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와 학교 밖 미디어교육 함께 해야 효과적

2020. 4. 22. 09:41해외 미디어 교육

[미디어교육 석학 인터뷰] 
줄리안 세프톤-그린 호주 디킨대 교수 

 

세프톤-그린 교수는 성인에게 아무런 교육을 하지 않으면서 투표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성인에게도 반드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디지털 미디어교육 분야의 저명한 학자인 줄리안
세프톤
-그린(Julian Sefton-Green) 호주
디킨대
(Deakin University) 교수가 지난 11월 말
한국을 방문했다
. 한국언론진흥재단을 포함해
7개 기관이 공동 주최한 ‘2019 미디어·정보
리터러시 국제 콘퍼런스
의 기조 강연자로 참석한
세프톤
-그린 교수는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개인의 기능과 윤리적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되며
, 더 깊이 있는 사회적 이해를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특히 미디어 이용 현황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이해를 강조하는 공적 담론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 콘퍼런스가 끝난 뒤
세프톤
-그린 교수를 따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 정현선 (경인교대 국어교육과 교수)
정리 최원석 (핀란드 라플란드대 미디어교육
석사 과정
, YTN 기자)

 

 


 

 

한국에서 열린 미디어·정보 리터러시(이하 MIL) 콘퍼런스 참석 소감이 궁금하다.

 

대단한 경험이었다. 우선 아카펠라 그룹과 어린이 합창단이 와서 놀랐다. 이런 자리에 아이들을 부르기가 쉬운 일은 아니지 않나? (웃음) 공개적이고 진지했던 행사 분위기와 상당한 규모, 그리고 많은 취재진의 활동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한국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대중에게 미디어 리터러시에 관한 인식을 만들어가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정부 부처(교육부·문화체육관광부·방송통신위 원회)7개 기관이 시민 사회와 함께 하는 모습도 볼 좋은 기회다.

 

일상생활 속 미디어교육 중요

 

MIL 콘퍼런스 기조 강연을 통해 학교 교육과정 안에서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며, 이와 더불어 일상적인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배경과 계기는 무엇인가?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를 교육과 관련지어 볼 때, 우리가 학교에서 국어나 문학을 가르치는 이유가 과연 무엇일지를 먼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언어를 배우는 일은 삶의 어떤 순간에서든 유용할 뿐만 아니라, 시민으로서 힘과 권리를 얻을 수 있게 한다. 또 사람들은 언어를 통해 세상을 해석하고 친구와 소통할 수 있다. 이를 참고로 하여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과제와 정의를 살펴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미디어 이용이 어떻게 시민의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또 자신이 속한 사회를 어떻게 이해하도록 만드는지에 관심이 많다. 일상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미디어 및 디지털 기술의 이용과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나는 기조 강연을 통해 일상적인 미디어 이용에서는 좀처럼 일어나기 어려운 중요한 깨달음이 무엇일지에 대해 사람들이 생각하도록 만들고 싶었다.

 

또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이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디지털 환경에서 데이터화 기반의 복잡한 감시(surveillance) 과정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호작용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일상생활에서 학생들이 이런 문제를 명확히 인식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미디어 과목을 만들어 이런 내용을 제대로 가르치고, 다양한 과목에서 미디어교육을 실행함으로써, 디지털 리터러시에 대해 공식적으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지식은 학생들이 더 나은 시민이 되도록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이번 방문 중) 주말에 광화문과 종로에 나가보니, 집회에 겨우 세 사람이 참석했는데도 바로 유튜브에 생중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미디어가 사회의 광범위한 문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증거다. 이런 측면에서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해 질문할 필요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공 차원의 미디어교육 전략과 단체 활동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미디어교육 과정(커리큘럼)이 효과를 가지려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첫째, 무엇보다 먼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혹은 미디어교육의 위상을 학교 교육과정 안에 전략적으로 명시할 필요가 있다. 학교 교육으로 이루어지는 미디어교육이 장점도 있고 한계도 있지만, 학교 교육과정에 미디어교육을 포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학생들이 학교 교육을 통해 일정한 시간을 들여 미디어 리터러시를 배울 수 있도록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교원 양성 및 연수의 명료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

둘째, 미디어교육은 또한 모든 교과목에 필요한 내용이다. 교사라면 누구나 미디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야 하고, 또 지식을 가르칠 때 활용하는 미디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또 필요하다면 미디어 전략을 활용해 학생들에게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 미디어교육을 독립적인 과목으로 만드는 것도 필요하고, 이와 동시에 모든 교과의 교육과정에 포함하는 것도 필요하다.

셋째, 조금 더 일반적이고 일상적인 대중 미디어교육(general, everyday, popular education)도 고민해야 한다. 개인적으론 미디어교육이 그저 형식적인 과목으로 취급되지 않길 바란다. 성교육이나 인간관계 교육의 예를 들어 보면, 사람들은 텔레비전 드라마나 화를 보면서 다른 사람과 관계 맺는 방법을 배운다. 이렇게 일상적인 문화 참여를 통해 사회적 가치나 행동 방식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으로 뉴스 미디어는 어떻게 뉴스가 조작되고 통제되는지를 성찰하는 코너를 반드시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미디어교육은 단지 학교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라 일상적인 공공 교육 형태로도 이뤄져야 한다.

 


 

 

미디어교육은 또한 모든 교과목에 필요한 
내용이다. 교사라면 누구나 미디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야 한다. 앞서 
말했듯 미디어교육을 독립적인 과목으로 
만드는 것도, 이와 동시에 모든 교과의 
교육과정에 포함하는 것도 필요하다. 

 

 




자녀의 미디어 이용 시간에 너무 예민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캐나다 미디어스마트(MediaSmarts)가 제시한 ‘디지털 리터러시’ 핵심 개념과 같은 내용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학교 교육 시스템은 교육 자료를 만드는 속도가 느리고 교육과정을 개발하는데도 더디기 때문에, 어떤 특정 시점에 핵심 내용을 정의한다 해도 그것을 시행할 때는 이미 상황이 바뀌는 문제가 생긴다. 다른 분야의 지식과 달리 미디어 교육은 다음에 일어날 일, 예를 들면 선거라든지 아이들의 AR 게임 문화 등도 반영해야 한다.

이럴 때 해결책 가운데 하나는 유네스코의 MIL 프레임워크나 캐나다 미디어스마트의 접근법을 활용하는 것이다. ‘수용자(audience)’, ‘기관 (institution)’, ‘텍스트(text)’ 등과 같이 미디어의 사회적 실천을 분석할 때 활용 할 수 있는 핵심 개념은 그래서 중요하다. 한편 시민의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 수준이 높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교사들이 교육과정 개발과 평가에 참여할 수 있을 만큼 높은 자율적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수준 높은 전문성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학교가 시민을 길러내고 젊은 세대가 각자 삶을 주도할 수 있도록 도우려 한다면 미디어 리터러시는 학교 교육의 한가운데, 학교 교육과정의 핵심 내용으로 포함되어야 한다.

MIL 콘퍼런스 기조강연자인 줄리안 세프톤-그린 교수(가운데)를 정현선 경인교대 교수(오른쪽)가 인터뷰하는 동안 최원석 기자(왼쪽)가 내용을 정리하고 있다.

 

많은 교사와 학부모는 학생과 자녀가 예민하고 합리적으로 미디어를 이용하도록 지도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우선 나는 부모들이 아이들의 미디어 이용에 지나치게 민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미디어 또한 다른 사회 요소의 일부로 볼 필요가 있다. 미디어 이용 시간 자체에만 집중해 스마트폰을 1시간 썼는지, 1시간 20분 썼는지를 따지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중요한 질문은 학생들이 미디어 사용을 통해 어떻게 성장하고 의미 있는 행동을 할 수 있는가이다.

학부모가 미디어 이용에 대해 자녀와 대화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문제에 도움 되는 프로그램도 필요하고, 공개적으로 부모들의 고민을 공유하는 모임도 필요할 것이다. 다만 “1시간 넘게 스마트폰을 쓰는 것은 안 돼!”라는 식의 대화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호주에서는 2020년부터 7년간 디지털 어린이 중점연구소(Centre of Excellence for the Digital Child)’1)를 설립해 장기 추적연구를 시작한다. 이 연구에서는 아이들이 어떻게 디지털로 연결된 환경에서 건강하게 성장하고 배우고 있는지,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를 살펴볼 계획이다. 이 연구에는 한국의 경인교대를 포함해 미국, 영, 캐나다 등 전 세계 여러 나라의 대학, 연구소, 석학들이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부모들에게 보다 근거 있는 조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성인 대상 평생교육(life-long learning) 차원에서 미디어교육은 어때야 하는가?

 

학교에서 지금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건, 앞으로도 계속해서 미디어는 바뀌고 디지털 자체도 변화하고 사회도 빠르게 바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성인에게 더 이상 공식적인 의무교육을 강제하지 않는다. 모순적인 것은 아이들에겐 미디어 리터러시를 가르치면서도 투표권을 주지 않고, 어른에겐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으면서 투표권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내가 목격했던 서울 종로에서 겨우 세 사람이 참가한 집회를 유튜브에 생중계한 그 영상은 성인 유권자에게 노출될 것이다. 많은 이들은 미디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아무런 공식 교육을 받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앞서 말했던 것처럼 대중적이고 공식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유권자를 대상으로 미디어 리터러시를 교육할 방법도 찾아야 한다. 유권자가 경험하는 미디어의 품질과 작동 원리에 관한 공적 논의라든가, 이것이 어떻게 시민 역량에 영향을 주는지에 관심 갖는 국가는 사실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이는 아주 중요한 과제이다.


미디어교육 담당자 권한 확대 필요

 

호주 ATOM을 모델로 삼아, 한국 교사들이 전국미디어리터러시교사협회(KATOM)를 창립했다. 더 많은 교사가 미디어 리터러시에 관심 갖도록 하려면?

 

한국의 입시제도 속에서는 몹시 어려운 일일 것이다. 과거 영국이나 현재 호주에서처럼 국가 교육과정에 미디어과목을 넣고, 고부담 시험(high-stakes assessment: 고위험, 고부담 평가. 합격 여부가 응시자에게 매우 중대한 결과가 되는 시험)2)을 치르게 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대학 내 저널리즘,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같은 전공도 학교 교육과정과 더 긴밀히 연결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학생들이 저널리즘 관련 학과에 들어갈 때 치러야 하는 시험이 생긴다면, 교사도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 시간을 더 투자하게 될 것이다. 호주의 경우 오랜 미디어교육 전통이 있고, 대학 차원에도 건강한 저널리즘 및 커뮤니케이션 전공이 존재한다. 교원 양성 대학에서도 미디어 교사를 위한 연수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 어떤 조언을 해 줄 수 있나?

 

2018년과 2019년 한국을 방문했는데, 가장 인상적인 곳 가운데 하나가 지역 마다 존재하는 미디어센터. 어린 학생들에게 이 정도의 미디어 경험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공간을 다른 국가에서는 본 적이 없다.

이러한 미디어센터들은 미디어 이해에 대한 전문성을 높일 수 있는 자원이면서, 학생들이 수준 높은 경험을 할 수 있게 도울 수 있는 환경이라고 본다. 교사들도 이런 장소에 가서 정보와 지식이 어떻게 미디어를 통해 매개되는지를 배워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비판적인 미디어 리터러시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킬 수 있는 아주 좋은 협력 사례가 될 것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나 시청자미디어재단 같은 기관은 학교 밖에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이러한 기관의 구성원이 좀 더 장기적인 안목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해야 한다. 성과 평가도 5년마다 하는 식으로 좀 더 장기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다른 기관들이 모여 각자 하는 일을 공유하는 자리도 필요하다. 이런 방법으로 각자의 미디어 리터러시 실천 방법을 개발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 미디어 리터러시와 민주주의는 떨어질 수 없다. 디지털 미디어는 단지 흥미로운 현상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완전히 바꾸고 있는 환경 그 자체이다. 정부는 미디어교육 담당자가 권한과 책임을 갖도록 하고, 미래 사회에 주목하며 시민들의 미디어 리터러시를 증진시킬 수 있는 계획과 장기적인 평가 전략을 세워야 한다.


인터뷰를 마치며 


줄리안 세프톤
-그린 교수는 호주뿐 아니라, 영, 미국, 노르웨이, 핀란드 주요 대학 석학들과 함께 진행해온 디지털 미디어교육 및 연구의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의미 있는 조언을 건넸다. 교육과정 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과 일상적 실천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한편으로는 한국 정부 부처에 비판적인 시각을 제시하면서도 장기적인 역할과 대응 방안도 제시했다. 본문에선 생략했 으나, 1986년 영국에서 미디어 교사로 활동할 당시 정치적 이유로 미디어교육이 사회적 논의에서 밀려났던 사건을 말해주기도 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미디어 교육을 실천하는 교사 및 각 지역 활동가를 응원하는 마음을 인터뷰 내내 느낄 수 있었다.

 

*이 인터뷰는 지난 123일 정현선 경인교대 국어교육과 교수와 세프톤-그린 교수가 한 시간가량 나눈 문답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교육팀 오수정 팀장, 정현정, 황서현 사원이 함께했다

 

 


 

1) 프로젝트 관련 퀸즈랜드주립공과대(Queensland University of Technology, QUT) 보도자료:
Australian Research Council(ARC) Centre of Excellence for the Digital Child
https://www.qut.edu.au/research/article?id=151648

 

2) 고위험, 고부담 평가: 합격 여부가 응시자에게 매우 중대한 결과가 되는 시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