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문학의 편견을 깨는 ‘허삼관 매혈기’

2013. 3. 28. 09:32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중국 제3세대 대표 작가로 불리는 위화(余華)는 중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소설가입니다. 그의 작품들은 흔히 ‘중국을 들여다보는 창’이라 불리지요. 그만큼 중국의 ‘진짜 얼굴’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들을 창조하기 때문입니다.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급부상한 중국의 이면-극심한 빈부격차와 인권문제, 빠른 변화 속에서 무너지는 가치관 등-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지요.  



그런데 ‘중국 문학’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영미권이나 일본 소설들보다 인기가 뒤처지는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서점의 베스트, 스테디셀러 코너에만 가도 그것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지요. 많은 사람에게 아직도 ‘중국 문학’ 하면 떠오르는 것이 ‘공자 왈 맹자 왈’인가 봅니다. 중국문학도 재미와 감동을 꽉 잡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중국의 수많은 작가 가운데서도 저는 특히 위화를 좋아합니다. <살아간다는 것>, <가랑비 속의 외침>등 많은 작품이 있지만 제게 위화 최고의 소설은 <허삼관 매혈기>죠. 지금도 제 책장 어딘가에는 위화의 친필 사인이 박힌 <허삼관 매혈기>가 가지런히 놓여있습니다. 제겐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책이죠. 이 책은 많은 명사가 꼽은 추천도서목록에 포함되어 있고, 서울대 추천도서에도 꼽힐 만큼 명성이 자자한 책입니다.



[출처- yes24]



<허삼관 매혈기> 속 주인공 허삼관은 누에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입니다. 그는 본인만큼이나 웃기고 뻔뻔한 아내와 세 아들을 둔 가장이기도 하지요. 여기까지만 들으면 평범한 남자이지만 그의 부업은 놀랍게도 매혈입니다. 즉 살기 위해 피를 판다는 얘기죠. 그는 아내를 위해, 아들들을 위해 오늘도 피를 팝니다. 아내에게 생활비를 주기 위해, 아들들을 배불리 먹이기 위해 본인은 고단한 길을 걷고 또 걸으며 피를 팔러 떠납니다. 



허삼관은 피를 팔러 가는 날은 아침을 먹지 않고 몸속의 피를 늘리기 위해 '배가 아플 때까지, 이뿌리가 시큰시큰할 때까지' 물을 마시기도 하죠. 피를 뽑기 전에는 절대 오줌도 누지 않습니다. 오줌보가 터질 때까지 오줌을 참으며(대체 피와 무슨 상관이길래) 피를 뽑고 난 뒤에는 반드시 보혈과 혈액순환을 위해 볶은 돼지 간 한 접시와 데운 황주 두 냥을 마셔주는 치밀함도 선보입니다.  



국공합작과 문화혁명으로 이어지는 중국의 거친 현대사의 물결 속에 오로지 ‘먹고 살기 위해’ 자신이 가진 유일한 것을 파는 남자의 매혈기는 코끝이 아릴 정도로 눈물겹습니다. 허삼관은 피를 팔아 아들들에게 국수를 먹이고 피를 팔아 아들의 병원비를 댑니다. 돈이 급할 때는 한 번 팔면 석 달은 쉬어야 하는 나름의 규율을 어기고 사흘 걸러 피를 팔고 또 팔죠. 역사의 폭력 앞에 속수무책인 이름 없는 기층민의 삶이 위화의 펜을 만나 흐드러지게 피어났습니다.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는 가장일지라도 가족을 위해 쓰러지기 직전까지 피를 뽑을 수 있는 강인한 사람은 다름 아닌 우리 주변에 즐비한 이름 없는 그들이지요.



소설 속 베스트 장면은 바로 그동안 애지중지 기른 아들 일락이가 ‘다른 씨’였음을 알게 된 이후의 장면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락이가 의붓자식이었음을 알게 된 허삼관은 아들을 대놓고 미워하면서도 다친 그를 위해 자신의 몸은 아랑곳없이 피를 팔기도 합니다. 한바탕 욕지거리를 퍼붓다가도 일락이가 웃을 때면 자신을 닮았다고 자위하기도 하고요. 



우리 시대에도 역시 수많은 ‘허삼관’이 있을 것입니다. 피를 파는 것은 아니지만 땀과 눈물을 팔아 가족을 부양하는 이들이 있지요.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지만 가족을 위해 피의 노동을 해야만 하는 이 중국 하층민 가장의 삶 역시 매우 무겁습니다. 그러나 그는 무거움에 짓눌려 살아가지 않습니다. 그는 마치 우리들이 하는 걱정의 80퍼센트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며, 나머지 18퍼센트는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며, 단지 2퍼센트만이 우리 힘으로 바꿀 수 있는 일임을 잘 아는 남자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바꿀 수 없는 98퍼센트에 모든 것을 맞추는 미련함 대신 희망의 2퍼센트만 보고 걷습니다. ‘설령 목숨을 파는 거라 해도 피를 팔아야 한다’ 울부짖는 허삼관의 삶은 애처롭지만, 결코 불행하지는 않은 것은 그 때문입니다. 불행은 기쁨 속에서도 슬픔을 찾는 거지만 그는 비극 속에서도 선뜻 희극을 선택하기 때문이지요. 



웃음은 우리를 배반하지 않습니다. 매일 웃는다면 웃을 일만 생긴다는 진부한 속담은 진리인 것 같아요. 웃으면 복이 오고, 웃는 얼굴엔 침도 못 뱉는다는 것도 완벽한 진실이고요. 유머는 삶의 중요한 일부입니다. 공지영이 말했듯 웃음을 소중히 여기고 유머를 추구하며 느긋하게 오늘을 즐기는 것은 정의를 추구하고 불의와 맞서며 핍박받는 사람들을 위해 울어주는 것과 전혀 상치되지 않는다고, 저 역시도 생각합니다. 유머 속에서 삶의 진지함을 들여다볼 줄 아는 중국 작가 위화, 그가 풀어내는 오늘날 중국의 모습이 어떨지 정말 궁금하지 않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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