 있었지만 그 후유증으로 말미암아 경영적으로 큰 어려움에 처했다. 워런은 사주인 캐서린 그레이엄 여사를 도와 경영 정상화를 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는 현재 워싱턴포스트 지분의 26.6%를 보유하고 있는데, 코카콜라 주식과 함께 ‘절대로 팔지 않는 주식 목록 1호’로 올려놓을 만큼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1977년에 뉴욕의 지역 신문인 버팔로뉴스를 인수하면서 워런은 신문 경영인으로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다. 문제의 발단은 그 지역의 경쟁지였던 쿠리어익스프레스 지에 우위를 점하기 위해 가격 할인을 포함해서 일요 신문을 대대적으로 확장한 데서 비롯되었다. 위협을 느낀 쿠리어익스프레스는 신문 1면에 워런을 ‘건실한 지역 신문사를 파괴하려는 기업사냥꾼’으로 매도하고 셔먼 독점금지법 위반으로 고소하는 등 집요한 공격을 가했다. 비록 값비싼 대가를 치렀지만 쿠리어익스프레스와 벌인 전쟁은 워런이 ‘지역 신문은 주민에게 지역에서 일어난 일들을 알려줄 의무가 있으며, 편집권의 독립은 보장되어야 한다’라는 신문 경영 원칙을 정립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워런의 팔십 평생에 걸친 신문과의 만남은 그가 단순한 애독자나 신문 경영인을 넘어 ‘진정한 신문 전문가’임을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그가 최근에 지역 신문을 인수하면서 밝힌 신문관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그에 따르면 “머지않아 지역단위의 생활권이 중요한 시대가 도래하면서 지역 구성원의 삶과 생활을 이어주고 매개하는 기관이 필요해질 것인데, 지역 신문만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라는 것이다. 덧붙여 “현재의 지역 신문에선 이런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새로운 모델 개발이 필요하다” 라는 견해를 제시했다. 지역 신문에 대한 워런의 견해는 신문학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음직한 ‘지역밀착형 신문’의 개념과 일맥상통한다. 어쩌면 진부한 이론으로 흘려버릴 수도 있지만 팔십 평생을 신문과 함께하면서 신문배달원에서 애독자, 탐사 보도 기자, 신문 경영인으로서의 산 경험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신문업계가 깊게 새겨들어야할 부분이다.




‘지역밀착형’이 신문의 미래


부자가 되는 것은 어렵지만 그래도 많은 부자가 존재한다. 그러나 부자이면서 ‘현인’이란 말을 듣는 사람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봐도 극히 드물다. ‘부자가 천국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라는 속담을 무색하게 한 워런의 오늘날 성공은 신문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이 신문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는 가운데 세계 최고의 투자 귀재는 앞으로도 신문사를 더 인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고 있지만 노력 여하에 따라 신문의 가치가 더욱 빛을 발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이 글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신문과 방송> 2012년 8월호 중 황치성 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위원의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성원으로 다음 메인에 노출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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