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옌이 어용작가? 붉은수수밭 속 중국 민초

2012. 10. 15. 09:29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지난 주 뉴스를 통해 2012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중국작가 모옌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고은 시인의 노벨상 수상이 또 비켜갔다는 아쉬움과 아시아에서 세 번째로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안게 된 중국에 대한 부러움이 묘하게 뒤엉켰습니다. 한편으론 중국문학을 오래 공부하고 전공한 사람으로서 중국문학이 세계의 주목을 받고 그 아름다움을 인정받는 것에 대한 뿌듯함도 고개를 들었지요. 아마 많은 분들이 그러했겠지만 모옌의 수상소식은 짧은 시간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드파워가 아닌 소프트파워에서도 세계의 중심국가로 급부상한 중국 그리고 결코 빠지지 않는 우수한 한국문학은 어째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지 못하는지 등등.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중국작가 모옌[출처-서울신문]



사실 한국인들에게 중국 현대문학은 그리 친숙한 장르는 아닌 것 같습니다. 중국문학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공자왈 맹자왈이 그 첫 번째고, 기껏해야 김용의 무협소설이나 ‘민족혼’이라 불리던 <아큐정전>의 작가 루쉰 정도가 전부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숱한 중국 현대문학들이 서점의 귀퉁이에서 시종일관 빛도 못보고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말랑말랑한 문체와 아기자기한 스토리로 소녀감성을 건드는 일본 여류작가의 소설들이 늘 베스트셀러 목록을 차지하는 것과는 참으로 대조적입니다. 사실 중국문학도 그 매력을 알고 나면 흠뻑 빠져들 수 있는 요소가 무궁무진한데 말이지요.    


그러니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에 모옌이라는 이름 석 자가 떠오르는 순간 고개를 갸우뚱한 분들이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도대체 누구인지, 어떤 작품을 썼고, 어떤 삶을 살아 온 작가인지 궁금할 테니까요.




한국에서는 붉은 수수밭으로 더 유명한 모옌의 <홍까오량 가족>


모옌이 본격적인 주목을 받고 이어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오르는데 혁혁한 공을 한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국내에서는 <홍까오량 가족>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红高梁家族>이라는 작품입니다.(우리나라에서는 붉은 수수밭으로 더 유명하죠) 소설은 중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감독, 장이머우에 의해 영화화되고 평단과 대중에게 좋은 반응을 얻으며 커다란 성공을 거둡니다. 1988년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한 뒤 우리나라에도 알려졌고요. 저 역시 소설보다도 영화를 통해 이 작품을 먼저 알게 되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넘칠 듯 타오르는 붉은 수수밭과 아픔과 고통 속에서도 끝내 살아남는 소시민들의 원초적 생명력에 매료되어 원작자 모옌이라는 작가가 문득 궁금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작가 모옌은...


모옌은 1955년 중국 산둥성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관모예(管謨業)로 모옌이라는 필명은 ‘글로 전할 뿐 말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문화대혁명이 일어나자 학업을 포기하고 수년 간 농촌 생활을 하다가 소학교를 중퇴한 뒤 18세 되던 해 면화 가공 공장에서 직공으로 일했습니다. 1976년 20세 나이로 고향을 떠나 중국 인민해방군에 입대해 복무하던 중 문학에 눈을 돌려 1978년부터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계속해서 지금까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1987년 발표한 장편 <홍까오량 가족>을 비롯하여, <티엔탕 마늘종 노래(天堂蒜S之歌)>(1988), <열세 걸음(十三步)>, <술의 나라(酒國)>(1993), <풀을 먹는 가족(食草家族)>(1993), <풍유비둔(豊乳肥臀)>(1995), <탄샹싱(檀香刑)>(2001), <사십일포>(2003), <생사피로(生死疲勞)>(2006) 등이 있고, 기타 <환락>, <생화를 품은 여인>,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 <그네 틀의 흰둥이>, <메마른 강>, <엄지수갑>등의 중단편 소설이 있습니다.



노벨상위원회는 수상자에 그를 선정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모옌은 중국의 설화와 역사, 현대사를 뒤섞은 작품들로 환각적인 현실주의를 선보여 문학상 수상 작가로 선정됐다.”



그는 모든 작품에는 중국만의 독특한 문화와 민속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고향인 산둥성 까오미 현을 배경으로 한 농민들의 생명력 넘치는 삶과 그 역동성을 생생히 그려내고 있습니다.  특히 대표작 <홍까오량 가족>에는 중국의 역사, 문화, 설화, 현대사, 민족성 등이 뒤섞여 모옌이 간직한 민족의식이 극대화되었다는 평을 받습니다.



▲모옌의 대표작 홍꺄오량 가족(우)


    


<홍까오량 가족>의 배경은 1920년대 중반부터 1940년대 초반까지의 중국 산둥 성 까오미 현입니다. 그런데 당시는 평화롭고 조용한 시골마을이 아닙니다. 항일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일본군이 주둔하여 온갖 착취와 악행을 저지르는 피비린내 나는 끔찍한 시골입니다. 소설은 그 역사의 고통 안에서 일본군에 맞서 싸우는 평범하지만 비범한 중국 민초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붉은 수수밭> 속 평범하지만 비범한 중국 민초들


작품은 양조장집에 팔리듯 시집을 가게 된 따이펑리엔의 꽃가마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녀는 지독한 가난으로 인해 노새 한 마리를 받고 문둥병 환자에게 팔려갑니다. 그러나 작가는 전통적 여성상에서 벗어나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고 이끄는 강인한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습니다. 그녀는 가마를 메던 위잔아오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위잔아오는 양조장집 부자를 살해하고 그녀는 양조장을 이끄는 안주인이 됩니다. 



▲장이머우 감독에 의해 영화화된 모옌의 붉은 수수밭[출처-네이버 영화]




십 년의 세월동안 그들은 양조장을 운영하며 성실하고 열정적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간이 갈수록 심한 착취를 일삼던 일본이 끝내 양조장의 큰어른인 루어한 할아버지를 처참히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를 계기로 위잔아오는 일본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게 됩니다. 수차례의 전투 끝에 양조장의 안주인이었던 여주인공 따이펑리엔도 총에 맞아 죽음에 이르고 일본군의 학살은 더욱 잔인하고 거세지지만 위잔아오는 민중을 진두지휘하며 일본군에 저항한다는 것이 소설의 주된 줄거리입니다. 모진 세월을 강하게 헤쳐나간 한 여인의 삶과 민중들의 원초적 생명력, 뜨거운 애국심 등이 뒤얽힌 <붉은 수수밭>의 세계는 복잡합니다. 그 안에는 중국민족의 역사와 신화, 생명의식과 전통문화, 중국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복합적으로 뒤엉켜있습니다. 그리고 이것들이 빚어내는 알싸한 고량주 같은 세계는 놀랍게도 아름답습니다. 작품을 읽는 내내 눈앞으로 붉게 일렁이는 수수밭이 펼쳐지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중국적인 것을 가장 잘 담아내는 작가 모옌


중국 가난한 시골마을의 문학청년은 이제 전 세계가 주목하는 중국문학의 대표 작가가 되었습니다. 일각에서는 모옌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비판하기도 합니다. 그가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중국작가협회 부주석인 데다 그동안 반정부 운동을 벌인 동료 작가들의 구명에 적극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그러나 정작 모옌 본인은 이러한 비판들에 대해 ‘노벨상은 문학상이지 정치상이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그 안에 어떠한 정치적 색깔도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지의 표명이겠지요. 또한 그는 거리에서 구호를 외쳐야만 비판적인 것은 아니라며 자신이 무비판적인 체제 내 작가라는 일각의 비판을 정면으로 반박했습니다. 실제로 그의 작품에는 중국정부와 사회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내용이 많습니다.  어찌됐든 2012년 노벨위원회는 모옌을 선택했습니다. 많은 논란이 있지만 그가 중국적인 것을 가장 잘 담아내는 작가라는 의견에는 이견이 없는 듯합니다. 무거운 것을 해학적으로,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게 그려내는 작가 모옌의 앞으로의 행보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 될 듯합니다. 저 역시 그의 작품을 다시 집어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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