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0. 22. 09:30ㆍ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그게 얼마나 더 끔찍하게 죽여야지만 사형이 선고가 되는 건지 알고 싶어요. 이런 사건조차 무기징역이 나는데 범죄자들이 얼마나 활개치고 다니겠어요.” 2심 재판에서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처벌이 감경된 오원춘 살인사건 재판을 지켜본 피해자 유족의 절규입니다. 수원에서 20대 여성을 납치해 성폭행, 살인을 저지르고 시신을 300조각이 넘게 훼손했던 오원춘 살인사건. 그런데 10월 18일 2심 재판에서 서울고등법원은 1심의 사형선고를 깨고 무기징역을 선고했습니다. 2심 재판부는 오원춘 살인사건이 계획적이 아닌 우발적인 범행이며, 인육제공 목적도 확신하기 힘들다는 취지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비난 여론이 뜨거운데요. 아동 성폭행부터 오원춘 살인사건까지 갑론을박이 뜨거운 사형 논란. 다독다독이 조선시대 사형제도 사례와 사형논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출처-서울신문]
12세 이하 여아 강간범은 목을 매단 조선시대 - 강간범은 교수형, 성희롱도 곤장 80대
사형에 대한 논란은 지금뿐 아니라 인류가 법을 만든 이후로 항상 있어 왔습니다. 이 논란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조상들은 어떤 경우에 사형 선고를 했는지 알아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전략) 강간은 모반과 같은 대역죄와 존속살인 등과 맞먹는 중죄로 취급됐다. 국가의 경사 때 종종 행했던 대사면령에도 강간죄는 해당되지 않았다. (후략)
<조선시대 성범죄, 어떤 처벌 받았나> 경향신문, 2012. 10. 17
조선시대 강간죄에 대한 처벌은 추상같았습니다. 조선의 강간죄 처벌은 명나라의 법인 ‘대명률’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요. 화간은 장 80대, 남편이 있으면 장 90대. 여자를 유괴한 뒤 간음하면 장 100대. 강간한 자는 교수형에 처한다. 강간미수죄는 장 100대에 유배 3000리에 처한다가 골자입니다. 요약하자면 강간은 사형, 강간미수는 태형에 추방, 그밖에 성범죄는 태형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드라마 사극에서 보시고 곤장, 그러니까 태형을 우습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곤장을 실제로 보신 분이라면 그런 생각은 못하실 겁니다. 장이 두자릿수가 넘어가면 엉덩이 살이 터져 곤죽이 되고 피가 한강처럼 흐른다고 하지요. 그런 곤장이 최소 80대라는 건 때려죽이라는 말에 다름 아닙니다. 운좋게 살아남는다고 해도 불구가 되기 십상이죠.
[출처-서울신문]
성종 때는 강간미수에 그친 군수를 관노로 쫓아내기도 합니다. 미수에 그치더라도 공무원이었던 자가 성범죄를 저지르면 노예로 만들고 영원히 공직을 맡을 수 없도록 처벌한 것이죠. 당연히 사면령에서도 강간죄는 제외되었습니다.
다소 예외가 없지는 않았습니다만 조선 최고위급에 대한 강간죄 처벌도 추상같았다고 합니다. 선조는 자신의 친아들인 이보가 살인과 강간을 저지르자 법에 따라 처단하라고 이릅니다. 오히려 신하들이 부모 자식의 정이 있으니 참으라고 말릴 정도였다고 하죠. 하지만 선조는 “백주대낮에 궁인을 겁간한 자식을 용서할 수는 없다.”고 신하들에게 처벌을 종용합니다. 결국 사형은 면했으나 임금의 아들조차 유배형을 당함과 동시에 경국대전에 실린 법대로 처벌을 받습니다. 민주주의 시대도 아닌 왕정 시절에 이 정도 판결이라니 놀랍네요.
현대의 사형 찬반 논란 – 가장 강한 범죄 억지력 VS 사형 범죄 예방 효과 없어
현재 우리나라는 사형제도가 존재하지만 지난 15년간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실질적 사형제 폐지국가에 분류되어 있습니다. 오원춘 살인사건 2심 판결로 다시 불붙게 된 사형에 대한 논란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현재 유영철, 강호순 등 사형을 선고받은 사형수가 60명이 수감되어 있죠. 우리나라에선 1949년부터 1997년까지 920명의 사형 집행이 있었습니다.
[출처-서울신문]
한국은 1949년 7월 14일 정부수립 이후 살인범에 대한 첫 사형 집행을 시작한 이래 1997년 12월 30일까지 모두 920명의 목숨을 법의 이름으로 박탈했다. 사형에 처해진 사람들은 살인, 강도살인, 존속살해 등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은 경우가 562명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 정치·사상범도 254명에 달했다. (후략)
<한국 1949~97년 920명 사형 집행> 서울신문, 2012. 9. 6
사형제에 찬성하는 측에서는 누구나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기 때문에 사형제도를 통해 경각심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조상님들께서도 아동 강간죄에 대해서는 모두 교수형에 처했던 것처럼요. 헌법재판소도 2010년 사형제 합헌결정을 내리면서 사형이 가장 강력한 범죄억지력을 갖는다고 판시했었죠.
형제 존폐, 사형집행 문제를 둘러싼 논란은 단순히 법리 차원을 넘어선다. 가해자의 생명권과 극악범죄 피해를 입은 피해자·가족의 생명권 중 어느 것을 우선해야 하느냐, 사회방위를 위한 국가의 역할이 어디까지냐 등이 문제가 돼 왔고, 종교적 신념 문제도 얽혀 있다. 국가의 역할 영역을 판단하는 데는 형사정책상 사형이라는 극단의 형벌을 유지하는 것이 그만한 범죄억지 효과를 갖느냐가 중요한 논란거리다. (후략)
<헌재 "가장 강력한 범죄 억지력" 사형제 합헌 폐지론자는 美·유엔 조사 근거로 "범죄 안 줄어">
조선일보, 2012. 9. 7
하지만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습니다. 무엇보다 국제적인 통계가 사형이 범죄 예방 효과가 없다는 쪽으로 나오고 있기 때문이죠. 조상님들의 추상같은 사례들도 달리 생각해보면 무조건 교수형에 곤장으로 때려죽이라는 판결을 내렸음에도 강간 범죄는 줄어들지 않았다는 얘기가 될 수 있습니다. 캐나다의 경우 사형제 폐지 후에 오히려 피살률이 내려갔고, 미국에선 사형을 폐지한 주와 존속하는 주의 살인사건 발생률이 차이가 없었다는 연구결과도 있었고요. UN 역시 사형제가 살인범죄 억지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하는 얘기도 있을 정도입니다.
세계적인 사형제 논란 - 법감정 괴리에 대한 조치가 필요한 시점
아마 오원춘 판결과 관련해서도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행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슈였을 겁니다. 사형은 법정 최고형이고 생명을 다루는 형벌이기 때문에 굉장히 고도하고 판결의 여지가 좁습니다. 그렇다 보니 직접 법을 다루는 법조계 인사들과 대중들 사이의 법감정 괴리도 심각하지요. 사형제는 아니지만 아동 성범죄와 관련하여 다독다독이 이미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출처-서울신문]
우리나라의 사형 논란처럼 미국에서도 올해 사형 집행 논란이 뜨겁습니다. 22년 전 9살 여아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범인의 사형이 집행되기로 결정됐습니다. 오는 10월 28일에서 11월 3일 사이에 사형이 집행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특히 이 사형 집행에는 희생 당한 아이의 부모가 범인의 숨이 끊어지는 순간을 직접 보기 위해 사형장을 찾는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잇단 흉악범죄를 계기로 사형제 논란이 다시 부상한 가운데 미국에서 22년 전 아동을 성폭행하고 잔인하게 살해한 범인의 사형이 조만간 집행된다. (중략) 묄러는 진작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법적 논란으로 집행일이 계속 연기됐다고 한다. (후략)
<美, 9살 여아 성폭행ㆍ살인범 조만간 사형집행> 법률신문. 2012. 9. 6
굳이 부모가 사형장에 참관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일각의 부정적인 시선도 있지만, 딸을 잃은 부모 입장에 공감하여 그들이 사형장에 갈 수 있도록 성금을 보낸 사람들도 많다고 합니다. 희생자의 입장에서는 공감이 가지만 만에 하나와 법이라는 시스템 측면에서는 함부로 말하기가 힘든 사형제도. 이번 오원춘 무기징역 선고로 한국에서도 사형제도에 대한 논란이 점차 거세지고 있는데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형제도에 대한 좀 더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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