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2. 10. 13:21ㆍ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실패’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어둡고 차갑습니다. 그와 오버랩 되는 좌절, 상처, 고통, 아픔과 같은 단어들 역시 칙칙하기만 합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표현은 이제 너무나 진부해 어떤 자극이나 감동도 전해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마치 ‘노력은 배반하지 않는다.’는 명언처럼 말이지요. 그것이 진리임은 부정할 수 없으나 늘 곁에 있어 소중함을 망각하는 공기처럼 흔해빠진 평범한 말은 우리의 심장을 두드리기에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우리에게는 좀 더 구체적이고 진솔한 ‘실패 이력서’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세상이 온통 성공을 향해 질주할 때 홀로 넘어져 깨져도 그것이 결말은 아님을 깨닫게 해주는 이야기 말이지요.
[출처 - 알라딘]
볼프 슈나이더의 <위대한 패배자>를 선뜻 집어든 것은, 따라서 그러한 마음이 일었기 때문입니다.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진 위대한 패배자들의 삶을 통해 실패에도 나름의 의미가 있음을 알고 싶었습니다. 이 책의 부제는 ‘한 권으로 읽는 인간 패배의 역사’입니다. 1등만 기억하는 세상과 세계사에서 2등이 있었기에 1등이 있을 수 있었음을, 패배자가 있었기에 승리자도 있었음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저자 볼프 슈나이더의 말처럼 그들을 통해 우리는 깨끗하게 승복할 줄 아는 아름다운 패배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지요. 때로 ‘위대한 패배자들’의 모습에서 우리 자신을 깨닫기도 합니다. 엄청난 재능을 타고 났어도 실패한 그들의 모습을 보며 ‘그래, 나도 실패할 수 있어’ 위안이 되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들 대부분이 겪는 좌절의 아픔을 겪었지만 그 운명을 비극으로 승화시킬 줄 알았던 그들에게서 어떤 비장함과 숭고함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책은 세계문학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비극적 주인공들을 비롯해서 25명이 넘는 좌초된 영웅들의 삶을 10가지 패배의 유형으로 분류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주인공들은 이렇습니다. 체 게바라, 고르바초프, 엘 고어, 메리 스튜어드, 루이 16세, 요한 슈트라우스, 오스카 와일드, 엘런 튜닝, 그리고 사후에 세계를 평정한 탕아 빈센트 반 고흐에서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으나 끝내 일어서고만 윈스턴 처칠과 덩샤오핑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국경과 직업을 초월해 다양한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 (왼쪽부터) 고르바초프, 빈센트 반 고흐, 체 게바라 [출처 - 서울신문]
‘종(種)’으로서의 인간은 진화의 무수한 굴곡을 넘어온 고독한 승자이지만, 개인으로서의 인간은 모두 실패하고 좌절한 사람들에 가깝다.
20세기 문턱까지만 하더라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가난과 굴종을 바꿀 수 없는 질서나 하늘이 정한 이치로 생각하며 묵묵히 감수했다. 그러니까 가난을 패배로 생각하지 않고 인간 세상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원리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모든 사람이 돈과 권력, 명예, 명성, 메달을 향해 끊임없이 경쟁을 벌이는 체제로 바뀌었고, 그로 인해 다수가 낙오하고 패배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경쟁에 뒤진 사람들은 운명을 탓하거나 자신을 패배자로 여기며 가슴을 쥐어뜯는다.
저자는 이야기합니다. 실패는 당신이 열등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다시 출발해야 할 이유를 의미한다고. 이 책은 무한경쟁의 시대, 성공위주, 성장위주의 이데올로기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에게 성공의 원초적 근원으로서 실패에 대한 새로운 가치인식을 심어줍니다.
역사책에 기록되는 것도, 우리의 기억 속에 머무는 것도 오직 1등, 승자뿐인 현실에서 400페이지 가량을 할애하며 저자가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는 과연 무엇일까요? 사실 저 역시 성공이데올로기에 길들여져 있는지라 온통 패배만 가득한 책 한 권을 읽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나만의 잣대와 가치로 그들을 평가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우리가 승리자의 삶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때론 실패자의 삶이 더 큰 교훈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이 책이 알려주었죠.
1986년까지 122차례나 대회에 참가해서 한 번도 지지 않았던 에드윈 모제스도 학창시절에는 달리기 대회에서 한 번도 일등을 차지한 적이 없는 소년이었다. 그런 그가 이렇게 말했다.
“모든 패배 속에 승리가 숨어 있다.”
패배가 승리의 밑거름이라는 뜻이다. 만일 헨리 포드에게 이런 철학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포드자동차사는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는 서른아홉에 두 번의 도산으로 폭삭 망한 다음 이렇게 말했다.
“실패는 새롭게 출발할 기회를 준다. 그것도 좀 더 영리하게 출발할 기회를.”
무언가에 실패할 것이 두려워 전전긍긍 눈치만 살피고 있다면 실패로 가득한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요?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패배를 도약의 기회로 삼는 것은 중요합니다. 실패를 받아들이고 어떤 일의 실패가 곧 내 삶의 실패와 동일시되지 않음을 깨닫는 것도 중요하지요. 어쩌면 역사는 우리에게 이러한 교훈을 안기기 위해 그토록 많은 ‘위대한 패배자’를 만들어 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참고도서
볼프 슈나이더 저, 박종대 역 <위대한 패배자> 을유문화사. 2005.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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