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정말 외모가 중요하나요?

2015. 7. 28. 14:00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위 기사는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에서 운영하는 외국인 유학생 그룹 '아우르기'와 다독다독 대학생 기자단이 한국의 문화를 알리고 SNS로 소통하는 방법을 익히기 위해 함께 취재하고 작성한 기사입니다.


언젠가부터 한국에 관한 표현 중 ‘외모지상주의’라는 말이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외모가 개인 간의 우열과 성패를 가름한다고 믿어 외모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죠. 사람의 외모를 아름답게 한다는 ‘미용’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선호해 왔습니다. 예뻐지고 싶은 개인의 욕구는 우리나라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외국인들에 눈에 비친 한국은 유독 특별했나봅니다. 취재아이템 선정을 위해 토론을 진행하는 중 외국인 유학생 친구들이 “한국인들이 외모에 대한 신경을 많이 쓴다.”거나 “한국에서는 외모의 기준이 너무 높은 것 같다”라고 할 정도였죠. 실제 한국의 현실은 어떨까요?


지금의 현실은 과도한 성형문화를 통해 외모지상주의를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심심치 않게 “누가 성형수술을 했더라.”라는 말을 듣곤 합니다. “강남에 가면 여자들이 모두 똑같이 생겼다”라는 말도 사실인 것처럼 사용하기도 하죠. 우리의 의식 속에도 성형은 상당히 가까운 위치에 있습니다. 통계적으로도 2011년 국제미용성형수술협회(ISAPS)의 자료에 의하면 전 세계의 성형수술 횟수는 미국이 1위를 차지했고 브라질, 중국, 일본이 뒤를 이었습니다. 한국은 7위로 나타났습니다. 인구 천 명당 성형수술 횟수에서는 13건을 넘는 것으로 집계되어 인구대비 성형수술 비율 1위를 차지했습니다. 성형수술이 보편화되어 가는 현재 더욱 늘어났을 것입니다. 실제로 한국은 성형수술이 굉장히 빈번한 국가입니다. 


길거리에 즐비한 강남의 성형외과, 출처_아주경제


외모지상주의의 영향

 

조원들과 취재를 위해 이야기를 나눠보니 성형수술은 한국인의 자연스러운 미용문화로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어찌 보면 무분별한 성형수술이 한국에 만연한 외모지상주의를 드러내는 핵심이라 할 수 있겠죠. 이에 따라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에게 성형수술과 한국의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의견을 묻는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다들 영어를 못한다며 엄살을 부리는 탓에 외국인들을 만나기 두려웠는데 다들 충분히 의사소통을 할 수준이어서 큰 문제없이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 실시한 알바몬의 조사에 의하면 남성의 85.4퍼센트, 여성의 92.9퍼센트가 외모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한국인의 외모만족도가 크게 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상당히 높은 수준이죠. 만연한 외모지상주의 풍조가 미의 기준을 높이고 개인의 외모만족도까지 크게 떨어뜨리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취재를 함께 진행한 외국인 친구가 “고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진다.”라고 말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 볼 수 있죠.


성형수술에 대한 한국인과 외국인의 다른 견해는 외모지상주의가 개개인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는지 체감할 수 있습니다. 한국인은 남녀 모두 대체로 성형에 대해서 과하지 않다면 성형을 하는 것은 자유라는 견해를 보였습니다. 성형에 중독이 되거나, 금전적 부담을 떠안으며 무리하게 성형을 하는 극단적 상황이 아니라면 자신의 콤플렉스 개선을 통해 스스로 만족한다면 문제가 될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반면 외국인들의 의견은 달랐습니다. 중국인들은 한국인과 비슷한 응답을 보였으나 동아시아를 제외한 지역의 사람들은 성형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응답을 보였습니다. “성형수술은 치료목적이 아니라면 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당연히 성형할 의향을 묻는 질문의 응답도 유사하게 나왔습니다. 한국여성들은 “기회가 되면 하거나 하고 싶다.”는 의견이 과반 이상이었으나 외국여성들은 “하지 않겠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외모를 중시하는 사회적 의식이 꾸준히 지속되면서 성형수술에 대해 과거 부정적으로만 생각했던 사람들의 인식이 관대해진 것입니다. 관대해진 수준을 넘어 외모 개선의 도구로 가볍게 생각하는 수준입니다. ‘치료 목적’인 외국인들과 달리 한국인들에겐 ‘기회가 된다면’의 가벼운 의미가 되었습니다. 외모를 크게 중시하는 사회에서 이러한 성형에 대한 인식은 더욱더 많은 사람들의 성형을 조장하고 외모지상주의를 심화시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외모지상주의 대체, 왜!

  

한국의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어떨까요? 국적과 성별을 불문하고 “과하다”는 의견이었습니다. 한 외국인 유학생은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의 강박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는 응답을, “과도한 외모지상주의가 또 다른 개인의 열등감을 만들어낸다.”고 응답한 한국인 여성도 있었습니다. 


대다수가 과하다는 의견을 모으는데도 어째서 한국에는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하는 것일까요? 시민들은 ‘경쟁사회 속 취업 등 사회생활에 외모가 미치는 영향’, ‘높은 인기를 얻는 아이돌 스타와 같이 외모를 강조하는 대중문화’, ‘외모지상주의를 조장하는 미디어’, ‘연예인이나 서양인을 동경’, ‘남들에게 보이는 외적가치를 중시하는 전통적인 의식’등을 꼽았습니다. 모두 타당한 이유이며 한국의 외모지상주의는 위와 같은 복합적 이유의 산물입니다.


많은 이유 중 최근에 만연한 외모지상주의 현상의 원인은 과도한 경쟁이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을까요? ‘페이스펙(페이스+스펙)’이라 불릴 만큼 취업에 외모가 중요하다 생각하고 이 때문에 외모를 개선하고자 하는 취업성형 등의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꼭 취업이 아니더라도 ‘좋은 외모를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은 혜택을 받는다.’는 생각은 어느덧 보편적인 인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자신의 외모를 개선하기 위해 투자합니다. 외모 개선의 고통과 노력은 사회적 혜택으로 보상받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으니까요.


외모지상주의를 조장하지 않는 사회적 변화가 있어야

 

외모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분명 개선되어야 합니다. 과도한 미의 경쟁은 사회적 낭비와 분열을 야기합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경쟁은 필연적이지만 생김새가 성공의 척도가 될 수 없습니다. 실제로 많은 기업 인사담당자는 “외모보다 인상을 본다.”라고 합니다. 외모가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며 외모를 개선하기보다 내적인 것을 개발하는 것이 더욱 좋지 않을까요? 


기업들도 이력서에 구직자의 사진을 부착하는 것을 없애는 추세죠. 이처럼 외모지상주의를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사소한 것부터 개선하려는 사회적인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미디어와 대중문화도 외모지상주의를 조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겠습니다. 



취재를 하며 외국인들은 한국인들의 외모나 스타일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다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굳이 외모에 대한 집착을 할 필요가 없다며 말이죠. 그 중 조원들의 마음을 훔친 한 프랑스 남성의 이야기가 자꾸 떠오릅니다. “성형수술을 통해 외모가 변하고 아름다워질 수 있어도 그 사람의 인성은 변함이 없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뼈있는 한마디였습니다. 저도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이미 충분히 아름답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