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한 번쯤은 달콤한 로그아웃을!

2013. 5. 2. 14:03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새로운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그 이전의 삶은 금세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스크린 도어가 설치된 지하철 역사는 그것이 없이 다녔던 그 위험천만했던 시기를 상상도 하지 못하며, 온 국민이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는 지금은 전화 한 통 하기 위해 공중전화에 긴 줄을 서 있던 시기를 까마득한 과거로 생각한다. 인터넷도 마찬가지다. 검색어 하나만으로 원하는 정보를 다 찾을 수 있고, 이메일 한통으로 전 세계 어디든 실시간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지금 인터넷이 막 보급되기 시작한 불과 15년 전의 삶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렇다. 만약 인터넷이 없는 생활로 돌아가라면 해보지 않아도 당장 떠오르는 불편함이 너무나 많다. 우선 당장 회사에서 일할 수 없을 거다. 회사 인트라넷에도 접속할 수 없어 업무가 마비될 거고, 상사 눈을 피해 웹툰을 보며 시간을 때우는 그 달콤함도 없어질 거다. 주말에 영화를 보려면 직접 영화관까지 찾아가야 예매를 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도 어쩌면 상영 시간을 잘못 맞춰 몇 시간을 하염없이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딘가를 찾아가려면 직접 전화해 찾아가는 길을 몇 차례 물어야 할 거고, 그 전화번호도 114에 전화를 걸어 알아내야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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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 그 불편함과 상상도 할 수 없는 세상을 경험해보겠다며 인터넷을 끊은 사람이 있다. 독일 신문 <쥐트도이체 차이퉁>의 기자 알렉스 륄레다. 그는 하루 평균 100~130여 통의 이메일을 주고받고, 30분에 한 번씩은 꼭 인터넷에 접속하며, 여행을 떠나서도 혹시나 놓치는 정보가 있을까 스마트폰을 끊임없이 만지작거리는 헤비 인터넷 유저였다. 스스로도 중독의 심각성을 깨달아 가던 어느 날 그는 생각하게 된다. ‘디지털 네트워크가 없는 내 인생은 어떤 걸까? 그것이 없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변할까?’ 그래서 그는 실험을 해보기로 한다. 6개월간 인터넷과 단절되는 삶을 살아가 보기로 한 것이다. 그는바로 회사 IT 부서에 의뢰해 자신의 컴퓨터의 인터넷을 막아달라 요청하고, 휴대폰도 함께 맡기도 6개월 뒤에 찾아오겠다고 한다. ‘로그아웃’된 세상이 시작된 것이다.



<달콤한 로그아웃>은 알렉스 륄레 기자가 인터넷을 끊고 살아가며 일어난 6개월간의 기록을 담은 책이다. 늘 아침이면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검색하며 일어났지만, 이제는 기사 대신 공허함과 낯섦으로 시작한다. 출근해서도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 멍하게 앉아 있는 시간이 늘고,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아(휴대폰으로든 메일로든) 고립된 외로움마저 느껴진다. 늘 스마트폰 검색을 통해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이어가던 그는 도무지 그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애를 먹고, 취재원의 전화번호를 알아내기 위해 팔뚝만큼 두꺼운 전화번호부를 미친 듯이 뒤지지만, 그마저도 업데이트되지 않은 5년 전 판본이라 실패하기 일쑤다.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기가 엄청나게 미친짓을 시작했다는 걸 깨닫지만 이미 너무나 많은 사람에게 호언장담 시작했기에 조금만 더 버텨보기로 한다.



그런 그의 삶에 열흘이 지나자 조금씩 변화가 시작된다. 집에서 아이들과 아내와 대화하는 시간이 늘어 집안에 웃음이 늘었고, 그 이전의 취미생활이었지만 말로만 취미였던 피아노 연주나 일기 쓰기 등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책을 펼치고도 한 두 장을 집중해서 읽기 어려웠던 독서도 다시 시작되었고, 보기는 하지만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었던 영화 보기도 다시 그 즐거움을 찾게 되었다.         






그의 실험은 미친 짓이 분명하다. 인터넷 없이 그가 해야 하는 수많은 수고로움을 보면 단번에 알 수 있다. 그만큼 문명의 이기는 인류의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어준 건 틀림없다. 하지만 그가 실험을 통해 보여준 삶의 변화는 그 문명의 이기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고립되기 싫어 끊임없이 사람들과 온라인상에서 네트워크를 맺었지만, 실험 기간 동안 오프라인에서 만난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더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고, 30분의 자료조사 서핑보다 3~4시간에 걸쳐 도서관에서 수집한 자료들이 비록 시간은 더 오래 걸렸지만 머릿속에 더 오래도록 남아 있었던 것이다. 



2008년 니콜라스 카는 <애틀랜틱>이란 문예지에 집중력을 방해하는 인터넷이라는 기사를 쓴 적이 있다. “누군가가 나의 뇌를 짜깁기한 듯한 불쾌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책을 읽으며 내 몸에 깊이 빠져드는 것이 전에는 참 쉬웠는데, 지금은 책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 두 페이지만 읽어도 두리번거리며 다른 흥밋거리를 찾아보게 된다. 집중해서 읽는다는 것이 전에는 쉬웠는데, 지금은 고문 같은 일이 되어 버렸다.” 



이 책 때문은 아니었지만, 카카오톡 없이 산지 6개월이 넘어간다. 처음에는 핸드폰이 울려대지 않아 이러다 친구가 없어지는 건 아닌가 불안감에 두렵기도 했지만, 지금은 폰을 잡고 노는 시간 대신 책을 읽고, 옆에 있는 사람과 대화를 하는 시간이 더 늘었다. 페이스북 친구 수 보다, 트위터 팔로워 수보다는 터무니없이 적지만 오히려 이 몇 안 되는 친구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얼굴을 보며 더 많은 위로와 공감을 받는다. 한 달에 하루쯤은 모든 온라인상의 나를 오프라인하고 지금 나를 둘러싼 것들에 온전히 집중하는 아주 달콤하고 놀라운 경험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어쩌면 이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온라인 세계보다 더 즐겁고 무한한 세계를 경험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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