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착해지고 있을까

2015.08.10 09:00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영화를 보다보면 불과 100년 전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잔인하고 폭력적인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사람을 죽이는 경우는 비일비재했으며, 그 방법도 잔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100년 전에는 인권에 대한 의식이 없어서 그러했을 것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꼭 의식 수준의 차이 때문만은 아닐 수 있습니다.


국가는 왜 생겼을까?


인간 사회에 제한 없는 자유를 비판한 대표적인 철학자는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입니다. 유물론의 창시자인 베이컨의 철학을 계승 발전 시킨 홉스는 인간의 본성은 증오와 파괴의 비이성적인 충동으로 가득차 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 상태에서는 인간 사회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암흑 세상이 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동물 세계와 다름 없이 강자가 약자를 죽이고 가진 것을 빼앗는 세상이 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최초의 민주적 사회계약론자인 그는 자연 상태에서의 삶은 ‘외롭고 불쌍하고 불쾌하고 짐승 같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사회계약에 의해서 우리가 동물과 다른 삶을 살기 위해서는 강력한 국가권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죠. 그는 행복한 인간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국가가 필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


국가를 유지하는 방법은 잔인함 밖에 없었다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의 조상들은 배고픔을 벗어나고, 따뜻한 집에서 추위를 벗어날 수 있고, 질병과 고통이 없기만 하면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나라는 이 기본적인 것조차 제대로 해 줄 수 없었습니다. 대부분 체계성 없이 왕의 즉흥적 명령에 따라 국가가 움직였습니다. 


방법은 2가지뿐이었습니다. 말(word)을 통해 명령을 한 후, 명령을 듣지 않으면 칼(sword)을 통해 처벌하는 방법뿐이었죠. 말과 칼은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하나의 몸통처럼 움직였습니다. 칼 없는 말은 권력을 유지하기 힘들어 무의미했고, 말 없는 칼은 잔인함으로 민중을 봉기하게 하여 위험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과 칼은 하나였습니다. Word로 군림하고 s를 더 한 sword를 통해 word의 권위를 지켰습니다. 과거 국가가 국민에게 해 주는 역할은 자연상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생명과 자산에 대한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권위를 지키기 위한 왕의 Word와 Sword가 자연상태보다 더 위험한 경우도 있어, 왕의 영향력이 행사 될 수 없는 자연 상태인 산으로 도망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국가는 국가를 만들어 준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데 실패했습니다.



기술의 발달은 잔인함을 강화시킬 뿐이었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은 기술을 개발하며 빠르게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기술의 발달로 인간이 행복해지기는커녕 기술로 인해 더 쉽고 효과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방법을 개발 했을 뿐으로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변한 것은 국가가 명령을 한 후 칼이 아닌 더 강력한 무기를 통해 권위를 지킬 수 있게 된 것뿐이었습니다. 국가는 더 잔인해 졌고, 수많은 잔인한 죽음을 동반하는 전쟁만 늘어났습니다.


세계 2차 세계 대전으로만 4,700만명이 죽었습니다. 1940년 스탈린은 카틴 숲에서 폴란드의 장교, 지식인, 예술가, 노동자, 성직자 등 2만 2천명에서 2만 5천여 명을 재판 없이 살해하고 암매장했고, 아돌프 히틀러가 이끈 나치당은 독일 제국과 독일군 점령지 전반에 걸쳐 계획적으로 약 6백만 명의 유태인을 학살했습니다. 캄보디아의 폴포트는 전체 인구 600만 명 중 1/3에 해당하는 200만 명에 가까운 국민들을 학살하기로 했습니다.


세상을 아름답게 하려고 했던 과학자들이 있었다


잔인한 전쟁으로 세상에 혼탁해 있을 때, 전쟁을 없애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야겠다고 비젼을 제시한 사람은 뜻밖에 과학자들이었습니다. 배니바르 부시 (Vannevar Bush)는 MIT 부총장이자 전시과학연구개발국 (Wartime office of Scientific Research and Development)의 총책임자로 과학 기술을 전쟁에 응용하기 위해 핵개발 연구 등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배니바르 부시는 자신의 과학 기술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 현실에 힘들어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그는 IT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고문 중 하나인 ‘As we may think’라는 글을 1945년 ‘애틀랜틱’ (The Atlantic) 매거진에 실었습니다. 그는 이 기고문에서 개인이 인류의 지식을 자유롭게 검색해 사용 할 수 있다면 인류의 지식은 무한정 확장 될 수 있을 것이며 더이상 전쟁 같은 바보 같은 짓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인류가 전쟁을 하는 이유는 정보가 부족해 무지하기 때문이며 정보가 충분할 경우 정치적 갈등, 잘못된 정보, 오해와 미움 등이 사라지기 때문에 전쟁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부쉬가 상상했던 메먹스 (출처_ http://2014.hackinghistory.ca/syllabus/wpid14-wpid-bush-memex-lg1-jpg/)


개인들이 네트워크를 연결해 자유롭게 정보를 검색 할 수 있는 대규모 시스템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메먹스’ (memory extender)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가 말한 ‘메먹스’라는 것이 집에서 하드 디스크를 장착한 작은 컴퓨터를 이용해 마우스와 키보드로 전 세계 정보를 보고 있는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인터넷과 상당 부분 일치 한다는 것입니다. 당시는 세계 최초의 전자 계산기 ‘에니악’을 개발 중에 있지만 아직 세상에 선보이지도 않은 시기였죠. 에니악의 크기는 큰 사무실을 모두 채울 정도로 거대했기에 PC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시대였습니다. 네트워크, 마우스, 키보드, 하드 디스크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시대를 앞선 개념이었기에 ‘메먹스’를 개발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빈트 서프 (Vinton Gray Cerf) 등 과학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어 우리가 사용하는 인터넷을 만드는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다이너마이트 발명자이자 노벨상 설립자인 알프레드 노벨도 마찬가지의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는 "내 다이나마이트가 1,000개의 세계 조약보다 더 큰 평화를 가져 올 것이다" 라고 주장했습니다. 사람들이 차마 무서워 전쟁을 시작하지 못 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발명한 이듬 해인 1904년 미국 언론인 존 워커 (John walker)는 ‘비행기는 평화의 기계로 세상에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지닐 것이다' 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The Bette Angels Our Nature (출처: http://www.amazon.com)


과연, 배니바르 부시, 알프레드 노벨, 존 워커 등이 생각했던 것처럼 우리 세상은 더 평화로워지고 잔인한 살육이 감소하고 있는 것일까요? 2011년 하버드대 진화심리학 교수인 스티븐 핑커 (Steven Pinker)가 저술하여 세계적인 관심을 받은 '우리 본성의 더 나은 천사들: 왜 폭력은 감소 하는가?’ (The Better Angels of Our Nature: Why Violence Has Declined) 라는 책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는 우리는 인류가 출현한 이후로 가장 평화로운 세상을 살고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인류는 수천 년에 걸쳐서 폭력성이 점차 감소하고 우리 세상은 평화로워지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인류는 경제와 통신을 통해 세상을 하나로 묶으며 유기적인 세상을 개발하며 인간이 가지고 있는 폭력성을 발현하기를 구조적으로 어렵게하여 과거처럼 대규모 전쟁 혹은 학살을 벌이기 어려운 세상을 만들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사회 전체의 폭력성도 현저히 감소했습니다. 시대의 폭력성을 측정 할 수 있는 것이 대표적인 방법이 형벌의 수위입니다. 18세기 전만해도 사지를 절단 하는 형벌, 불에 태워 죽이는 화형 같은 끔찍한 처벌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었으나 지금은 사라진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착해졌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우리 사회는 과거보다 더 안전해졌고, 평화로워졌습니다. 우리 본성보다 더 나은 천사는 우리가 만든 기술, 그리고 기술로부터 파생된 제도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