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영화 예습 삼아 원작 읽어 보니

2013. 5. 16. 14:00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위대한 개츠비' 20세기 최고의 미국 소설이라고 불리는 이 소설은 어려서부터 참 많이 들었던 소설입니다. 하지만 누구나 다 알지만, 누구도 읽지 않은 고전 소설일 뿐이죠. 그 많은 고전 소설들이 왜 읽히지 않을까요? 그건 아마도 요즘 기준으로 따지면 고리타분한 이야기 혹은 번역가의 발 번역으로 인해서 한 페이지를 넘기기도 어려운 이해하기 힘든 시대상과 언어들의 연속 그리고 우리들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소양이 부족하기 때문 아닐까요?


톨스토이나 세익스피어의 소설이 유명한 것을 누구나 알고 많은 글에서 이 유명한 문학의 한 토막을 인용하지만 누구도 전체를 읽지 않은 고전 소설들, 저도 책을 많이 읽지만 고전 소설은 좀처럼 읽혀지지 않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세계소년소녀 문학전집을 아이들에게 사주고 뿌듯해 하지만 그 아이들 대부분은 그 문학전집을 3권 이상 읽지 않습니다. 저 또한 그랬으니까요.


읽지 않은 이유는 읽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어린 초등학생 중학생들이 30,40대가 되어서야 오롯이 이해할 수 있는 인생의 쓴맛 단맛을 이해할 수가 없지요. 위대한 개츠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름은 많이 들어 봤지만 한 번도 손을 내민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영화 때문에 읽어 봤습니다.



[출처-영화 '위대한 개츠비']




'디카프리오' 주연의 '위대한 개츠비'가 5월 국내에 개봉하고 개봉하기 이전에 이 소설을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영화 '레미제라블'을 보고 레미제라블 읽기 열풍이 일어난 것처럼 '위대한 개츠비' 읽기 열풍도 서서히 끊어 오르고 있습니다. '레미제라블'은 영화로 발화된 열풍이 엄청나게 두꺼운 '레미제라블'내용에 중도 포기한 분이 많지만 이 '위대한 개츠비'는 장편소설이긴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한 3일만 투자하면 다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이렇게 빠르게 읽을 수 있는 이유는 이 책이 1920년 대 소설이지만 너무나도 흥미롭기 때문입니다.





추악한 욕망들이 난무하는 구역질나는 세상


책을 읽으면서 좀 화가 나더군요. 책을 읽으면서 제 정신을 가진(?) 인물이 별로 없습니다. 데이지라는 여자가 가장 짜증납니다. 이 데이지라는 여자는 상류층 백치 같은 인물입니다. 낭만적인 사랑을 하고 싶어 하지만 사람에 대한 사랑 보다는 그냥 상류층의 삶을 사랑하는 여자로 그려집니다. 개츠비와 5년 만에 만났지만 데이지의 진한 눈물은 개츠비가 뿌려준 비단 같은 셔츠에 눈물을 흘립니다.



[출처-yes24]




"너무, 너무 아름다운 셔츠들이야",  배금주의에 쩔어 있는 전형적인 상류층 여자입니다. 철딱서니는 없고 일은 저질러 놓고 다른 사람에게 치우길 바라는 전형적인 공주 스타일 여자입니다. 하지만 이런 데이지를 알면서도 개츠비는 데이지를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개츠비라는 인물도 딱히, 좋은 인물로는 느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개츠비가 데이지를 좋아했던 이유는  데이지라는 사람 보다는 데이지가 입고 있던 상류층이라는 신분을 좋아했었죠. 다만, 그 신분을 좋아하다가 데이지를 좋아하게 되었고 그 좋아함은 활화산 혹은 등대처럼 데이지를 지켜주는 파수꾼으로 바뀌어지긴 하지만 시작은 신분 상승의 욕망으로부터 시작되었죠.


그렇다고 베이커나 톰과 바람피는 자동차 정비공의 아내 머틀도 따스하게 바라볼 수 없습니다. 모두들 세상 윤리와 어긋난 행동을 합니다. 그나마 화자인 닉이 제정신을 가진 것 처럼 보이긴 하지만 닉도 친구인 톰이 바람을 피는 대상인 머틀과 술을 마시는 등 모든 상황을 관조합니다. 그리고 혼자 뒤에서 씁쓸해하고 구역질을 하죠. 저는 그 자체도 참 위선적으로 보여지네요.


다만 닉은 이 개츠비를 알면 알수록 개츠비의 비정함과 사랑에 대한 열정 그리고 개츠비라는 인물을 서서히 이해하고 동화되어갑니다. 그래도 이 소설에서 흔들리지 않고 집중할 수 있게 한 인물은 개츠비입니다. 비록 시작은 신분 상승이었지만 어쨌거나 사랑에 대한 열정으로 자신의 모든 재산을 태우면서 데이지에 대한 이유있는 사랑에서 맹목적인 사랑으로 변하기 때문이죠.


개츠비의 순수한 사랑은 1920년대의 미국의 배금주의 세상의 더러움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과도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더러운 세상에서 더 빛을 발하게 됩니다. 하지만 소설은 권선징악이나 디즈니 만화 같은 해피엔딩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상대적으로 가장 순수했던 개츠비에게만 가혹한 형벌이 가해집니다. 마치 세상사가 그렇듯.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인 개츠비


개츠비는 자수성가한 인물입니다. 반면 톰과 데이지 부부는 태생부터 귀족 같은 삶을 산 한량스러운 상류층입니다. 개츠비는 비루하게 자라서 비록 더러운 돈이지만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갑부가 된 미국을 대변합니다. 하지만 톰과 데이지 특히 톰은 이런 개츠비를 졸부라고 폄하하죠. 이는 당시 유럽이 갖는 미국에 대한 시선이었습니다.






구대륙을 상징하는 톰과 데이지 그리고 신대륙인 미국을 대변하는 개츠비, 그리고 그들을 관조하는 방관자적인 입장인 닉과 베이커. 이 인물들은 당시의 세계 정세를 상징하고 있고 이 뛰어난 은유 때문에 많은 미국 작가들이 이 '위대한 개츠비'를 위대한 미국소설로 추켜 세웁니다.


이는 작가인 피츠제럴드가 이 소설을 집필 후에 요절한 모습도 한 몫을 했습니다. 절정 일 때 사라지면 그 절정일 때만 기억되기 때문이죠. 소설속 개츠비와 피츠제럴드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음도 이 소설을 읽는 재미입니다. 다만, 세월이 많이 변했고 우리가 쓰는 언어 습관과 언어도 변했기에 최근에 번역한 '위대한 개츠비'를 권해 드립니다. 위대한 개츠비, 이 책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지만 그 사랑을 넘는 시대상을 각 주인공에 투영 시키는 뛰어난 은유가 있는 재미있고 흥미로운 소설입니다.


재미있습니다. 후반으로 갈수록 빨려들어가는 마력이 있습니다. 비록, 고전 소설이라는 고리타분함의 한계가 있지만 후대의 많은 소설들이 이 위대한 개츠비에 영향을 받은 것을 생각하면 이 소설은 새로운 이야기의 트랜드를 만든 소설이기에 많은 각광을 지금도 받고 있습니다. 화자인 닉은 세상을 조롱하면서 소설은 끝이나고 그 조롱은 세계대공황으로 현실화 됩니다.





위대한 개츠비의 번역 이야기


위대한 개츠비는 많은 번역가가 번역을 했고 지난 수십년 간 많은 출판사들이 출판을 합니다. 여러 개츠비를 뒤적거려 봤는데 소설기 김영하가 번역한 개츠비가 현대적이고 소설가 특유의 미끈한 단어 선택력과 묘사력이 아주 좋습니다.






김영하는 기존의 '위대한 개츠비'가 30대에 가까운 주인공들이 서로 아는 사이이자 친구이자 친척 사이임에도 존댓말을 쓰는 것과 달리 최대한 현실에 접근하고 현대식으로 인물들 끼리의 존댓말 대신에 친구 사이에 쓰는 일상어인 반말로 적습니다. 이 모습이 좀 더 인물들의 관계를 잘 보여줍니다. 그렇다고 이 김영하의 번역본이 최고라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른 책들도 장점이 있기 때문이죠. 어떤 책은 이스트 에그와 웨스트 에그에 대한 지도와 당시 문화를 각주로 잘 표기하기도 했고 어떤 책을 읽어도 이 '위대한 개츠비'에 대한 재미를 반감 시키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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