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기자상 받은 기자가 살펴 본 2013 격차사회

2013. 5. 30. 10:00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누군가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롭게 느껴질 이 세상이 이 시대 기자에게는 고통과 아우성, 죽음의 그림자가 가득한 아비규환이었나 보다. 서민의 지갑은 갈수록 얇아지고, 이리도 많은 아파트 공화국에서 내 집 한 평 갖지 못한 이들은 삶터에서 계속 쫓겨나야 한다. 사람을 기계처럼 부려먹되 기계처럼 언제든 갖다버릴 수 있는 비정규직의 한숨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기성 세대가 짜놓은 그물에 붙들려 취업의 문턱에서 고꾸라지는 젊은이들의 눈물은 개천을 이룰 정도다.


세계 9위의 경제대국이라는 휘황찬란한 플래카드보다 세계 최장시간 노동국가라는 멍에가 우리 삶에 훨씬 밀착된 언어이건만, 우리는 플래카드에 더 눈길이 간다. 멍에를 멍에로 느끼지 못 한다. 왜일까? 우리의 인식을 마비시킨 이 시대의 매트릭스는 무엇일까?


신문기자는 그래서 늘 목마르다. 200자 원고지 1억장을 써도 그리지 못할 이 세상의 모습을 미분만 거듭해 늘 예닐곱장으로 잘라서 보여준다. 기자란 존재는 그렇게 미분한 팩트들을 다시 적분해 전체의 그림을 보여주려고는 하는 걸까. 정부 혹은 기업이 보고싶은 것만 골라 조사해 던져주는 통계수치는 마치 이 시대를 온전히 보여주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만 실상은 진실의 1%도 담겨 있지 않다. 거기에는 사람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전화로 혹은 만나서, 취재원 두세명을 잠깐 인터뷰 해서 쓰는 기사는 마른 목에 부채질만 할 뿐이다.


<한겨레> 취재진의 고민은 거기서 시작했다. 양극화, 격차사회의 문제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현안임이 분명한데 이를 어떻게 기사화할 수 있을까. 취재진은 우선 숫자 속에 가려진 사람의 냄새를 끄집어내어 보여주자고 했다. 한 번 만나 몇 마디 말을 듣고 쓰는 게 아니라 반복적으로 중첩된 시간 속에서 관찰하고 듣고 부딪힌 뒤 그 맛을 음미한 기사를 쓰자 했다.


그 결과 우리는 공간에 주목하게 됐다. 격차사회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이 머무는 공간, 그 공간을 찾아가자! 악마가 디테일에 있듯, ‘진실이라는 이름의 천사’ 또한 디테일이 살아 있는 공간에 있다고 취재진은 생각했다.


먼저 주목한 공간은 고물상이었다. 평소 폐지줍는 노인들을 보며 대개는 ‘지저분하다’거나 ‘우아하지 못한 노년’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간 관성을 한번 벗어나보자고 했다. 그렇게도 눈이 많이 내린 지난해 12월 기자는 강서구에 있는 고물상을 열 차례 가까이 찾았다. 그 곳에는 따끈따끈한 취재원으로서의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고 땀냄새 밴 노동이 이뤄지고 있었다. 임씨 할머니는 집에서 1.3km 떨어진 가까운 곳에 고물상이 있음에도 620원을 더 벌기 위해 1.1km나 더 먼 고물상으로 폐지 얹은 카트를 끌고 왔다. 취재진은 모든 버려진 것들의 집합소, 고물상에서 열악한 한국의 노인복지를 목격했다.


[출처 - 서울신문]



두번째 공간은 갈매마을 철거촌이었다. 한국의 현대사는 국가와 자본이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국민의 강제이주를 종용한 역사이기도 하다.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이뤄진 상계동 철거가 그랬고 2009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용산참사가 생생한 사례다. 그리고 지금도 진행중이다. 구리 갈매마을 철거촌을 취재한 이정국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지하철과 버스를 번갈아 가며 찾아간 갈매마을은 이미 황폐화된 공간이었다. 불도 들어오지 않는 차가운 공가(空家) 안에 모인 대책위원회 주민들이 쏟아내는 하소연은 입김을 타고 허공 속에 퍼져나갔다.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각자 살아온 삶의 궤적이 달랐지만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들의 ‘삶의 질’이 시간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비빌 언덕을 찾아 갈매마을로 들어왔지만 다시 또 쫓겨나야 할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걸어온 삶은 유목민과 다름없었다. 겨우 숨 돌릴만한 그들을 몰아낸 것은 바로 국가와 자본이었다. 이들에게 국가는 국민을 보호해주는 울타리가 아니다. 용역직원들의 장도리와 노루발못뽑이를 막아주는 것은 경찰이 아닌 철거민들의 ‘몸뚱아리’다.”


[출처 - 서울신문]



취재진은 격차사회 기획 세 번째 공간으로 현대자동차 울산3공장 아반떼 조립라인을 주목했다. 한국의 1700만 노동자 가운데 절반이 비정규직인데, 사내하청 노동의 문제는 가장 뜨거운 이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혼재하는 공간, 불법파견의 혐의가 매우 짙은 공간을 해체해보기로 했다. 이를테면, 정직한 돌직구를 던져보기로 한 것이다. 울산의 모텔방에서 1주일 이상 머물며 공장도 직접 들어가고 철탑 농성장의 노동자들을 인터뷰한 김선식 기자의 말을 직접 들어보면 이렇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한 촉탁직 노동자는 이달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었다. 그가 아직 현대차에서 일하는지, 결혼식을 올렸는지는 알 수 없다. 촉탁직은 2년 동안 일하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야한다는 법에 따라 현대자동차 사쪽은 2년 가까이 일한 노동자들을 그만두게 하려고 사퇴를 종용했다. 그 또한 현대차에서 일한 지 2년 가까이 된 촉탁직 노동자였다.



[출처 - 서울신문]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열에 아홉, 소개팅을 할 때마다 ‘정규직’이냐 ‘업체사람’이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했다. 이같은 질문을 받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불쾌한 기분을 느끼기도 전에,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건가”라는 자기검열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울산과 같은 공업지역에서 이런 질문은 일상이다. ‘어디를 다닌다’가 아니라 ‘정규직이다 비정규직이다’를 말하는 곳, 그런 울산을 이 사회 전체가 닮아가고 있다.”


정규직 노동자의 고용 안정을 위해 사내하청 노동자가 ‘인간 쇼바’로 쓰이고, 사내하청 노동자의 불법파견 문제가 불거지자 이를 또 회피하기 촉탁직을 쓰는 현대자동차의 악랄한 행태를 고발하는 기사였다. 그리고 <한겨레> 보도 뒤 3달이 채 지나지 않은 4월15일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촉탁직으로 일하다 잘린 공아무개씨가 자살했다는 보도가 들려왔다. 심한 무력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취재진은 이어 가장 형편 때문에 여덞살의 나이에 두 번씩이나 부모에게서 버려진 애꿏은 운명의 혜진이를 아동일시보호소에서 만났다. 현장을 취재한 이정국 기자는 “혜진이를 취재할 때는 흘러나오는 눈물을 참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다. 자신이 버려졌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더 밝게 방긋 웃는 혜진이의 모습에서 더 서글픔을 느꼈다”고 말했다. 기자가 처음 보호소를 찾은 그 날은 마침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생일잔치에 참석한 손자들의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사진이 인터넷에서 한참 화제가 된 날이었다.


격차사회 기획은 이어 몰락한 중산층이 모여들면서 다시 일어서지 못하는 공간으로 택시를 짚은데 이어 서울의 고시촌 피시방을 찾아 청년백수의 꿈과 좌절을 그렸다. 김선식, 이정국 기자는 청년들을 인터뷰하고 설문하기 위해 피시방에서 ‘뻗치기’를 마다지 않는 투혼을 발휘했다.



[출처 - 서울신문]



마지막 공간은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착취하는 현장, 서울 성수동 구두공장이었다. 대형 구두 브랜드 업체는 성수동 구두공장에서 4만원 조금 넘게 떼어간 물건을 백화점에서 27만여원을 주고 팔았다. 그렇게 구두공장 노동자의 노동은 싸구려 취급을 받았다. 그 곳에서 이해삼 민주노동당 전 최고위원을 만날 수 있었다. 서울성수수제화생산협동조합을 꾸려 이사를 맡고 있던 그는 제값을 받고 구두를 팔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렇게 열정적이던 그가 지난 4월21일 밤 서울 강변북로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는 뉴스를 들은 기자는 귀를 의심했다. 그의 명복을 빈다.


취재진은 발품을 파는 기사에 여전히 독자들이 목말라한다는 간단한 진실을 이번 보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독자들도 숫자에 파묻히고 전화통화로 채워진 기사보다는, 현장에 천착해서 사람의 냄새가 나는 기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진실한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이야말로 기자가 할 일이요, 기자가 가야 할 곳은 여전히 그리고 언제까지나 현장임이 틀림없다.


기자협회에 보낸 이달의 기자상 수상소감에도 썼지만, “이번 기획이 다소라도 빛이 났다면 그건 아마도 태양처럼 버티고 선 현장의 민중들과 달처럼 묵묵히 그 빛을 품고 적어내려간 이정국, 김선식 두 후배의 노력 덕분”이다. 그리고 그들은 여전히 현장을 지키고 현장을 달리고 있다. 또한 이번 기획으로 이룬 성취보다는 앞으로 가야 할 길이 100만 배는 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보다 많은 독자가 세상을 바꾸고 싶은 꿈을 꾸게 만드는 것, 이 또한 이 시대 기자의 구실임을 잊지 않겠다. 


  

이 글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신문과 방송> 2013년 5월호 한겨레 전종휘 사회정책팀장의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