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관계' 중국은 전연령, 한국은 19금?

2012. 10. 29. 09:47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세계영화사 100년에서 현재까지도 살아남은 가장 오래된 시리즈물인 007 시리즈의 50주년 기념 신작 ‘007 스카이폴’이 우리나라에서도 개봉 이틀만에 50만 명을 기록하며 흥행몰이를 하고 있죠. 그 이전에 한국영화인 ‘광해, 왕이 된 남자’와 ‘도둑들’은 이미 천만 관객을 넘기도 했습니다. 그야말로 지금은 영화의 전성시대라고 할 수 있죠. 국가대표 조각미남 장동건은 얼마전 개봉한 ‘위험한 관계’라는 영화로 장쯔이, 장백지와 우리나라에 무대인사를 하기도 했는데요.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등 멜로의 거장인 허진호 감독의 신작이기도 한 ‘위험한 관계’는 중국과의 합작영화로 세계대전 당시 상하이를 배경으로 치명적인 사랑이야기를 하고 있는 영화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성 편력이 화려한 남자의 부적절한 여자관계를 묘사한다고 하여 18세 관람가로 개봉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중국에서는 전체 관람가로 개봉하였죠. 영화는 같은데 왜 나라마다 볼 수 있는 연령은 다른 걸까요? 오늘은 나라마다 다른 영화 등급제도에 대해 살펴볼게요.



[출처-네이버 영화]





영상물 등급 제도란? 한국VS미국의 등급 분류


영상물 등급 제도는 영상물의 시청이 허용된 연령을 규정하는 제도로 구미권에서 처음 만들어진 후 세계 각국에서 제정되어 시행되고 있습니다. 보통 국가마다 지정된 단체를 통해 영화를 심사한 후 등급을 정하는데요. 등급기준은 예술성보다는 선정적인 부분의 묘사 양식에 중점을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청소년들을 선정적인 영화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청소년에 기준이 맞춰진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대한민국과 미국의 등급을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영화등급체계




보시다시피 한국과 미국 모두 청소년에게 유해한지 여부로 등급이 나뉘고 있습니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우리나라는 해당 등급의 나이가 되지 않으면 원천적으로 볼 수 없지만 미국의 경우 책임을 질 부모나 성인 보호자와 동반할 경우 관람 자체가 불법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또하나는 미국에서는 포르노에 해당하는 영화에도 X라는 등급을 부여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포르노 자체가 불법이라는 점입니다. 포르노가 아니어도 표현 정도가 지나치게 과할 경우 제한상영가를 부여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 현실적으로 제한상영관이 없기 때문에 상영불가와 다를 바 없습니다. 이점은 영화계에서 사실상 사전검열과 다를 바 없다며 반발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제한상영가는 2001년 등급보류 대신 생긴 등급인데 등급보류는 헌법재판소에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판결을 받은 바 있습니다. 반면 미국에서는 NC-17을 받은 ‘색, 계’ 같은 영화는 예술영화 전용관 상영을 통해 흥행에서도 괜찮은 성적을 올렸다고 합니다.


이밖에 차이점은 법적으로 의무이냐 아니냐의 차이도 있겠네요. 미국의 영상물 등급 제도는 미국영화협회에 의해 제정되어 1968년부터 쓰이고 있는데요. 등급이 받는 것이 의무는 아닙니다. 실제로 1968년 이전에 나온 영화 중 현재까지도 등급이 지정되지 않은 영화도 많이 있다고 합니다. 다만 거의 모든 영화관들이 등급을 받지 않은 작품은 상영해주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영화를 상영하고 싶다면 등급을 받아야 하는 거죠. 하지만 우리나라는 영화진흥법에 의거하여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상영등급 분류를 받아야만 합니다. 법적인 의무 사항인거죠. 등급을 부여 받지 않은 영화는 상영할 수 없으며 상영할 경우 불법입니다. 다만 대가를 받지 않고 18세 이상 특정인들에 한해 상영하는 소형, 단편 영화, 위원회가 추천하는 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영화, 위원회가 추천하는 단체 등이 제작하여 상영하는 영화 등은 상영등급을 받지 않아도 상영이 가능합니다. 영화 애호가들이 영화제로 몰리는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하죠.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위험한 관계'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는 장쯔이[출처-서울신문]





20세가 넘어도 성인영화를 볼 수 없는 나라가 있다? 세계의 등급제 이모저모


그렇다면 영화를 상영하는 세계 모든 나라들이 우리나라와 미국 같은 등급 제도를 가지고 있을까요? 대부분 그렇지만 조금 다른 등급을 가진 나라들도 있습니다.


가장 궁금할 영화 등급의 연령이 제일 높은 나라는 어디일까요? 바로 싱가포르입니다. 엄격하기로 유명한 싱가포르의 경우 18세관람가에 해당하는 M18 등급 위에 21세관람가에 해당하는 R21이 또 있다고 하네요. 싱가포르에서는 20살이 넘어도 함부로 성인영화를 보다간 큰일 날 수 있으니 조심해야 겠어요.^^; R21 등급의 영상물은 극장 상영은 가능해도 비디오나 DVD 등 개인이 소지할 수 있는 형태로는 내놓을 수 없다고합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가장 영화 등급의 연령이 낮은 나라는? 바로 핀란드입니다. 핀란드에는 만 3세 미만의 유아가 관람하기 전에 보호자의 지도가 요구되는 K-3이란 등급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3살 유아에게 따로 등급을 부여하다니 과연 사회안전망의 나라답다고 해야하려나요?^^;


이집트의 영상물 분류 등급은 간단합니다. 전연령 관람가인 General Audience 과 청소년관람불가인 Adults Only 딱 두가지만 존재합니다. 보호자 동반 예외도 없습니다. 발리우드로 유명한 인도의 경우는 이집트의 등급에 U/A라는 12세 미만 관람시 보호자 지도 관람가가 더해집니다.


그럼 이집트가 가장 간단한 등급분류 나라냐? 아닙니다. 가장 간단한 등급분류를 하는 나라는 중국입니다.


중국은 정확히 말해 아직 영상물 등급 제도를 채택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논의와 시도가 있었지만 도입이 실제적으로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심사를 안 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신 중국 당국의 영상물 심사는 실제로 모든 연령의 관객이 관람할 수 있도록 임의로 영화 일부를 삭제하는 과정이 포함됩니다. 심의 삭제를 통해 모든 영화를 강제로 전연령관람가로 만드는 거죠. 이제 ‘위험한 관계’가 왜 중국에서는 전연령관람가가 되었는지 이해가 가실 겁니다. 실제 허진호 감독도 우리나라에서의 인터뷰에서 중국 심의 기준을 맞춰 수위를 조절하며 찍는 게 상당히 힘들었다고 밝혔죠. 그러므로 중국의 등급은 전연령관람가 하나뿐입니다. 그게 어떤 영화든 간에요.^^;



[출처-서울신문]




다만 홍콩과 대만은 예외적으로 영상물 등급 분류제도가 존재합니다. 특히 홍콩의 경우 기본적으로 1등급(전연령관람가), 2등급(보호자 지도 관람가), 3등급(청소년관람불가)로 나뉘는데 이 3급제가 생긴 이유 중 하나가 ‘영웅본색’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홍콩은 1988년 이전까지는 영상물 등급 분류제도가 없었는데 1986년 영웅본색이 개봉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청소년에게 유해한 영향을 끼칠까 두려워한 나머지 제정하였다는 소리가 있습니다. 영웅본색의 위력은 본토에서도 대단했군요.^^;





영화등급, 분류보다 엄격하게 지키되 다양하게 향유하게 해야


요즘 상영 횟수를 늘리려는 수입사의 임의적인 장면 삭제나 다소 이해하기 힘든 등급분류로 영화계가 시끄럽습니다. 한마디로 왜 이 영화가 청소년관람불가냐는 논란이죠.



[출처-네이버 영화]




“이 영화가 왜 ‘청불가’죠?”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의 보수적인 심의 잣대에 여기저기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최근 극장에 걸린 영화들을 보면 ‘18금’이 주를 이룬다. 청소년이 볼 수 있는 영화가 몇 편 안 된다. 


<요즘 영화 심의 "중국보다 더하다"..시대 역행> 이데일리, 2012. 10. 23



예를 들어 아무리 국가에 따라 기준이 다르다지만 ‘루퍼’나 ‘테이큰2’의 경우 R등급(17세 미만 보호자 동반 관람가)과 PG-13등급(13세 이상 관람가)을 받은 영화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둘 다 18세관람가니까요. 청소년 보호와 청소년의 볼 권리 둘 다 참으로 중요한 일인데 이렇게 충돌하게 되어 안타깝습니다. 그렇다고 등급 분류 자체를 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 미국처럼 기준을 분명히 하고 철저히 지키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어떨까요? 사실 우리나라는 성적인 부분에 엄격하고 폭력적이거나 욕설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대한 경향이 보이기도 하거든요. 미국 등급분류에 의하면 성적 묘사나 폭력 뿐 아니라 비속어 사용에도 엄격합니다. 예를 들어 Fuck이란 욕이 한번이라도 들어가면 PG-13을 면할 수 없다고 하고 2회 이상이면 R등급이라고 합니다. 대신 R등급 이상의 경우 성인들의 볼 권리를 위해 확실히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쪽으로 간다고 하죠. 창과 방패의 대결처럼 끊이지 않는 영화의 등급 분류, 청소년 보호와 볼 권리 보장이란 두 가지 토끼를 잡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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