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선화공주, ‘신고 버튼’이라도 누를 걸

2020. 3. 13. 10:30수업 현장

서동요를 통해본 소문과 윤리적 미디어 이용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향가 서동요와 미디어 리터러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지만 서동요에 대한

국문학적 의의와는 무관하게, 서동요와 관련된 설화를 현대인의 관점으로 살펴보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는 일일 것이다. 중고등 학생들의 날카롭고도 정의로운 평가를 들어보자.

 

박미영(한국NIE협회 대표)

 

 


 

 

수업이 끝난 후 학생들은 내가 루머를 퍼뜨린 장본인(가해자)은 아니라 해도,

‘속보, 화제, 충격’ 등의 어휘로 포장된 연예인 기사를

클릭한 나의 행동이 루머 피해를 확장시킨 방관자의 행동이었음을 깨닫게 됐다며

루머 피해 연예인에게 미안해했습니다.

 

 


 

 

짝사랑에 빠진 한 남자가 마침내 일을 저질렀어. ‘나 저 여자 좋아해라고 속마음을 털어놓기만 하면 좋았을 텐데, 짝사랑에 빠진 남자는 이렇게 말한 거야, ‘저 여자가 서동이랑 잤대라고.”

짝사랑 이야기를 시작하자 호기심으로 반짝이던 학생들의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계속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고등 수업

 

∙재판–서동을 소환하다

 

그 남자 직업이 바로 서동(薯童, 마 캐는 사람)’이었어. 스위스에 양치기 목동이 있듯 서라벌엔 마를 캐는 서동이 있었지. 요즘은 SNS가 정보를 전파하지만 예전엔 노래가 미디어 역할을 했거든. 짝사랑에 빠진 남자는 서라벌 아이들에게 산에서 캐온 마를 한 조각씩 먹이면서 노래를 가르쳤어. SNS에 헛소문을 업로드한 셈이지. 부르기 쉬워야 공유(전파)하기 쉬울 테니, 아마도 짝사랑에 빠진 남자는 아이들이 흥얼거리기 좋도록 라임을 맞춰 리드미컬하게 작사 작곡했을 거야. 이렇게 말야~. ‘선화공주랑~, 서동이랑~ / 같이 잤대요~, 같이 잤대요~ /얼레리꼴레리~, 얼레리꼴레리. ’”

기타 치는 포즈까지 취해가며 꽤나 감미롭게(?) 노래를 불렀으나, 노래가 끝나자 학생들은 강렬하게 반응했습니다.

 

, 빡쳐요!!!”

? 이것은 낭만적인 러브스토리라고 평가받는 한국 최초의 향가인데?^^”

헐랭~ , 죄송해요*^^* 쌤 말고 서동이가 XX이에요!!”

만약 교회오빠(또는 절오빠나 성당오빠)가 너를 짝사랑해서너랑 잤다고 소문내고 다니면그래서 그 소문이 너희 동네에 다 퍼지고너희 부모님이 그 소문을 알게 되면넌 어떻게 될까?”

학생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기막혀했습니다. “죽음이죠.”, “엄마아빠한테 맞아요.”

서동의 노래는 서라벌과 온 신라에 파다하게 퍼졌고, 결국 신라 조정과 왕실은 19금 스캔들에 휘말린 선화공주를 내쫒았지.” 이 같은 설명에 학생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질문했습니다.

서동이 노래를 만들었으니 서동을 잡으면 되잖아요?”

흐음서동은 이름이 아니라 직업이거든. 아마도 신라에 서동(마 캐는 사람)이 많았을 거야. 요즘 택배 배달원이 많은 것처럼?” 학생들은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서동이 백제의 왕으로 등극해서 선화공주는 왕비가 됐다는 설명을 덧붙였으나, 학생들은 해피엔딩이라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였을까요? 결과가 과정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였을까요? 아니면 2019년을 살아가는 여학생의 성인지 감수성이 변해서였을까요?

오늘은 서동요 스토리로 재판을 할 거야라는 말이 끝나자마자 서동이 눈앞에 있다면 한 대씩 때릴 기세였던 여고생들은 대부분 서동만을 소환하기 시작했죠. 얼른 한마디 더 덧붙였습니다. “얘들아 잠깐! 냉정하게 사건을 살펴보자. 소문을 주도한 사람, 소문을 방관한 사람, 소문에 끌려간 사람, 소문을 믿고 행동한 사람 등 관련자들이 많다는 것을 고려하도록!”

 

∙루머 피해자–두 명의 선화공주

 

선우는 서동에게 허위사실 유포죄, 명예훼손죄, 사기죄 등의 죄목으로 곤장형을 선고했습니다.[사진1] 혜신이는 사실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조정대신들에게 선화공주 출궁의 책임을 물었습니다.[사진2] 서동요를 퍼뜨린 아이들에 대해서는 책임론과 동정론이 엇갈렸습니다. 수연이가 맛있는 음식을 거부하기 어려운 나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했지만, 지유는 선화공주의 사회적 평가를 떨어뜨리는 명예훼손죄가 분명하므로 1000일 동안 매일 천자문 1번씩 쓰기벌을 내렸습니다.

두 명의 선화공주가 루머로 인한 피해를 입은 셈입니다. 신라시대의 선화공주와 현대의 선화공주’(SBS 드라마 <서동요>에 선화공주 아역으로 출연했던 연예인이 고 설리입니다).

루머사회의 저자 니콜라스 디폰조는 공식적인 뉴스가 신뢰를 얻지 못한 상황에서는 루머가 가장 강력하다1)고 했죠. 진위가 불확실해도 그 소문에 반복해서 노출되면 진실처럼 여기는 오류적 진실효과2) 때문입니다. 결국 루머의 강력한 타격으로 선화공주 한 명은 왕궁을 떠났고, 또 다른 한 명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진1: 고등학생 활동결과물– 서동 재판에서 서동에게 선고하는 판결문.
사진2: 고등학생 활동결과물– 신라 조정 대신들에게 선화공주 출궁의 책임을 묻는 글.<필자 제공>

 

 

∙활동1. 뉴스 품질 평가

 

뉴스(소문 포함)를 어떻게 읽고 이해해야 할까 고민하며 신라시대 선화공주 가상 뉴스를 작성하고뉴스의 품질을 체크해보았습니다.

 

선화공주 열애설은 분명한 루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궁에서 출궁됐다는 것은 루머가 광범위하게 퍼져 사실로 오인할 만했기 때문이므로

2019년 온라인뉴스에 통용되는 용어를 사용해 신라인들이 착각할 만한 지라시(루머, 가짜 뉴스, 허위정보)를 만들고

그 뉴스를 꼼꼼하게 분석하기로 했습니다.

 

주영이는 선화공주서동 관계, 왕실 공식입장 발표증거 단독 입수제하의 허위정보를 만들어, ‘선화공주와 서동의 관계 때문에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라는 표현은마치 자신의 기사는 추측이 아니라는 듯이 선을 그어 무의식중에 신뢰감을 주도록 의도한 것이며, ‘단독 입수한 선화공주와 서동의 커플 팔찌로 추정되는 사진사진 주인공이 불분명한 사진을 게시해 선화공주와 서동인 양 꾸민 것이라고 날카롭게 지적했습니다[사진3].

 

이현이는 이럴 수가! 선화공주의 아찔한 일탈 알고 보니란 기사제목을 붙인 후, ‘이럴 수가부분은여음구로 사람의 관심을 끌어 조회 수를 늘리기 위한 것’, ‘알고 보니란 표현은말을 끝까지 잇지 않고 사람들의 관심을 유발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기사 하단에 몇 가지 관련 기사를 덧붙였는데 “[경악] 선화공주와 서동이 밤에 먹었다는 그것”, “신라 최고의 미인, 선화공주의 남자”, “아찔한 공주의 사생활, 결국 추방으로 이어지나란 관련 기사들의 제목 역시더 많은 클릭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기사 본문에 진평왕과 마야부인을 언급함으로써 논란을 증폭시켰다는 예리한 평가도 덧붙였습니다.

 

사진3: 고등학생 활동결과물 – 뉴스 품질 평가. <사진 출처: 필자 제공>
사진4: 고등학생 활동결과물 – 신라인이 후손에게 쓴 서찰. <사진 출처: 필자 제공>
사진5: 고등학생 활동결과물 – 신라인이 세운 대책 / 방송심의위원회의 심의 결과. <사진 출처: 필자 제공>

 

∙활동2. 신라에서 온 편지

 

온라인 뉴스에 자극적 표현이 많은 까닭을 고민하며, 신라인의 입장이 되어 2019년 한국에서 살아가는 후손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보았습니다.

 

온라인 뉴스의 자극적 표현에 이끌려 클릭해 본 경험을 말하고

나의 클릭으로 누가 이익을 얻을지 생각해본 후

신라시대 사람들이 하늘나라에서 현대의 뉴스 생태계를 모두 내려다본다고 상상하며, 신라인의 성찰이 담긴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보영이는 우리는 속아 넘어갔소란 제목으로 클릭수와 수익구조를 더 자세히 공부하여 우리와 같은 실수를 하지 말라충격, 아찔, 포착등의 단어가 있어도 믿지 말라고 서찰을 썼습니다.[사진4]

진영이는 신라 궁녀의 편지에서 서동요의 거짓된 내용 때문에 서동과 선화공주가 결혼하여 서동 좋은 일만 시켰다거짓된 소문을 퍼뜨려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려는 사람이 있으니, 거짓 소문으로 누가 이익을 챙길지 생각해보라고 후손들에게 당부했습니다.

 

∙활동3. 신라인의 대책

 

신라인들이 서동요가 헛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가정하며,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해 신라인 입장에서 소문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대책을 세웠습니다.

 

누구나 뉴스(정보/루머)를 생산할 수 있는 현대의 미디어 환경에서

실제 허위정보(루머)로 인한 피해 사례 및 각국의 대책을 알아보고

신라판 소문 피해 대책을 세우기로 했습니다.

 

서진이는 선화공주법을 발의했고, 현서는 화랑의 세속오계에 루머 금물, 팩트체크두 항목을 덧붙여 세속칠계로 변경했습니다. 채윤이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심의 규정을 적용하여 19금 성인가요인 서동요의 송출을 금지시켰습니다. 아예 서라벌에서 어린이들이 서동요 부르는 것을 금하겠다는 것이었죠[사진5]. 학생들은 입시에 루머가 출제되면 신라 유치원~태학까지 루머에 대해 공부할 것이라며 신라의 각종 시험(공무원을 선발하는 6두품 고시, 화랑 입시 등)루머관련 문항을 출제하자고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서현이는 화랑 입시문제의 서술형 답안에서 니콜라스 디폰조의 루머사회를 언급하며 법적인 조치와 개인적인 조치를 병행해야한다고 답한 학생에게 합격 판정을 내렸습니다.[사진6]

수업이 끝난 후 학생들은 루머의 심각성을 깨닫게 됐고 내가 루머를 퍼뜨린 장본인(가해자)은 아니라 해도, ‘속보, 화제, 충격등의 어휘로 포장된 연예인 기사를 클릭한 나의 행동이 루머 피해를 확장시킨 방관자의 행동이었음을 깨닫게 됐다며 루머 피해 연예인에게 미안해했습니다. 학생들은 입을 모아 뉴스 읽는 방법을 꼭 배워야 한다고 진심으로 말했습니다.

 

[표1] ‘서동요’ 활용 미디어 리터러시 수업

사진6: 고등학생 활동결과물 – 신라인이 세운 대책 / 화랑 입시에 루머 관련 문제를 출제함. <사진 출처: 필자 제공>

 

등 수업

 


 

 

중학교 수업에서는 신라인의 댓글을 상상하며, 2019년 현실에서

루머에 반응하는 우리의 댓글이 얼마나 충동적, 감정적, 전투적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학생들은 루머에 댓글을 쓰는 활동을 통해, 어쩌면 최근 SNS에 올라

왔던 연예인의 열애설 역시 루머일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가져보았습니다.

 

 


∙신라인의 SNS 댓글 & 뒷담화

 

중학교 수업에서는 신라인의 댓글을 상상하며, 2019년 현실에서 루머에 반응하는 우리의 댓글이 얼마나 충동적, 감정적, 전투적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최근 내가 보거나 쓴 댓글을 발표하고

신라 SNS 열애설 뉴스에 댓글을 쓰며 신라 청소년의 반응을 추측하고

청소년보다 한 템포 늦게 열애설을 접했을 신라 성인층의 반응(뒷담화)도 추측해보았습니다.

 

하빈이는 신튜브에 올라온 선화공주 열애설에 저 오늘부터 선화공주 탈덕함이라는 댓글을 달며 신라 청소년에 빙의해서 선화공주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냈습니다.[사진7] 윤정이는 꼭 이쁜 사람들이 사고를 친다왕실의 망신, 신라의 망신, 박혁거세의 망신이라고 백성들의 뒷담화 내용을 실감나게 기록했습니다.[사진8]

학생들은 루머에 댓글 쓰는 활동을 통해, 어쩌면 최근 SNS에 올라왔던 연예인의 열애설 역시 루머일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가져보았습니다.

 

사진7: 중학생 활동결과물 – 신라 청소년이 SNS에 단 댓글. <사진 출처: 필자 제공>   
사진8: 중학생 활동결과물 – 신라 백성들이 공주 열애설을 접하고 보인 반응(뒷담화). <사진 출처: 필자 제공>

 

∙후회합니다

 

서동요라는 헛소문에 현혹되어 선화공주를 잃게 된 신라인은 무엇을 가장 후회했을까요?

 

열애설로 누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는지 토의하고(: 선화공주는 출궁 / 진평왕과 마야부인은 딸을 잃음 등)

그 열애설이 가짜임을 알게 된 신라인의 후회를 글로 표현한 후

2019년 현재, 루머에 대응했던 나의 행동을 살펴봤습니다.

 

학생들은 막내 딸 선화공주를 믿지 않았던 진평왕에게 서운함을 느꼈나봅니다. ‘딸을 믿어줄 걸.’, ‘애꿎은 딸만 쫓아냈어ㅠㅠ’, ‘내가 미쳤지, 왜 내 딸을 믿지 않았을까.’ 이렇게 진평왕 입장이 되어 소회를 작성한 학생들이 가장 많았거든요. 물론 노래 부른 어린이 입장에서 내가 부른 노래 때문에 나라가 이렇게 될 줄 몰랐다는 후회, 백성 입장에서 호기심에 선화공주를 의심한 것을 후회하기도 했죠. 요즘은 걸 크러시가 대세여서인지 여학생 지연이는 주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그냥 해결되기만을 바란 것, 서동이랑 결혼까지 한 것을 후회한다며 선화공주의 입장을 기록했습니다.[사진9]

 

또한 루머로 피해 입은 연예인 사건에 대한 나의 행동을 돌이켜봤습니다. 학생들은 연예인에게 악플이 쏟아질 때 아무 것도 안하고 그냥 기사에만 관심을 두었던 것을 후회하더군요. 혜율이는 다시 돌이킬 수 있다면 신고 버튼이라도 누르겠다.’는 진심어린 다짐도 했습니다.

 

사진9: 중학생 활동결과물 – 신라인의 후회 & 현대인의 후회. <사진 출처: 필자 제공>

벌칙송을 불러라

 

마지막으로 루머 피해를 막기 위한 방안을 생각해봤습니다. 중학생들은 헛소문을 퍼뜨린 신라 어린이들에겐 이런 벌칙을 내리더군요. 헛소문의 발단이 서동요라는 노래(미디어)였던 만큼 다시 노래(미디어)를 활용해 진실을 전파하라는 벌칙! 학생들은 무엇이 잘못된 행동인지, 진실은 무엇인지 가사에 담아 벌칙송(song)을 만들었습니다.[사진10] 물론 선화공주 스토리에서 잘못된 행동을 구분해내기 위해 친구들과 열띤 토의과정을 거쳤죠.

 

2020년 대입 논술에 소문(루머)’이 출제돼서가 아니라, 루머에 대응하는 올바른 자세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루머를 공부했습니다. 이 수업을 통해 루머를 생산하지 않는 합법적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 루머를 소비하거나 방관하지 않는 윤리적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이 아주 조금이라도 향상되어 디지털 시민성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며 수업보고 끝!!

사진10: 중학생 활동결과물 – 노래 부른 어린이에게 내린 벌칙송. <사진 출처: 필자 제공>

 


1) 박미영(2018). 《실버세대를 위한 미디어 리터러시 실천 매뉴얼》. 한국언론진흥재단. p31.

 

2) 위의 책, p30.

 

3) 시가 등에서 본가사의 앞, 뒤, 가운데에 위치하여 의미의 표현보다는 감흥과 율조에 영향을 미치는 구절(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4) 2019년 11월 7일 매일경제 종합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