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7. 25. 09:21ㆍ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신문을 읽으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 그러나 다르게 보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지난달 초, 여자친구가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울상을 지었다. 초콜릿 값이 작년에 비해 무척 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을 주지 말라고 부탁했다. 매년 밸런타인데이마다 초콜릿을 직접 만들어왔다던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녀가 물었다. “왜 남들은 다 받는 사랑의 증표가 받기 싫다는 거야?” 나는 얼마 전에 신문에서 읽은 이야기를 그녀에게 전했다.
초콜릿 원료 카카오의 학명은 ‘신의 음식’이다. 고상한 이름과 달리 카카오 나무는 아이들의 고통을 먹고 자란다. 서아프리카 지역 카카오 농장에서 25만 명에 이르는 아이들이 하루 두 끼만 먹으며 12시간을 일한다. 아이들은 단돈 15달러에 부모의 손에서 팔려간다. 노예에 가까운 중노동에 시달리지만 어쩌면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농장에서 일하면 끼니라도 때울 수 있기 때문에.
세계 카카오 생산의 40퍼센트를 담당하는 코트디부아르에 전운이 감돌며 아이들은 더 비참한 처지에 내몰렸다. 작년 11월 28일 대선에서 패한 전 대통령이 권력 이양을 거부해 사실상 내전 상태에 접어들었다. 무력 충돌로 인해 사상자가 속출하고 이재민이 주변국으로 몰려 들었다. 카카오 농장도 문을 닫았다. 그곳에서 맨몸으로 쫓겨난 아이들은 주린 배를 채우려고 쓰레기를 뒤진다.
나는 말했다. “몰랐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이런 안타까운 사실을 알게 됐으니 이제부터라도 내 행동을 바꿔야지 싶었어.” 여자친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문을 정독하면 생각이 복잡해진다. 세상에 간단한 일이 하나도 없는 까닭이다. 초콜릿 가격 하나도 국제정세의 영향을 받는다. 페루 앞바다의 라니냐가 이상 기후를 야기해 흉작을 불러 오고, 이 때문에 에그플레이션(식료품 가격 상승에 의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해 중동에서 민주화 혁명이 일어난다. 그래서일까. 신문을 읽으면서 나는 한층 조심스러워졌다. 복잡한 세상에서 내 말과 행동이 어떤 결과를 야기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피곤하기도 하다. 저렴한 가격의 SPA브랜드에 환호하다가 발길을 돌린다. 방글라데시 의류공장 노동자에 대한 노동 착취에 일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쇼핑도 맘 편하게 못한다.
그래도 나는 신문을 읽는다. 당장은 불편할지라도 그 속에서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신문을 읽으면 우리나라, 나아가 전 세계에서 생기는 일에 내가 관여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내 행동의 작은 변화가 전 세계를 바꿀 수도 있다는 말이 아닌가. 나쁜 초콜릿 때문에 고통 받는 아프리카 아이들의 눈물을 닦아주려면 공정무역초콜릿을 사 먹고, 이상기후를 걱정한다면 당장 일회용품 사용부터 줄일 일이다.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공감의 시대’가 온다고 말한다. 공감은 타인의 고통에 반응하는 능력이다. 공감하는 능력을 키우는 데 신문만한 것이 없다. 미래를 만들어 가는 나, 그런 나를 만들어주는 신문. 신문이 주는 불편함은 그래서 즐거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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