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포트라이트>로 보는 이 시대 언론의 역할

2016. 3. 31. 18:00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박명호, 서강대 언론대학원 미디어 교육 석사, 미디어교육가


#들어가는 말

세상을 바꾼 기자들의 팀플레이 이야기를 담은 영화 <스포트라이트>가 입소문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2016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과 각본상까지 수상하며 박스오피스를 역주행하고 있다. 이 영화는 미국의 3대 일간지 중 하나인 보스턴 글로브 내 탐사보도 전문인 스포트라이트팀이 가톨릭 보스턴 교구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끈질기게 추적해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종교로 가려진 거대한 부조리에 맞서 포기하지 않고 싸우는 기자들의 모습 다룬 이 영화는 조금은 낯선 방식으로 언론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일깨워준다. 깊이 있고 진정성 있는 보도보다는 오락성과 선정성이 난무하는 한국의 저널리즘 문화 속에서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많은 시사점을 준다



#영화의 비주얼스토리텔링 방식

영화의 메시지를 살펴보기에 앞서서 영화의 표현 방식을 먼저 보는 것이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한국의 대중 영화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이 영화는 뭔가 여러 가지 낯선 지점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스포트라이트>30년에 걸쳐 수십명의 아동을 성추행한 지역교구 신부들을 폭로하는 매우 자극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충격적인 소재를 부각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매우 드라이하고, 다큐적인 느낌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영화에는 가장 중요한 사건인 성추행 행위를 재연하는 장면은 생략되어 있다.


일반적인 상업 영화라면 그런 자극적이고 눈뜨고는 못볼 끔찍한 장면을 몇 번이고 반복해 보여주며 주인공과 관객들의 분노를 들끓게 만들기 위해 효과적으로 사용되었을텐데 말이다. 반대로 이 영화는 오직 그 사건의 진실을 집요하고 지긋지긋하게 추적하는 기자들의 모습에 집중한다.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관객 역시도 기자들과 같이 피해자들의 증언과 여러 가지 취재를 통해 얻은 자료를 통해 전해들을 뿐이다. 이런 전개 방식으로 인해 관객은 초반부에 완전히 영화 속에 빨려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취재 과정 속에서 서서히 이야기에 젖어들게 된다.


영화는 굳이 이미지를 예쁘게 찍으려 하지도 않고, 기자들의 모습을 영웅화 시키지도 않으며, 신파적 감동을 강력하게 이끌어내려 하지도 않는다. 이런 지점은 일반적인 영화와는 매우 다른 낯선 지점이다. 하지만 그런 드라이한 영화의 표현 방식이 오히려 공장에서 제조된 듯한 싸구려 감동과 눈물이 아닌, 옥석같이 단단한 감동을 전해준다



▲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영화를 통해 저널리즘의 역할을 돌아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의미는 이 시대 언론의 역할이 무엇인지, 기자의 사명이 무엇인지 되묻는 점에 있다. 사실 한국 영화 속에서도 기자라는 직업은 단골 손님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주로 권력과 손잡은 기회주의자적인 모습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최근 천만 영화로 사랑 받은 <내부자들>만 보아도 그렇다. 그런데 <스포트라이트>는 반대로 자신의 직업적 윤리에 충실한 기자들의 모습을 그린다. 그 모습은 직업의 윤리적 가치가 점점 퇴색되어가는 한국 언론 환경에 깨우침을 준다. 거대한 거짓과 위선의 장벽 속에서 진실을 파헤치는 그들의 집요하고 끈질긴 노력은 언론의 정체성과 소명에 대해 보여주며 큰 감동을 선사한다.


특히 스포트라이트 팀의 취재에 대한 신념은 이 시대 저널리즘의 역할에 대해 많은 성찰을 하게 된다. 기자들이 성급하게 기사를 터트리려 하자, 편집장은 개인의 잘못을 드러내는 것보다 구조적인 문제를 들추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설득하는 장면이 있다. 이는 단순히 특종보도를 통해서 대중의 관심을 받는 것보다도,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고질적인 악습을 제거하는 것에 목표를 두어야한다는 언론 보도의 좋은 태도이다. 이는 지나치게 특종 보도에 목을 메고, 순간적으로 대중의 관심을 받으려고 하는 낚시성 보도가 대세인 한국의 저널리즘 풍토를 반성케한다. 한국의 인터넷 기사를 보면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낚시성 기사가 대부분이고 충분한 근거가 없는 추정만으로 성급히 거짓보도를 하는 일도 얼마나 많은가. 참 부끄러운 일이다. 이는 우리 사회의 많은 언론들이 끈질기게 사회의 부조리를 들추어내야 하는 본래의 역할에서 벗어나, 하나의 엔터테인먼트로 밖에 기능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그런 우리 사회의 언론 풍토에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는 것이다.



#21세기형 종교개혁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는 종교라고 하는 인류의 시작부터 존재한 거대한 체제의 모순을 깨트리려하는 이데올로기적 측면에 있다. 물론 중세 시대만큼 가톨릭이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이 시대에도 신부와 같은 성직자에 대한 신비감과 권위는 존재한다. 영화 속에서도 새로 편집장이 부임하면 관례상 추기경과 면담을 해야할만큼 가톨릭의 영향이 작지는 않다. 그런 상황 속에서 그 거대한 집단이 가지고 있는 모순을 파헤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자신의 지위와 생존에까지 타격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포트라이트 팀은 언론의 기능을 제대로 하기 위한 시대적 사명으로 취재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는 마치 21세기 판 종교 개혁을 보는 듯 하다.


과거에 루터가 50개조 반박문으로 중세 시대의 교리적 모순을 드러내고 종교 개혁을 일으킨 것처럼, 스포트라이트 팀은 기사를 통해 종교가 가진 거짓 위선을 들추어낸다. 거기에는 매우 큰 아이러니를 담고 있다. 사실 사회의 부조리를 향해 종교가 따끔한 메시지를 전달해주어야 하는데, 종교마저도 위선과 부조리로 가득 차 있어서 언론이 진실을 향한 목소리를 드러내고 있다.


▲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나아가며 : 우리 모두 스포트라이트 팀들이 되어

사실 영화는 사회와 매우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어서 어떤 영화가 대중에게 일정한 힘을 갖는 것은 영화가 그 사회의 무의식과 트라우마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종교의 위선, 권력자의 악행 등은 모두 우리 사회와의 트라우마와 맞닿아 있다. 이런 사회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진실을 드러내려는 누군가의 역할은 너무나 중요하다.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되었던 <시그널>이 큰 사랑을 받았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부조리를 바로잡고 진실을 들추어내기 위한 형사들의 끈질김 때문이었다. 현실에서는 정의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보기도 힘들기 때문에 영화를 통해서라도 선이 악을 이기고 정의가 실현되기를 관객들은 간절히 원하는 듯 하다. 어쩌면 그것은 판타지이고, 대리만족만을 주어서 현실을 바꾸는 데에 도움을 주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이기에 정의를 향한 움직임으로 좀 더 강력한 자극을 준다.

 

스포트라이트 팀이 영화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각자의 삶의 영역(정치, 언론, 종교, 교육, 기업, 예술의 영역)에서 모두 스포트라이트 팀들이 되어서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추는 존재가 될 수 있길 꿈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