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4. 15. 09:42ㆍ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북한의 연이은 도발에 편승해 뜬소문들이 나돌고 있습니다. 북한의 공격이 시작되면 가장 안전한 곳이 ‘중국 관광객이 가장 많은 백화점이다’ 같은 괴담들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SNS뿐 아니라 언론들에서도 북한 관련 괴담이나 미확인 정보를 지나치게 크게 부풀리거나 외신마저 과잉보도를 하는 경우가 나타났다는 것이죠.
북한의 전쟁도발이 평소보다 수위가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고조되는 북한의 핵도발에 어떤 외신은 화재에 대비해 원래 지하철역에 상시적으로 구비되어 있는 방독면과 마스크까지 전쟁 대비 물자가 민간에 풀리기 시작했다며 한반도의 위기를 부풀렸습니다. 또 어떤 외신은 한 지하 주차장을 북한의 핵공격을 피하기 위한 지하벙커라고 소개하는 웃지 못 할 일도 있었죠. 언론은 항상 사실에 입각한 정보를 근거로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사를 내보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과장, 과잉 보도를 하는 경우가 없지 않습니다. 안타까운 언론의 한 단면이죠. 오늘은 언론의 과장, 과잉 보도로 인한 문제점을 살펴볼게요.
[출처-서울신문]
조류 인플루엔자 과잉보도로 치킨업계 줄초상
지난 2003년은 우리나라 최고의 야식이자 안주인 치킨업계가 망한 해였습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조류 인플루엔자(AI)가 발생하면서 언론 보도가 줄을 이었고 겁을 먹을 사람들은 치킨을 입에도 대지 않았습니다. 치킨집의 줄도산이 이어졌죠. 설상가상으로 질병관리본부는 조류 인플루엔자가 인체에 감염될 경우 1천만 명이 감염되고 이중 44만 명이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발표해 사회적인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질병관리본부에서 내놓은 시뮬레이션이었고 그 근거 또한 다소 부정확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언론 보도는 나가 버린 후. 양계업계와 치킨업계는 직격탄을 맞은 후였습니다. 사실 지난 7년 동안 조류 인플루엔자가 발생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사람이 감염되어 사망자가 나온 적은 없죠. 섣부른 정부의 발표와 경쟁적으로 이를 받아 적은 언론의 과잉 보도가 산업에 피해를 주었던 사례였습니다.
무고한 희생자들. 삼양 우지파동과 쓰레기 만두
최근 같은 북한의 도발 보도도 그렇지만, 아무래도 일상생활과 직결되어 독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인지 과잉보도는 먹거리에 많은 편입니다. 가장 유명한 과잉보도의 피해자들이라면 공업용 우지 파동을 겪은 삼양과 안타까운 자살이 있었던 쓰레기 만두 사건이 있을 겁니다.
[출처-서울신문]
1989년 당시 국내 최초로 라면을 생산했고 업계 1위를 달리던 삼양 라면이 먹을 수 없는 공업용 우지, 소기름으로 만들어졌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검찰의 이 발표를 받아 적은 언론 보도는 온 국민의 사랑을 받던 삼양 라면에 배신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는 당시 검찰의 무책임한 발표와 사실 관계를 따져보지 않고 무턱대고 선정적인 보도에만 열을 올리던 언론의 과잉보도였음이 드러나게 되죠.
이 사건은 국내 최초로 라면을 생산했던 삼양식품과 함께 19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검찰이 삼양라면을 ‘먹을 수 없는 공업용 우지’로 만들었다고 발표하면서 이른바 ‘우지 파동’이 시작됐다. 삼양 측은 검찰이 정확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며 반박했고, 일각에선 경쟁 업체나 검찰 등이 악의적으로 사건을 만들었다는 의혹마저 제기됐다. 업계는 삼양이 사용했던 우지가 12등급 중 2등급에 해당하는 최상급 식용우지라고 반발했으나, 이미 사건은 일파만파 확산된 이후였다. 결국 삼양은 7년 넘게 법적 공방을 벌인 끝에 지난 1997년 대법원의 무죄 판결을 받아 억울함을 벗었다. 하지만 시장은 삼양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우지 파동 이전 50%를 호가하던 삼양의 시장 점유율은 10% 수준으로 하락했고, 매출도 크게 줄어 기업 존속위기까지 겪었다. (후략)
이후 정정 보도는 과잉 보도만큼 크게 다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업계 1위였던 삼양은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업계 순위는 추락하고 망하기 직전까지 몰리게 됩니다.
삼양이 7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게 된 다음 해인 1998년, 이번에는 포르말린 통조림 파동이 일어났었죠. 중국으로부터 골뱅이와 번데기 통조림 등을 수입하던 업자 두 명이 유통기한을 늘리기 위해 포르말린을 더 첨가한 채 판매했다는 혐의였죠. 이때도 검찰의 보도 자료를 바탕으로 주요 언론들이 대대적으로 다뤘습니다. 어떤 방송사는 통조림에 들어간 포르말린이 발암물질이며 당시 사망한 김일성의 시신도 포르말린으로 방부처리 되었다며 연일 그 장면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무죄로 판명이 났죠.
통조림에 포르말린 성분을 넣었다는 혐의로 구속기소 된 식품제조업자들에게 법원이 무죄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문제의 포르말린 성분이 인체에 유해하다고 인정하기도 어려운데다, 이씨 등이 방부처리를 위해 통조림에 포르말린을 넣었다는 것을 입증할만한 증거도 없다”고 밝혔다.(후략)
‘포르말린 통조림’ 무죄 판결 (한겨레, 1999.01.23.)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천연상태의 원료에 포르말린 구성물질인 포름알데히드가 자연적으로 만들어 질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증거 확보도 없이 관련자들을 기소부터 했고, 언론은 그 과정을 선정적으로 그대로 받아 적었습니다. 조사 결과 가장 많이 검출되었다던 포르말린조차 일상적으로 먹는 표고버섯에서 통상 검출되는 양보다 훨씬 적었다고 하죠. 무죄 판결이 나오기는 했으나 이미 관련 업체들은 모두 부도가 난 후였고, 이혼을 당하거나 무고한 가족들마저도 사회적인 눈총과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렸습니다.
[출처-서울신문]
21세기에도 이런 예를 안타깝게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른바 쓰레기만두 파동이죠. 2004년 한 언론이 시중에 유통되는 만두 중에 쓰레기가 포함된 만두소로 만든 만두가 있다며 특종을 냈습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언론의 사실 조사에 앞서 과잉보도가 줄을 이었고 여론은 들끓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무죄로 판명이 났죠. 쓰레기 만두에 들어갔다는 쓰레기는 알고 보니 단무지의 꼭지였습니다. 오이나 김밥을 보기 좋고 먹기 좋게 하기 위해 꼭지를 잘라내고 먹는 경우가 있죠? 이처럼 만두소에 쓰이는 단무지도 보통은 꼭지를 떼어내고 사용하는데 일부에 이 꼭지까지 사용해서 만두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특종에 눈이 멀었던 언론은 이 점을 악용했습니다. 보통은 떼 내어 버릴 단무지 꼭지를 떼지 않고 넣었으니 쓰레기 만두라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가 가끔은 오이나 김밥의 꼭지까지도 다 먹듯 건강과는 거의 상관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를 침소봉대하여 과잉 보도한 언론에 의해 만두업계는 큰 타격을 받았고 안타깝게도 보도된 만두업체 사장은 억울함을 호소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하기에 이릅니다. 쓰레기 만두가 아니라는 무죄 판결까지 받았지만 그런다고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는 것은 아니죠. 특종에 눈이 먼 과잉보도로 인해 사람 목숨까지 앗아간 안타까운 사례였습니다.
신문은 행간을 읽어라
이런 과잉 보도의 이유는 현실적으로 판매부수를 올리거나 클릭수를 올리기 위해서입니다. 선정적인 헤드라인으로 특종을 내면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으니까요. 이는 언론사 역시 이윤을 내야 하는 기업이기 때문에 생기게 되는 딜레마이기도 합니다. 언론사 내부에서도 이런 선정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죠.
당사자인 기자들에게 확인도 하지 않고 기사를 쓰는 등 선정성과 조급성에 있어서 한국 언론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사실 쓰레기 만두 사건은 경찰의 브리핑 단계부터 언론의 보도, 그리고 이후 전개된 과정에 모두 강한 선정주의가 개입돼 있다. ‘쓰레기 만두’라는 표현도 그렇다. 정확히 말하면, ‘쓰레기로 버려져야할 단무지 자투리가 일부(30% 가량) 들어가 있는 만두소로 만든 만두’다.(후략)
예부터 신문은 행간을 읽어라 라는 말이 있습니다. 위와 같은 사례에서 보이듯 경제적인 이유로 선정성이 개입되거나 정치적인 이유로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언론사들의 자정 활동도 필요하지만 언론을 대하는 독자와 시청자들도 날카로운 시선과 비판적인 읽기를 해서 보도로부터 진짜 사실만을 읽어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하루하루 꾸준히 신문을 정독하면서 비판적 읽기를 훈련한 독자들이 많아진다면 과잉보도로 인해 피해를 보는 분도 줄어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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