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곤증을 물리치는 스펙타클한 소설들

2013. 4. 10. 15:00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이맘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불청객이 있습니다. 춘곤증이 바로 그 주인공이죠. 점심을 먹은 뒤 사무실 통유리 너머 바깥 풍경을 들여다보노라면 도시락 하나 싸들고 어디론가 소풍가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과 함께 천근만근 눈꺼풀이 스르륵 감기기 시작합니다.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면 역시나 졸린 눈을 비비는 사람들이 눈에 띕니다. 춘곤증은 약도 없다는데, 이 무시무시한 녀석을 날려줄 특효약은 정말 없는 걸까요? 



그래서 오늘은 춘곤증을 물리치고도 남을 스펙타클한 소설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물론 평일 업무시간에 소설을 읽자는 이야기는 아니고요, 황금 같은 주말에 졸음과 싸우는 대신 흥미진진한 소설로 정신을 번쩍 들게 하자는 것이지요.     




 요 네스뵈 <스노우맨>


190센티가 넘는 키에 민첩하고 천재적인 수사력을 자랑하지만, 반면 알코올 중독과 옛 연인에게서 헤어나지 못하는 모순덩어리의 주인공 해리 홀레. 그는 노르웨이에서 유일하게 FBI에서 연쇄살인범 체포과정에 대한 훈련을 받은 형사입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운명처럼 실종사건을 접합니다. 11년의 긴 세월, 깊고 시린 겨울을 알리는 첫 눈, 그리고 거짓말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여자들. 사건현장에는 겨울이면 어디서든 볼 수 있는, 그러나 결코 평범해 보이지 않는 섬뜩한 눈사람이 지키고 있을 뿐. 




[출처-yes24]



책을 이쯤 읽다가 작가 요 네스뵈의 노련함에 고개를 저은 것은 그가 공포의 첫 번째 코드를 제대로 숙지하고 있기 때문이었을까요? 졸음을 날려줄 싸늘한 공포의 첫 번째 코드, 그것은 바로 ‘가장 익숙한 것이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순간, 그 공포감은 배가 된다’는 법칙입니다. 



돌아보면 어릴 적부터 그랬습니다. 골목길이 조금만 어둑해져도 절대 밖으로 발을 디딜 수 없게 만들었던, 한때 전국을 강타했던 최고의 흥행작 ‘홍콩 할매 귀신’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누구나 경계심을 풀고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할머니가 공포의 소재가 되는 순간 그 두려움은 배가 되었지요. 화장실 귀신은 또 어떤가요. 하루에 열두 번도 더 가는 화장실이 귀신들의 아지트가 되는 순간 그곳은 더 이상 가장 편안하고 조용한 나만의 공간이 아닌 서늘하고 섬뜩한 타지(他地)가 되어 버렸습니다. 공포심은 이럴 때 극도로 증폭되죠. 



그렇다면 눈사람은 어떨까요? 동심의 상징이며 추운 겨울 우리를 미소 짓게 만드는 몇 안 되는 겨울의 선물인 눈사람. 작가는 집요한 시선을 던지며 살인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처럼 우두커니 서 있는 눈사람을 사건 속으로 깊이 개입시켰습니다. 아, 눈사람이라니. 겨울이 다 지나서 망정이지 책을 덮으며 ‘아, 앞으로 눈사람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 아닌 고민을 했을 것 같네요. 



공포소설의 정석에 충실한 거듭되는 반전에 반전. 살아 숨 쉴 듯, 그러니까, 마치 북유럽 어딘가에서 맞닥뜨릴 수 있을 정도로 생생한 인물 캐릭터, 죄와 악에 대해 작가 나름의 진지한 철학, 마지막까지 절대로 방심할 수 없는 예측불허의 두려움. 그리고 실종되고 무참히 살해된 여자들에게서 발견되는 사회적이고 도덕적인 문제의 본질. 



책의 표지에 훈장처럼 두르고 있는 띠지 ‘영국에서 23초마다 한 권씩 팔리는 책’이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저의 탁월한 촉 때문만은 분명 아닐 테지만 소설을 읽다보면 조만간 영화화 되겠다는 느낌이 강하게 오는 책이 있습니다. <스노우맨> 역시 처음 몇 장을 넘기며 그런 느낌이 제대로 꽂혔는데, 아니나 다를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진다니 이렇게 반가울 때가 있나! 후에 영화와 소설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네요. 




그레구아르 들라쿠르 <내 욕망의 리스트>


이 소설은 누구나 꿈꿔봤을 일확천금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평범한 가정에게 닥친 복권 1등, 상금 270억 원이라는 믿을 수 없는 행운. 꿈을 이룰 어마어마한 가능성을 움켜쥔 이 가정은, 그러나 처참하게 몰락합니다.



[출처-yes24]



패션디자이너를 꿈꿨으나 평범한 주부가 되어버린 47살의 조슬린. 그녀는 우연히 산 로또에 자신이 1등이 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로또는 오랫동안 당첨이 누적되어 당첨금은 무려 270억에 이르게 되죠. 그러나 기쁘기는커녕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남편은 물론 가족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털어놓지 못하고 수표를 구두 깔창에 감춘 채 전전긍긍 괴로운 나날을 보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해외 출장을 갔다 오겠다며 먼 길을 떠난 남편이 사실은 그녀가 감춰놓은 수표를 들고 영원히 잠적해버렸다는 기막힌 사실을 알게 되죠. 



소설은 평범했던 가정에 들이닥친 비극을 적나라하게 그려냅니다. 270억이라는 돈 앞에서 욕망의 노예로 전락해버린 남편과 꿈을 이룰 완벽한 순간에 봉착했음에도 두려움에 사로잡힌 광기의 아내. 



소설을 읽으며 난생 처음으로 꿈을 완벽히 이룬다는 것이 커다란 재앙이 될 수도 있겠다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작품 속 주인공의 입을 빌려 작가는 이야기합니다.



“다른 이들의 꿈을 실현시켜 주는 사람은 그들을 파괴할 위험도 감수해야 하는 법이다.”



솜사탕 같은 봄날, 이 두 권의 소설을 옆구리에 끼고 햇살을 가득 받으며 다른 세계로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요? 졸음을 지울 만큼 흥미로운 여행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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