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 6. 10:30ㆍ포럼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영상 ‘그것이 알고 싶다며’ 제작기
수많은 정보가 쏟아지고 진짜와 허위정보가 뒤섞여 혼란스러운 미디어 환경 속에서
미디어 리터러시는 현대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핵심 역량이다. 미디어교육 사업을
펼치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은 매년 미디어 리터러시를 널리 알리고, 허위정보에 대한
경각심 고취를 위해 교육용 영상을 제작해 오고 있다. 올해 만들어진 제1차 교육 영상
‘미디어 리터러시, 그것이 알고 싶다며’의 제작 뒷이야기를 전한다.
글 김현아 (SBS 모비딕 작가)
미디어 리터러시를 알리기 위한 많은 콘텐츠들이 있었는데
대부분 쉽게 설명하려는 기조였다. 우리는 한 발 더 나아가고자 했다.
미디어 리터러시가 부족하면 어떤 부작용들이 생겨날지 실제 사례를 통해
보는 이들의 머릿속에 각인시키는 효과를 주고 싶었다.
오랜만에 만난 피디, 작가들이 모여 앉은 SBS 모비딕 회의실.
“작가님, ‘미디어 리터러시’라는 말 혹시 들어보셨나요?”
헉! 미디어 리터러시? 물론 들어는 봤다. 뉴스에 나오던 그 낯설고 어색한 단어의 조합. 대략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는 있지만 굳이 깊이 알고자 하지 않았던 용어였다. 예능 피디와 작가들의 회의에서 잘 등장하지 않을 법한 말이지만 나는 오늘부터 그 용어와 친숙해져야 했다. 왜냐? ‘미디어 리터러시’에 대한 교육 영상을 만들자는 담당 피디의 제안을 덥석 받아들였으니까.
아주 쉬워 보이지만 너무 어려운
일단 스마트폰을 들어 단어 검색을 해 봤다. 국어사전에 ‘미디어 리터러시’는 이렇게 서술되어 있다. “정보 기술에 대하여 기본적으로 이해하고 정보 미디어를 구사하며, 정보를 활용하거나 정보를 이용하여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능력.”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이렇게 간단하게 설명되어 있지만 사실 엄청나게 간단하지 않은 용어라는 것이 나열된 단어들의 조합만으로도 팍팍 느껴진다. 이런 내용을 담을 교육 영상을 예능 피디, 작가에게 맡긴다는 것은 재미있게! 쉽게! 볼 수 있는 영상 자료를 만들어 내고자 하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의지가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자, 그렇다면 이걸 어떻게 잘 풀어내야 훌륭한 교육 영상을 만들었다고 동네방네 소문낼 수 있을까?
사실 우리에겐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영상뿐 아니라 ‘뉴스 저작권’ 교육 영상까지 한꺼번에 여러 개의 영상을 제작하기로 한 때문이었다. 회의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쪼개 각각의 이슈들을 최대한 빨리 처리해야 했기에 ‘미디어 리터러시’의 경우 포맷을 정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다. 예능 피디, 작가들이 잘 활용하는 것이 바로 이런 방식인데 어려운 내용들을 대중에게 쉽게 설명하기 위해 예쁜 포장지를 씌우는 것이다.
재단에서 보내준 참고 영상을 보니 작년에 제작했던 ‘세젤퀴(세상에서 젤 맛있는 퀴즈)’의 경우 퀴즈를 풀고 정답자에게 맛있는 음식을 상으로 주는 방식으로 볼거리와 정보를 잘 풀어냈다. 그렇다면 올해에는 어떤 방식으로 예쁜 포장지를 씌워볼까? 예능 코드를 더 첨가해 웃고 즐기다 보니 교육 영상이 끝나 있더라! 하게 만들어 볼까? 아니면 조금 더 진지하게 사회 이슈를 담아내 볼까? 다양한 의견들이 오갔지만 쉽게 결정이 나질 않았다. 우리는 이제 아주 쉬워 보이지만 사실은 절대로 그렇지 못한 숙제를 한 달 안에 해결해야 했다. ‘미디어 리터러시’와 ‘재미’의 황금 조합을 찾는 연금술사가 되어야 한다.
누구를 위한 영상일까?
포맷을 정하기 위해서는 일단 이 영상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전달하기 위해? 사용될 것인지가 중요했다. 그런데 교육용 영상은 학교나 직장에서 주로 사용될 예정이기 때문에 타깃 층이 상당히 넓었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콘텐츠를 만들어야 교육이고 뭐고 되는 건데, 과연 요즘의 시청자들은 어떤 것을 재미있게 생각할까? 수많은 모바일 콘텐츠들을 훑어보며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아이디어 회의를 하는 동안 각자의 생각들을 중구난방 풀어놓았다. 치열한 회의 끝에 하나로 모아진 중지는 미디어 리터러시를 너무 가벼운 시각으로 접근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이미 미디어 리터러시를 알리기 위한 많은 콘텐츠들이 있었는데 대부분 쉽게 쉽게 설명하려는 기조였다. 하지만 용어가 낯설다 뿐이지 미디어 리터러시는 이미 우리 사회 속에서 수많은 이슈들을 낳고 있음을 대중도 인지하고 있었다. 우리의 콘텐츠는 기존 것들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문제의식을 던지는 방향으로 풀어가고자 했다.
미디어 리터러시가 부족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사회에 어떤 부작용들이 생겨날 것인지를 구체적인 실제 사례를 통해 보는 이들의 머릿속에 각인시키는 효과를 주고 싶었다. 그렇게 접근하다보니 갑자기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라는 프로그램이 딱 떠오르며 이걸 패러디 형식으로 풀어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 이제 방향은 정해졌다. 담당 피디는 전화기를 들고 실제 스튜디오 세트에서 촬영을 할 수 있는지부터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역시나 빡빡한 스케줄로 촬영을 하고 있었다. 스튜디오 사용 시간 때문에 세트를 오래 세워둘 수도 없어 우리가 세트를 사용하려면 촬영이 있는 날 순발력 있게 치고 빠지는 식으로 급박하게 촬영을 하지 않는 이상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심지어 우리가 촬영해야 할 시기에 녹화가 취소될 여지도 있다고 했다. 그래도 일단 세트 사용 허가는 받아냈는데 더 큰 문제는 출연자였다.
<그것이 알고 싶다>의 진행자인 김상중 씨가 워낙 독보적인 캐릭터이기 때문에 같은 세트에서 촬영을 하는 이상 그 정도의 카리스마와 대사를 소화해 줄 출연자가 필요했다. 이제까지 김상중 씨의 진행 방식을 패러디했던 수많은 연예인들의 영상을 찾아봤지만 역시나 섭외 리스트 1순위는 개그맨 정성호 씨였다. 그런데 워낙 스케줄이 많고 따로 매니저를 두고 있지 않은 그라 연락 자체가 잘 되지 않았다.
세트를 쓸 수 있는 날은 명확하게 정해져 있었고 섭외는 이런 저런 이유로 쉽게 풀리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면 콘텐츠 제작 마감일을 지킬 수 없을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이 기획을 엎고 다른 콘셉트로 촬영을 해야 한다. 마음이 급했다. 그래서 작가, 피디 가리지 않고 여기 저기 전화를 돌리고 돌리고…, 그렇게 며칠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결국 콘셉트를 바꿔야 할지 결정을 내리기 위해 모인 회의실. 후배 작가가 마지막으로 한 번 전화를 걸어보겠다며 휴대폰을 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정성호 씨와 연락이 닿았다! 하늘을 잔뜩 흐리게 만들던 미세먼지가 소나기 한 방에 모두 날아간 듯한 기분이었다. 촬영 스케줄을 맞추기가 쉽지 않아 여러 번의 협의를 거쳐야 했지만 결국 속 끓이던 섭외가 정리됐다.
그것이 알고 싶다며? 뭘 알려주지?
이제 대본만 잘 뽑아내면 작가는 대부분의 일을 끝내는 셈이다. 우리는 제목을 ‘그것이 알고 싶다며’로 정하고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다 잘 패러디하기 위해 마치 우리가 ‘그알’ 팀인 것처럼 회의를 했다. 그런데 산 넘어 산이라고…, 본격적인 대본 작업을 하려다 보니 주제를 명확하게 드러낼 만한 미디어 리터러시 관련 사례들을 뽑아내기가 수월치 않았다.
영상을 시청하는 사람 입장에서 궁금할 만한 이야기, 즉 임팩트 있는 사건을 조명하고 싶었으나 워낙 민감하고 다양한 관점이 있다 보니 자칫 실제 관련 인물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다. 결국 언론진흥재단에 SOS를 칠 수밖에 없었다. 재단 담당자는 큰 이슈를 끌었던 국내외의 시의성 있는 사례들을 추려 주었고 우리는 그것들을 바탕으로 자료 조사를 시작했다.
물론 내용도 내용이지만 재미 요소 또한 놓쳐서는 안 됐다. 교육용 영상이지만 일단 재미가 없으면 지루할 수 있기 때문에 심각한 내용들 사이에서 잠깐씩 분위기를 환기시킬 만한 코믹 상황과 애드리브 설정을 넣어야 했다. 쉽지 않은 대본 작업 일정이 이어졌다.
재단 담당자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몇 번의 사례 변경과 대사 수정을 통해 대본이 완성됐다. ‘이제 무사히 촬영만 하면 나머지는 담당 피디가 알아서 하겠지’라며 한숨 돌리려는 순간, 또 하나의 난관이 펼쳐졌다. <그것이 알고 싶다>의 스튜디오 세트는 보통 촬영 전날 밤부터 세워지는데 갑작스레 촬영 당일 아침에 세트가 세워지는 것으로 일정이 변경됐다. 그 말인즉, 우리에게 주어진 촬영 시간이 더 짧아질 것이라는 얘기였다. 설명해야 할 내용이 많아 진행자의 대사량이 많았는데 최소한의 촬영 시간 안에 소화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꼭 필요한 내용들을 덜어낼 수는 없었기에 이제 정성호 씨의 연륜을 믿는 수밖에는 없다. 그렇게 촬영 당일이 됐다.
촬영을 준비하며 발생했던 수많은 난관들이 무색하게 녹화 현장은 수월하게 돌아갔다. 특히나 어렵고 심각한 내용의 대본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표현해 낸 진행자 정성호 씨 덕분에 짧은 녹화 시간에도 무사히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역시 연륜 있는 연기자와 오리지널 세트의 힘은 대단했다! 전하고자 했던 대사에 분위기라는 힘이 실리니 보다 더 집중력이 생겼다. 덕분인지 관계자들의 현장 모니터링도 만족스러웠다. 이후 약 3주간의 편집 과정을 거쳐 2019년 9월 24일, ‘그것이 알고 싶다며’가 SBS 모비딕에 온에어 됐다.
‘미디어 리터러시’의 힘!
생각해보면 우리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영상을 만들면서 자료를 찾고 정보를 취합하여 대본을 작성하는 과정에도 미디어 리터러시는 존재했다. 낯설고 어려운 개념이 아니라 미디어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생활 속에 늘 존재하는 것, 그것이 바로 미디어 리터러시였다. 항상 하는 일이었지만 머리에 지식을 담고 몸으로 직접 체험하고 나니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더 잘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탄생한 영상을 통해 미디어 리터러시의 힘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다사다난했던 촬영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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