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학생의 독서 운동 프로젝트, '책장난' 이야기

2015. 1. 26. 09:00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출처_ abogadozgz  



어느 날 평소와 다름없이 SNS를 하고 있던 김다독은 어떤 사용자로부터 메시지 하나를 받았습니다. 호기심 가득한 김다독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닌 것 같아 보여 책장난 프로젝트에 동참하고자 합니다. 1단계, ‘주변에 있는 아무 책이나 본능적으로 집어든다’…. 주변에 책이 없네. 최근에 읽었던 책이 없나? 최근에 읽었던 책이 뭐더라…. 책장까지 걸어가 아무 책이나 한 권 집어들고 다음 단계를 따라 갑니다. SNS에서 해쉬태그를 검색해보니 벌써 이천 개에 가까운 게시물들이 올라왔습니다. 주변 SNS 친구 중 한 두 명이 책장난 프로젝트 게시물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취지는 우선 좋아 보입니다. 도대체 이런 걸 누가 시작한 걸까? 왜 하는 걸까?





 ‘지’와 동거, 책장난의 시작


이 책장난 프로젝트는 평범하지만 기발한 한 대학생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현대 사회에 들어서 점점 사람들은 책을 손에서 놓기 시작했습니다. 책보다는 스마트폰, 노트북, 텔레비전이 사람들에게 더 익숙하고 가까운 건 어느 샌가 당연한 일이 되었습니다. 최근에 본 영화나 드라마에 대해선 사람들과 쉽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반면, 최근에 읽었던 책은 도통 무엇인지도 쉽게 떠올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책 선물이 이제는 조금 덜 반갑게도 느껴집니다.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이제는 당연한 것이 아니라, 특별하고 대단한 일이 되었습니다. 


평범하지만 기발한 대학생은 사람들에게 더 이상 책장 넘기는 좋은 소리가 나질 않아 안타까움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책 읽기 참 어려운 현대 사회에서 책과 함께 동거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합니다. 그러다 책장난 프로젝트를 기획합니다. 평범하다면 평범한 한 대학생의 조그마한 생각에서 시작한 이 책장난 프로젝트는 이제 많은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고 있습니다. 이 책장난 프로젝트를 시작한 서동진 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간단한 소개와 책장난 프로젝트(이하 책장난)에 대한 소개 부탁합니다.

 가천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는 서동진이라고 합니다. 책장난은 학교에서 하는 디자인문화운동작업전 프로젝트에서 시작된 거에요.


 디자인문화운동작업전이 무엇인가요?

 디자인문화운동작업전은 수업에서 팀을 꾸려서 프로젝트 및 전시를 하는 거에요. 디자인문화운동작업전의 의의는 단기간이 아닌 오랜 시간 동안의 디자인을 해보자라는 거에요. 주제를 매년 하나씩 정하고 그에 맞는 프로젝트를 하는 건데 올해는 ‘동거’가 주제입니다.


디자인문화운동작업전은 한마디로 ‘긴 줄 세우기식’, ‘도토리 키재기식’ 기존 교육으로부터 비롯한 디자인 안팎의 위기에 대한 도전과 개혁의 일환으로 시도한 통합교육 프로그램이다. 강조하자면 디자인과 예술, 이미지와 텍스트 재료와 미디어, 현상과 본질, 학교와 현장을 가로지르는 프로젝트형 대인교육이다. 2002년 ‘솟대’를 주제로 시작한 디자인문화운동작업전은 하나의 주제를 1년간 ‘본질, 상상, 의미’의 키워드로 집중하면서 사고와 맥락을 종합화하고 장르를 넘나드는 총체적인 경험을 통해 자립과 문화 생산자로서의 주체적 역량을 강화한다. 한편, 다양하게 개발된 주제 관련 예술적·인문적 디자인콘텐츠를 문화상품으로, 공익의 서비스로 혹은 사회에 대한 발언과 소통으로 새로운 가치를 모색하고자 하는 디자인 운동이기도 하다.

「13회 디자인문화운동작업전 책자 중」


 동거라는 주제를 어떻게 책장난과 연결했나요?

 책장난은 ‘지’와의 동거로 생각한 것이에요. 이 ‘지’는 두 가지를 뜻하는데, 바로 알 지(知)와 종이 지(紙)에요. 사람들이 언젠가부터 종이로 된 책을 읽지 않잖아요. 한편에서는 종이책이 곧 멸종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제가 한 기사를 읽었는데 서울시의 초등학교, 중학교 교육에서 종이로 된 교과서 책을 없애고 컴퓨터로 대체한다는 말이 있더라구요. 이 기사 외에도 여러 신문 기사나 출판 업계에서 종사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책을 살리자는 생각을 했어요. 그게 바로 이 책장난의 취지입니다.





  책장난이라는 이름이 귀여운데 왜 책장난으로 지었나요?

 일부러 장난스럽게 지었어요. 제가 생각한 프로젝트의 문제 의식이 실제로는 심각한 문제잖아요. 지금 사회에서 책을 읽지 못한다는 것은 ‘읽기 싫어서’가 아니라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도무지 나지 않아서’인 것 같아요. 얼마나 시간이 안 나면 시간을 내서 책을 읽는 ‘북캉스’라는 것이 생기겠어요. 이렇게 사회 현실이 반영된 캠페인이자 프로젝트를 제 스스로도 무겁게 제기하면 너무 무거워질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일부러 장난스럽고 가볍게 지은 거고 매체도 가벼운 SNS를 이용한거에요.


 책장난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나요?

 작년 11월 21일에 시작했어요. 제가 아주 최근에는 확인 못했는데 가장 최근에 한 게 12월 23일인데, 그 기준으로 페이스북에는 1945개 게시물이 올라와 있었고 인스타그램도 하루에 평균 5명씩은 꾸준히 게시하는 것 같아요. 인스타그램이라는 SNS 특성상 전체공개의 해쉬태그만 볼 수 있기 때문에 조금 더 있지 않을까 추측해요.


  한편에서는 원했던 결과보다 허세 차원의 게시로 끝나는 건 아닐까 염려도 해요.

 사실 저는 그런 부분을 노렸어요. 모든 사람들이 책을 좋아해서 읽고 올린다기 보다는 그저 뽐내기용이나 과시용으로 올리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거에요. 그게 SNS의 특징이잖아요? 근데 저는 오히려 그 부분을 기대했어요. 20개가 올라왔다고 해도 적어도 그 중 하나는 그래도 좋은 것이 있고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끼칠 수 있잖아요. 프로젝트 디자인한 저도 직접 본 것들 중에 제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들이 있거든요.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 게시물은 무엇인가요?

 제일 감명 깊었던 것은 릴레이 진행 중에 (제가 쓰지 않은) 꼬릿말이 하나 더 생겼다는 거에요. 이 꼬릿말도 함께 퍼졌는데 ‘#다단계 책읽기에 동참합니다. 이 다단계가 널리 퍼져 많은 분들이 종이책을 읽고 그 덕분에 책이 종말을 고하지 않을 작은 항거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에요. 뿌듯했어요. 제가 직접 지은 것도 아니고 대중이 지어준 말이잖아요. 마치 저한테 주는 상처럼 느껴졌어요. 인정받는 느낌도 들었고.


 우와 귀엽네요. 책장난을 통해서 가장 얻고 싶은 결과물이 무엇인가요? 개인적인 차원도 좋고 사회적 차원도 좋아요.

 진행과정에서 개인적으로 바라는 것은 조금만 더 파급력이 커졌으면 좋겠어요. 이 방법을 아이스버킷챌린지에서 영감을 얻었거든요. 아이스버킷챌린지 경우에 엄청난 파급력을 통해 화제를 이끌어 냈잖아요. 효과도 더 증대됐고. 책장난도 좀 더 그 효과가 커졌으면 좋겠어요. 사회적인 차원으로는 사람들에게 책이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는 것이에요. 종이책을 사는 유통 구조가 예전처럼 정상적으로 돌아오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사실 책장난을 시작한 이유가 낭만적인 거잖아요. 저는 책의 힘이나 지적인 힘을 믿거든요. 우아함은 책에서 나오는 거에요. 또 이 프로젝트가 잘 된다면 SNS상에서 멈추지 말고 자료를 모아서 종이책으로 출간하는 식도 좋을 것 같아요. 전시도 하고 싶어요. 감동적인 문장들이 많아서. 재미있는 것도 많았고요. 한 문장, 한 문장이라 사람들이 읽기도 쉽고 전시하면 보는 재미가 있을 것 같아요.”


 평소 독서량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합니다.

 요즘 스펙 전쟁 때문에 다들 책 읽고 앉아 있을 시간이 없다고 말하잖아요. 남들보다는 많이 읽는 것 같은데(웃음). 대외활동도 하고 공모전에도 참가하지만 자는 시간, 먹는 시간 줄여서 책을 보려고 해요. 환경적으로도 국문과 출신 어머니 덕분에 어릴 때부터 책이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독서에 긍정적으로 노출되었고 그래서 책의 힘을 믿어요. 그 책의 힘을 타인에게도 전하고 싶어요. 책을 많이 읽으면 그릇이 커지는 것 같아요. 스펙 쌓기를 할 때도 힘이 덜 드는 것 같아요. 다른 걸 해도 흡수력이나 습득력이 더 빨라지는 것 같고 수용할 수 있는 영역들도 넓어지는 것 같아요.


   

출처_Instagram Photos



 책장난을 진행하면서 힘든 점이 있나요?

 네. 아카이빙이 잘 안되는 게 힘들어요. 인스타그램은 그래도 해쉬태그 덕분에 쉬운데 페이스북은 아카이빙이 쉽지 않아 안타까워요. 인스타그램의 경우 장르별로 나눠서 보니 재밌는 것도 많았고 웃긴 것도 많고 또 감명 깊은 것도 많고. 분야별로 되게 골고루 있더라구요. 아카이빙을 잘 하면 얻을 것이 많을텐데 그 점이 좀 아쉬워요.


 혹시 차기 프로젝트도 있나요?

 1년 동안 길게 하는 프로젝트인데 아마 이후에는 책장난과 연관된 다른 나뭇가지를 칠 수 있는 모색을 할 것 같아요. 1년 뒤엔 어떤 작업물이 나와 있을지 모르겠어요. 이 전시는 아마 졸업 전시 시즌인 10월이나 11월 즈음 할 거에요.


 종이책으로도 출간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사람들이 올려준 글이라서 저작권의 문제가 걸리겠지만(웃음) 그랬으면 좋겠어요. 사실 상업적인 목적이 아니라 순수한 의도로 요청했는데 상업성 있는 책 발간으로 이어지면 좀 곤란할 것 같기도 해요. 수익금을 모두 기부를 한다던가 하면 되지 않을까요? 수익을 볼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책 속의 책 문구를 보고 사람들이 그 책을 사고 싶다는 흥미를 갖고 행동적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나요?

 책과 독서를 고상한 취미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책이 사람의 정서에 분명히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거든요.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으로 지식을 검색하는 건 휘발적이지만 책을 통한 지식은 축적이 되거든요. 요즘 사람들이 전자 기계를 잘 다룬다고 호모모빌리언스라고 하지만 언젠간 문제가 생길 거에요. 종이를 많이 만진 사람과 쇠를 많이 만진 사람이 정서적, 감성적으로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 책 많이 읽는 사람은 확실히 티가 나요. 책장 넘기는 좋은 소리가 나요. 반면 기계만 만지는 사람은 뭐랄까 스뎅(?) 소리가 나요. 하하.





 길게 호흡하는 독서 문화로


26살의 동진 씨는 책의 힘을 믿습니다. 또 무형의 디자인이더라도 디자이너와 대중들이 함께 상생해서 하나의 목표나 가치로 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디자이너가 예술가에게 부족한 단 한 가지가 조급함이고 디자이너가 예술가에게 배워야 할 단 한 가지는 길게 호흡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동진 씨는 아직 뚜렷하게 또 단 기간 내에 정한 것 없지만 이 프로젝트를 장기적으로 연구하고 싶다고 합니다. 


사실 책장난이라는 프로젝트는 얼핏 보면 가볍고 큰 의미 없는 ‘쉬운 동기’인 것처럼 보입니다. 이미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보고 있자면 시작하는 것이 어렵지 않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쉬워 보이는 프로젝트도 많은 고민과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행동으로 옮기는 것도 늘 어렵지요. 책장난이 2천 개 정도의 게시물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더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SNS 게시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꺼내 본 책을 한 번 쭈욱 읽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다음 번에 책장난을 하는 사람은 주변에 책이 없어 당황하는 것이 아니라 눈 앞에 책이 많아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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