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7. 24. 10:57ㆍ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루쉰에 비견되는 작가 왕멍
중국은 대국이지만 한동안 저평가된 나라였다. 그 이유는 경제와 정치체제의 후진성 때문이다. 싸구려 공산품과 위험한 식재료를 수출하는 나라, 혹은 빈부격차와 공직부패가 흔한 사회가 바로 중국이다. 하지만, 전통 문화와 오랜 역사적 측면에서 보면 역시 중국은 대국이라 불러야 마땅하다. 그 중국이 요즘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G2(글로벌 2개국)로 부상하면서 많은 작가들이 한국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2012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모옌이나 해외에서 더 유명세를 타며 뛰어난 소설들을 써낸 위화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치 않다. 그런데 왕멍이란 작가를 아는 이가 있을까?
왕멍은 1934년 베이징에서 태어나 올해로 팔순에 이른 작가다. 우리에게 익숙지 않지만, 왕멍은 오늘날 중국에서 루쉰에 비견될만큼 존경을 받는 인물이다. 그는 현대 중국의 대표 지식인이자 소설가였다. 열 네 살의 나이에 중국 혁명에 참가한 공산주의자였지만 문화대혁명의 칼날을 비켜가지 못하고 고난을 당한다. 그는 <조직부에 새로온 청년>이란 단편 소설을 쓴 후, 우파로 낙인찍혀 16년간 중국의 전통적 유배지인 신장지구로 하방되었다. 유배에서 풀려나 1979년 복권 돼 중국 공산당 전회에서 중앙위원으로 당선되고, 1989년 문화부 장관에 올랐다. 왕멍은 천안문 사태로 모든 공직에서 스스로 물러나 후, 숱한 작품들을 창작하며 2000년 이후 매해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고 있다.
<나는 학생이다>
그가 최근 한 편집자로부터 작가의 인생철학을 청탁받아 쓴 책이 있었다.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인생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정도일지를 논한 처세서이자 자전적 인생철학이다. 왕멍의 명저 <나는 학생이다>는 이렇게 세상에 등장한다. 얼마나 겸손하고 간명한가? 세상을 겪을대로 겪어 인생을 안다 주장해도 될 나이에 이른, 한 나라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13억 중국인의 문화부 장관을 역임한 사람이 자신을 학생이다, 고 낮춰 부르고 있다. 인생론의 주제이자, 삶의 정체성으로 그가 `배움'을 어떤 위치에 놓으려 하는지 독자는 책의 제목만으로도 미리 간파하게 된다.
왕멍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16년간 유배생활은 간단치 않았다. 중국의 신장지구는 한족과는 다른 위구르인들이 거주하는 공간이며, 언어와 문화가 다른 곳이었다. 196,70년대 10년간 지속된 문화대혁명은 우파에 대한 마녀사냥이 극에 달하던 시기다. 마오쩌둥의 사상을 추종하는 홍위병들은 사소한 이유를 들어 사람들을 인민재판으로 처형했고, 무고한 지식인들을 농촌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훗날 문화부 장관에 오른 후, 한 인터뷰에서 그는 " 그 고통스런 시절 왜 자살하지 않았느냐? "란 직설적인 질문을 받는다. 이에 왕멍은 "인생의 역경 가운데서도 무언가를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배움이란 과정안에서 고통을 이겨내고, 즐거움을 취한다는 인생철학은 결국 생명을 구했고, 훗날 그를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올려 놓는다.
" 나는 정말 내가 누구인지 깨닫게 되었다. 나는 학생이었다 ! 내가 일생 동안 학생의 신분이었다는 이 깨달음은 대단히 놀라운 발견이었다. 그렇다 ! 나는 학생일 뿐이었다. 비록 나의 학력은 고등학교 일 학년에서 그쳤지만, 그 이후 나는 조금도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나는 끊임없이 읽었으며, 각 분야의 지식들을 쌓아나갔을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모든 사람들을 스승으로 모셨고, 곳곳이 나의 교실이 있었고, 시시각각 언제나 학기중이었다."
55쪽, <나는 학생이다>, 왕멍
유배기간 16년은 박사가 되는 시간
왕멍의 인생론은 허황하지 않다. 이 책에서 배움에 앞서 전제하는 것은 바로 생존이기 때문이다. 하여 그는 인생을 건실한 집을 짓는 일에 비유한다. 사람들의 생존 조건과 가치에 대해 무관심한 이론들은 구름 한 귀퉁이처럼 비어 있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삶을 영위하기 위해 종사하는 사업, 노동, 매일매일의 땀이 모두 값지고 달콤하며 건강한 것이다. 다음으로 왕멍은 생존 이후에 가장 중요한 문제를 `무엇을 했는가'에 둔다. 그것이 어떤 이의 삶의 가치와 질을 결정한다고 말한다. 왕멍에게 그 `무엇'은 바로 학습이었다. 그의 생활 구석구석에 녹아 있는 인생의 줄거리는 바로 배움이었고, 학습을 통해 얻은 성취와 희열이었다.
그가 얼마나 배움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지는 바로 16년간의 유배 생활을 회고하는 문장에서 드러난다. 그는 16년간 위구르 족이 살고 있는 신장지구의 농촌에서 농사일을 거들며 살았다. 유배기간, 작가였지만 창작활동은 금지당했다. 복권 후에 한 외국인 친구는 그 오랜 시간의 공허와 고통을 어떻게 참아낼 수 있었는지 묻곤 했다. 왕멍은 그 시간을 위구르 언어 포스트닥터 과정으로 빗대 설명했다. 그러니까, 준비 2년, 대학 5년, 석사 3년, 박사 과정 3년, 그리고 포스트 닥터 3년이면 16년이 된다고 말이다. 왕멍은 한족이지만, 훗날 위구르어에 능통케 된다. 유배기간을 위구르어를 배우는 시간으로 환원해 살지 않았다면 그의 삶은 정적에 대한 원망과 분노의 시간으로 채워졌을게 분명하다. 무위도식하며 세월을 허송하지 않고, 배움을 외부의 힘에 의해 박탈당하지 않는 유일한 권리도 생각했단 증거 아니겠는가?
배움, 위대한 스승의 구호
이 책은 배움이란 저자의 중심적 인생철학으로 시작해 중국 고전 철학을 삶에 응용하는 다채로운 논술을 담고 있다. 오늘날 숱한 자기계발서가 나름의 비전을 내세우며 젊은 독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뛰어난 인생론은 기발한 논리와 미사여구를 풀어놓는 것에 있지 않다. 인생론을 표방한 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저자 자신이 살아온 삶의 알맹이다. 철학이 실천의 옷을 입지 못하고, 숱한 고난의 실험을 거치지 않았다면 화려한 말 잔치에 그칠 뿐이다. 왕멍의 인생론은 처절한 고통을 이겨내고 터득한 경험의 문장들을 주축으로 한다. `나는 학생이다' 라는 그의 고백은 오늘 책을 사랑하고, 무언가를 배우는데서 희열을 느끼며, 지적 호기심이 가득한 책 읽는 사람들을 향한, 위대한 스승의 응원의 구호다.
"자기가 풍부해야 세계의 풍부함을 만끽할 수 있다. 비좁고 완고한 사람의 세계는 영원히 헤어나오지 못하는 동굴과 같다. 자기가 배우기를 좋아해야 세계의 신기함을 느낄 수 있다. 게으른 사람의 세계는 단조로움의 반복일 따름이다. 자기가 선량해야 세계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음모가의 주변은 영원히 보이지 않는 함정이다. "
349쪽, <나는 학생이다>, 왕멍
승진과 생활의 방편을 위해 공부하지만 진정 인생을 위해 학습 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인생의 가치를 배움에 두고, 배움을 통해 역경과 고난을 이겨낼 수 있었던 왕멍은 우리에게 시시하는 바가 많다. 학습을 취미로 생각하고 배움에서 도락을 삼는다면 왕멍처럼 역경이 우리 삶을 포위하더라도 두려울 게 무엇이겠는가? 한 나라의 대작가이자, 13억 중국인의 스승인 왕멍의 책을 읽고 가슴이 먹먹해 왔다. 주위를 둘러봐도 책에서 즐거움을 찾는 이가 없고, 배움의 가치를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도 흔치 않다. 사리사욕과 향락에 포위된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로 가득찬게 이 사회다. 어디서 젊은이들은 지혜를 구할 것인가? 인생의 보물들이란 결국 매일의 학습과 끝없는 지적 호기심 안에서 발견하기 마련이다. 이 분명한 진실을 말해주는 저자를 만난건 반갑고 기쁜 일 아닌가?
참고도서: 왕멍 <나는 학생이다> ㅣ 임국웅 옮김 ㅣ 들녘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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