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故人)의 페이스북을 관리하는 사람들? ‘디지털 유산’의 모든 것

2014. 4. 30. 10:52다독다독, 다시보기/기획연재




구글의 에릭 슈미트 회장은 인류의 문명이 시작되고서 2000년대 초반까지 30만년 동안 인간이 만든 데이터는 5엑사바이트(약 500만 테라바이트)였는데, 이 정도의 데이터는 현재 이틀이면 생산된다고 발표했습니다. 블로그와 트위터, 페이스북 소위 개인 미디어를 대표하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ocial Network Servuce) 즉, SNS의 이용률과 영향력은 점차 높아지고 있습니다. 1인 1미디어를 넘어 개인이 다루는 미디어 플랫폼은 두세 개가 기본인 지금, 하루에도 생산되고 확산되는 정보의 양은 이처럼 상상도 못할 정도로 많습니다.


이처럼 누구나 정보를 생산해가는 현대사회에서 정보도 하나의 자원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채집하고 정리하고 모아 놓은 하나의 온라인 콘텐츠가 어느 순간 큰 돈이 되기도 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는데요. 이런 상황 속에서 디지털로 된 정보 역시 다음 세대를 위해 남겨 놓아야 하는 자원이자 유산으로 취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 이용자가 많이 줄었지만 ‘미니홈피’ 서비스는 대한민국 SNS 1세대라는 명성으로 지금까지 서비스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 이 미니홈피 서비스가 종료된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오랫동안 이용하지 않고 있던 가입자들도 자신들이 남겨 놓았던 사진과 영상 등의 자료들이 어떻게 될지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일부 서비스만 종료하고 미니홈피 서비스는 계속 유지되고 있어 미니홈피를 통해 남겨 놓았던 자신의 기억이 보존되고 있다는 것에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출처_싸이월드



많은 추억들도 데이터로 인터넷 공간에 남아 있는 지금, ‘디지털 유산’이라는 개념이 새롭게 주목 받게 됐습니다. 오늘 말하게 될 디지털 유산은 사전적 의미로 ‘미래 세대를 위하여 보존해야 할 지속적인 가치를 갖는 컴퓨터 기반 자료’[네이버 지식백과] 디지털 유산 [digital heritage] (기록학용어사전, 2008.3.10, 역사비평사)를 말합니다. 즉 미래 세대를 위해 보호하고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디지털 정보라는 개념이죠.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디지털 유산의 개념은 공공성과 공익성이 짙은 성격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실 전 세계에 떠도는 디지털 정보의 생산자가 일반 시민이라는 점에서 디지털 유산의 범위는 점차 확대되고 있습니다. 즉, 블로그에 오늘 내가 올린 글이나 페이스북 담벼락에 남긴 사진 한 장 등 모든 온라인 활동을 하면서 만들어낸 콘텐츠가 나의 후세대를 위한 귀중한 자원이 될지도 모른다는 거죠. 이처럼 현대에 와서 디지털 유산의 개념은 조금 더 개인적인 영역으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미니홈피와 블로그 등에 내가 남긴 글들, 비록 나는 사라지더라도 이 정보는 영원히 남아있게 됩니다. 고인(故人)이 된 연예인들이나 지인의 미니홈피를 발견하면 아직도 떠나기 전의 환하게 웃던 모습이 남아 있어 그것만으로도 주변 사람들에게는 귀중한 자원이 될 수 있는데요. 이런 사이트는 대부분 사이버 공간에 그대로 남겨져 비밀번호를 아는 지인에 의해서 운영, 관리 되거나 비밀번호를 남겨놓지 않은 경우에는 방치돼 있습니다.


디지털 유산에 관해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지난 2010년 천안함 침몰로 젊은 장병들이 숨지면서 이들의 유족들이 미니홈피와 이메일에 접근할 수 있도록 요청하면서부터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요청은 결국 거절되어 논란이 되었고, 이후 유명인의 자살이나 사망 등의 사건이 발생하면서 디지털 유산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우리나라에 비해 미국을 비롯한 유럽권 국가에서는 이 디지털 유산에 대한 법적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2013년 미국 버지니아주에서는 미성년 사망자의 디지털 재산의 보존에 관한 법률이 최종 확정, 통과된 사례가 있습니다. 2011년 미국 버지니아주의 15세 소년 ‘Eric Rash’는 스스로 삶을 마감했습니다. 충격에 빠진 부모는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의 단서라도 알기 위해 아들의 페이스북 계정에 접속하려 했지만, 페이스북에서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죠. 부모는 자녀의 디지털 계정에 접근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이미지 출처_Flickr by mkhmarketing



이 일을 계기로 미성년 자녀가 사망한 경우 부모가 자녀의 계정에 접근할 수 있는 법제화 논의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급물살을 타면서 결국 버지니아 주법이 개정되어 디지털 재산 보존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국내에서도 이와 같은 사례가 많아지고 있지만, 현재까지의 법률은 가족이라 할지라도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려줄 수 없다고 해요.


바로 ‘제49조(비밀 등의 보호) 누구든지 정보통신망에 의하여 처리, 보관 또는 전송되는 타인의 정보를 훼손하거나 타인의 비밀을 침해, 도용 또는 누설하여서는 아니 된다.’라는 법 조항이 존재하기 때문이죠. 이처럼 디지털 유산이라 하더라도 고인의 기록물은 재산이 아니기에 유족들이 상속할 수 없습니다. 가족들이라 하더라도 죽은 사람이 비공개로 남겨 놓은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사자(死者)’의 의지에 반하거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다고 인정할 정도로 정보 보호는 매우 민감한 사항이기 때문입니다.



이미지 출처_nytimes.com ‘cyberspace when you`re dead’(2011. 1. 5)



하지만 사용하지 않는 데이터를 일부 제거하거나 수정 및 관리를 하는 게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실제 사이트가 방치되면서 무분별한 광고글이 도배되기도 하고, 인터넷 서비스 업체에서는 활용되지 않는 사이트의 데이터 베이스가 쌓여 서버에 과부하가 걸리는 경우도 있어 문제가 되곤 합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이제 고인이 남긴 흔적을 온라인에서도 지워주는 ‘사이버 장례식’ 문화가 등장했는데요. 미국의 온라인 상조회사 ‘라이프인슈어드닷컴(lifeensured.com)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장의사’라는 개념이 디지털 유산에 이어 새롭게 주목 받고 있습니다.





죽은 자의 온라인에서의 인생을 지워주는 일을 맡아 하는 직업도 있습니다. 흔히 ‘디지털 장의사’라고 불리는 이들은 고인의 흔적 지우는 일을 대신 해줍니다. 페이스북에 올려둔 사진을 지우는 것은 물론 다른 사람의 게시물에 남긴 댓글까지도 찾아 지워줄 정도로 온라인에서의 모든 활동을 정리해주는 일을 하죠.


누구나 한번쯤은 ‘내가 죽고 나면 내가 그동안 가입한 사이트나 인터넷 서비스는 어떻게 하지?’라고 생각해봤을지도 모릅니다. 라이프인슈어드닷컴은 기존의 상조문화를 온라인으로까지 끌어들여 비즈니스모델로 착안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라이프인슈어드 외에 세계적으로 디지털 장의사는 속속 등장하고 있고,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계정 삭제 사이트인 ‘웹2.0 자살기계(suicidemachine.org)’,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의 메시지를 삭제해주는 ‘세쿠푸(seppukoo.com)’ 등 그 종류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IT업체 구글에서도 휴면계정관리자를 이용해 일정 기간이 지나면 모든 데이터가 삭제되거나 유족에게 양도되도록 하는 ‘디지털 유언 서비스’를 시작했을 정도입니다.



이미지 출처_ 레가시로커



이처럼 세계적으로 디지털 장의사는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아직까지 온라인을 통한 장례문화에는 문화적 차이와 법적, 윤리적 제한이 따르고 있습니다. 디지털 흔적을 말끔하게 지우거나 타인에게 물려주는 일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떨어지기에 아직까지 제대로 된 논의도 되지 않고 있는데요.


디지털 유산과 디지털 장의사.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은 분명합니다. 물론, 그런 장례문화의 필요성에 누구라도 고개를 갸우뚱 하겠지만, 새롭게 변화하는 디지털 세상 속에서 디지털 유산에 대해 진지한 고찰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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