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하여라, 어른이 되면 알게 되는 맛의 세계

2015. 3. 30. 02:00다독다독, 다시보기/생활백과


어린 시절 유난히 편식이 심했던 다독지기. 밥상 앞에 앉으면 오늘은 과연 어떤 괴물을 만날까 항상 두려워하곤 했었죠. 일단 푸른 채소는 절대로 못 먹는 편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최고는 깻잎조림이었죠. 독특한 향 때문에 냄새도 맡기 싫었으니까요. 그러다가 엄마한테 혼도 나고 억지로 먹다가 울고 그랬는데, 저희 아빠께서는 “나중에 크면 다 먹는데 뭘 그리 억지로 먹여?” 하시면서 제 편을 들어주시곤 했죠. 사실 저희 아빠도 안 먹는 음식들이 있었거든요. ^^ 


요즘 아이들 편식은 그때 그 시절보다 훨씬 더 심해져서 엄마들은 전전긍긍하기도 합니다. 엄마들도 편식하면서 성장한 세대들이니, 아이들의 편식도 사실 이해가 되지요. 엄마의 편식이 요리에도 반영되어서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주기도 하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들은 아이들의 편식이 영향의 불균형을 낳을까봐 노심초사 고민입니다. 


채소 싫어하는 아이들을 위한 요리 Tip으로는 아이에게 익숙한 음식 재료를 써서 채소의 맛을 감춘다거나, 아이가 좋아하는 소스 이용 등 다양한 방법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자세한 기사는 아래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출처_국제신문



편식에 대한 과학적 접근과 해결법은?


편식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편식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은 있을까요? 어린 아이들 중에서도 당근이나 오이를 아주 잘 먹는 경우도 있거든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유전적인 특성인지 후천적인 학습 때문인지는 학자마다 의견이 분분하다고 합니다. 미국 심리학자 로버트 자이언스는 이러한 편식현상을 ‘단순노출효과’를 통해 개선할 수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였습니다. 자신이 싫어하는 음식에 반복적으로 노출돼 익숙해지고 친숙해지면 거부감이 줄어들어 먹게 된다는 것이죠. 




출처_국민일보


편식이 심하면 사회생활을 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으니 편식을 고치기 위한 다양한 노력아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편식에 대한 다독지기의 신념은 저희 아빠가 들려주신 말씀에 동의합니다. “어른이 되면 다 먹게 된다”는 것이죠. 


파, 마늘, 양파, 깻잎 맛을 알게 되다 


오늘은 편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사실은 어린 시절의 편식 때문에 어른이 되면서 새롭게 알아가게 된 “새로운 맛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파, 양파, 마늘. 어릴 적에는 공포의 양념 3인방이었던 채소들입니다. 절대 입에도 대지 않던 3대 채소를 먹게 된 것은 사실 고기 덕분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파를 먹게 되었는데, 로스구이할 때 같이 먹게 되는 파절이 때문에 그 맛에 빠져들었습니다. 마늘은 고등학교 때 먹기 시작했는데 생마늘을 고기랑 같이 싸먹으니 너무 맛있더라구요. 물론 그때 마늘을 많이 먹으면 지독한 입냄새가 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죠. 그래서 낮에 고기 먹으러 가면 요즘도 고민해요. 먹을까? 말까? 양파는 자장면 먹으면서 텄습니다. 춘장에 양파 찍어먹는 맛은 정말 칼칼합니다. 깻잎을 먹게 된 것도 고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삼겹살이나 목살 같은 돼지고기에는 상추 위에 깔깔한 깻잎을 한 장 깔고 같이 싸먹는 게 좋지요. 그건 뭐랄까 넘쳐나는 돼지고기의 풍요로움에 균형을 맞춰주는 일인 것만 같아요. 




익혀 먹기와 구워 먹기, 또다른 맛의 세계


그렇지만 파, 양파, 마늘의 또 다른 맛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오뎅국에 함께 넣고 끓여서 흐물흐물해진 대파의 부드럽고 따끈하고 달콤한 그 맛. 설렁탕에 송송 썰어넣는 파의 향취는 또 어쩔거며, 눈물 나게 매운 양파가 국물 속에서 익혀지면서 뿜어내는 그 부드러운 단맛은 어쩌란 말입니까? 


그리고 마지막 압권은 구워먹는 마늘의 미덕이죠. 저는 고기 먹으러 갔을 때 생마늘을 접시째 통으로 불판에 쏟아붓는 사람들을 원망하곤 했습니다. 오직 생마늘만을 좋아했으니까요. 구운마늘에 대한 선호는 왠지 꼰대들의 특성인 것만 같았죠. 마늘을 구워먹기 시작한 건 정말 최근의 일입니다. 속이 아플 정도로 매운 마늘도 불판에 구워 먹으면 그 매운 맛은 다 사라지고 부드럽고 행복하고 고소한 미덕을 품게 되지요. 구운 마늘의 맛은 미덕이라고밖에 표현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마늘 굽다가 태운 사람을 원망합니다. ^^ 


채소 익혀먹기에 빠져버린 요즘은 구운 야채가 점점 좋아집니다. 가지, 토마토에 마늘과 양파 다진 것과 소금간을 조금 한 올리브유를 바르고 얹어서 오븐에 구워보세요. 따끈따끈한 구운 야채가 마음까지 행복하게 해줍니다. 브로콜리도 맛있고, 앞으로는 아스파라거스도 도전해보려고 합니다.  



고기보다 구운 야채가 더 눈에 들어온다. 육즙까지 배어서 얼마나 맛있을까.


아직도 계속되는 새로운 맛의 탐색기 


사람이 성장한다는 것은 예전에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던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내 그릇의 크기를 넓혀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용납할 수 없던 사람들에 대해서도 관용을 베풀 듯, 이해할 수 없던 일들에 대해서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되듯. 입맛도 마찬가지죠. 예전에는 절대로 먹을 수 없던 것들이었는데, 알고보니 정말 풍성한 맛의 세계가 숨겨져 있어요. 그래서 저는 편식을 심하게 했던 저의 과거에 대해 가끔은 “다행이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기쁨이 평생을 함께 하고 있으니까요. 


아직 미개척의 영역인 생당근과 샐러리. 언젠가는 알게 될 거라고...


최근에도 갑자기 취나물을 먹게 되었습니다. 그저 한 살을 더 먹었기 때문인지 정월보름날 엄마가 해주신 취나물이 갑자기 맛있어졌습니다. 물론 아직도 저는 샐러리를 먹지 못합니다. 생당근도 먹지 않습니다. 카레라이스에 들어간 당근은 어찌어찌 먹지만 결국 접시에 남는 것은 당근 몇알이랍니다. 그렇지만 “난 샐러리와 생당근을 먹지 않아”라고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아직까지 그 맛을 모르지만, 언젠가는 알게 될 거야”라고 이야기하지요. 그러니 샐러리와 생당근를 먹지 못하는 다독지기에게 “정말? 그게 얼마나 맛있는데요? 다독지기 님이 어린 아이예요?”라고 이야기하지 마시고, 샐러리와 생당근의 깊은 맛의 세계를 다정하게 들려주세요. 저도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면서 새로운 맛을 만나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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