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에 스스로를 내던지는 종군기자, 그들의 삶

2011. 11. 9. 13:19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전쟁 보도론-오인문의 <노기자의 죽음>

“2차 대전 때는 정부와 군 당국의 검열과 통제가 절대적이었습니다. 기자도 군복을 입어야 했고 연합군에 유리한 전황만 보도할 수 있었지요. 베트남전 때도 정부는 마찬가지 통제를 시도했지만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시민운동과 인종갈등, 쿠바위기 등을 겪은 젊은 기자들이 투입되면서 베트남전의 책임을 묻고 세금이 제대로 쓰이는 지를 따지기 시작했지요. 90년대까지 미 정부는 ‘언론이 정부에 도전한다’고 못마땅해 했고, 언론은 ‘진실을 말할 의무가 있으며 잘못된 정책은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 불편한 관계가 계속됐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는 이전으로 돌아간 느낌이었습니다. 언론이 표현의 자유보다 국가 안보를 더 중요시하게 된 거지요.”(이희용, 2003.9.16)



1991년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걸프전 발발 사실을 생방송으로 처음 전한 전설적인 종군기자 피터 아넷이 2003년 한국을 찾아 기자간담회에서 미국 언론과 기자들의 전쟁 보도 흐름에 대해 설명한 대목입니다. 즉 전쟁을 둘러싼 진실과 국익을 놓고 정부와 언론, 저널리스트 간에는 일정한 관계가 존재하며, 시대와 상황에 따라 통제와 갈등의 관계로 변화해오고 있다고 전한 것입니다. 피터 아넷의 지적처럼 전쟁 보도를 둘러싸고 가장 첨예한, 근본적인 고민은 바로 국익을 우선한 보도를 할 것인가 아니면 진실을 우선한 보도를 할 것인가일 것입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단순화해 말한다면 국익(애국주의)을 우선한 보도와 진실을 우선한 보도 사이의 긴장 정도로 할 수 있겠죠.


<사진1> 1976년 흥문각에서 하드커버로 나온 초판. 


이 같은 내용과 딱 맞아떨어진 것은 아니지만, 기자 출신 소설가 오인문씨의 1987년 연작 소설집 『노기자의 죽음』의 첫 번째 소설인 <노기자의 죽음>은 전쟁 보도, 기자의 존재 의미 등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작품입니다. 1966년 『문학』지에 <노기자의 장송>으로 발표됐던 <노기자의 죽음>은 신문 기자가 주인공으로 나와 현대인, 특히 기자들이 처한 고뇌와 삶의 갈등을 폭넓은 시각으로 보여줍니다. 기자들에게 기자 정신을, 시민들에게는 인간성 회복이라는 주제 의식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는 작품으로 평가됩니다. 


<사진2> 1987년 고려원판.


소설은 1960년 4·19혁명과 베트남 전쟁 시기 M일보 민완기자 박수득의 죽음을 배경으로 펼쳐집니다. 주요 인물은 10여 년을 취재 일선에서 뛴 뒤 월남전 종군기자로 활동하다 숨진 M일보 기자 박수득과 4·19 당시 경무대에서 숨진 친구 김현구, 원래 알피니스트였다가 M일보에 입사한 이 기자, 박 기자와 베트남 전장에서 취재한 K일보 송 특파원, 박 기자의 기사를 보조한 장 기자 등입니다.10여 년을 취재 일선에서 뛰었던 노기자(老記者) 박수득은 월남 전쟁에 종군 기자로 전선에 나갔다가 죽어 돌아오지만, 그의 죽음은 한국 미국 베트콩 중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총탄에 맞은 허무한 죽음이었습니다. 베트남으로 떠나기 전 ‘그 놈’이라는 얘기를 듣고 박 기자에게서 거액이 든 통장을 받은 이 기자는 박 기자의 유품, 송 특파원, 주변 인물과 당시 정황 등을 토대로 박 기자의 사망 이유를 찾아가다가 ‘그 놈’의 진실을 알아가기 시작합니다. 어렵게 입수한 박수득의 취재수첩 뒷장의 메모에는 박수득이 베트남으로 가게 된 이유가 적혀 있습니다. 

‘나는 드디어 베트남으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김현구 사건이 일어난 뒤에 나는 피를 쏟으면서 온 몸뚱이로 부딪쳐 보았지만, 안일한 행복에의 유혹은 끊어지지 않고, 그와 함께 파도쳐 오는 ‘하얀 손바닥’들의 데모를…. 아, 나는 기어이 베트남으로 떠나야 되겠다. 그 곳엔 피가 튀어나는 긴장과 고통이 있고 20세기의 지성과 무력과 비둘기의 눈짓으로도 해결되지 않은, 원시의 몸부림이 있고…. 나는 그 속에 파고들어 찾아보리라. 그리고 이겨 내고야 말리라. 몽블랑을, 에베레스트를….’(오인문, 1987, 43쪽) 

즉 박수득은 베트남 전장이야말로 지성과 관념을 넘어선 원시의 생명적 몸부림이 있고 그 속에서야말로 진리가 있다고 믿습니다. 박수득의 생각을 오늘의 언론과 저널리즘 상황으로 대입시켜 보면 아마 전쟁의 현장에서야말로 모든 관념과 거짓과 허위를 넘어서는 진실이 있다고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즉 이것은 국익 우선 보도와 진실 우선 보도의 긴장 이전에 전쟁의 현장, 전장 속 군인과 민간인들의 시선, 거리와 전장의 실제에 천착하고자 하는 정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물론 이것은 국익 우선의 보도냐, 진실 우선의 보도냐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제시한 것은 아닙니다). 

박수득은 그래서 ‘피가 튀어나는 긴장과 고통’ 또는 ‘원시의 몸부림’ 같은 전쟁 현장에서 생생한 전장의 모습을 전달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즉 ‘피와 화약 냄새와 아우성 소리가 뒤범범이 된 전쟁의 이미지’를 생생하게 전달했다는 것입니다. 소설은 다음과 같이 그리고 있습니다. 

이런 논란 속에서 박 기자의 미망인은 평소 고인의 소원대로 몽블랑이 보이는 곳에 유해를 모시도록 해달라고 간청을 했고, 그 주선은 신문사가 나서서 해주었다. 그러니까 간첩이 아닐까 하는 의혹이 완전히 가셔진 건 아니지만 순직한 것으로 의견의 일치를 본 셈이다. 그렇게 된 저변에는 박 기자가 피와 화약 냄새와 아우성소리가 뒤범범이 된 전쟁의 이미지를 생생하게 살려 주었고, 그것은 또 딴 신문사에서 감히 따라오지 못할 위험한 경지를 잘 발굴한 것이었기 때문에 ‘가장 읽을 거리가 있는 베트남 소식통’으로 우리 신문의 지가를 높여  준 공로였는지 모르지만.(오인문, 1987,20쪽)

여기에서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리얼함, 생생함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이 없이 전쟁보도에서 리얼함, 생생함만을 무조건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자칫 진실과 국익 간의 긴장이라는 근원적인 문제와 함께 또 다른 문제를 배태할 수도 있어 보입니다. 즉 전쟁 보도의 선정성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1991년 걸프전 당시 CNN 등 미국의 주류 방송에서 전쟁장면이 리얼하게 보도됐지만 마치 게임처럼 보도됨으로써 전장에서 겪는 끔찍한 참사나 잔인한 폭력은 아득한 타인의 고통이 돼버렸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습니다. 국내에서도 2010년 11월 발생한 연평도 포격 보도 등에서 사실성의 훼손과 과장보도, 흥미위주 보도, 과도한 무기관련 보도 등의 문제점이 지적되기도 했습니다(김정필, 2010.12.1).


<사진> 2010년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을 다룬 [세계일보] 2010년 11월24일자 1면.


또 철저한 준비 없는 전쟁 보도는 저널리스트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습니다. 기자들이 전장의 실제와 전장 속 군인들과 민간인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기 위해서는 전장 속으로 들어가야 하고 이럴 경우 죽음 등 온갖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노기자의 죽음>에서도 박수득은 전장을 파고들기 위해 ‘브리핑 기자’, ‘안방 기자’를 거부하고 ‘전투 기자’가 됩니다. ‘무덤 속에 한발을 들여놓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의 위험에 스스로를 던지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베트남에서 박 기자와 같은 방안에 있었다는 K일보의 송 특파원은 그들의 이 시끄러운 뒷공론을 듣다못해 한마디 쏟아붙였다고 했다. 
“그는 너무나 스쿠프광이었어. 결국 그는 신문 때문에 죽은 거야.”
베트남의 USIS 빌딩에 모이는 각국 기자들 가운데는 당국의 ‘브리핑’만으로 기사를 쓰는 ‘브리핑 기자’나 ‘안방 기자’들도 꽤 많았는데, 박 기자만이 유독 ‘전투 기자’로 소문이 나있었다는 것이다. 전투만 있으면 기를 쓰고 비행기에 편승해서 전투장까지 가서는, EAGLE FLIGHT전으로 초토화된 땅 위에 남아 있었던 것은 무엇이며, 포탄을 맞은 베트공이 죽어가는 순간 움켜지고 있었던 것은 무엇인가 등등 낱낱이 기록해 왔다고――그 때마다 그의 생명은 이미 무덤 속에 한 발을 들여놓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여서, 딴 기자들은 그와 함께 취재 나가는 것을 제일 두려워했다고 한다.
“이번에도 자넨 구사 일생으로 살아난 거야. 다시는 그런 위험한 짓 하지 말게.”
송 특파원이 그런 충고를 하면, 
“글쎄, 나도 한번 죽어 봤음 좋겠는데 죽음은 내 눈앞까지 와서, 눈까풀만 스치고 지나가 버린단 말야. 너무 많이 죽음을 보았기 때문에 염라대왕하고도 친해진 모양이지? 허허허.”
박 기자는 되레 전투가 없는 날이면 좀이 쑤셔서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했다는 것이다.(오인문, 1987, 17~18쪽)


많은 전문가들이 언론과 저널리스트들은 전쟁 등 위험 상황에 철저히 대비하되, 진실를 향한 열정과 가이드라인의 적절한 조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국제기자연맹 (IFJ, International Federation of Journalists)도 위험상황을 유형별로 정리해 그에 따른 대응방안을 제시하기도 했죠. 전쟁 및 위험 보도에 대한 체계적인 준비와 교육이 미흡한 국내 언론 상황에서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한 사안일 수 있습니다. 즉 전쟁취재를 위한 체계적 준비과정 없이 젊은 기자들을 중심으로 관습적으로 파견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적지 않습니다(이창호 이영미 정종석 김용길, 2007).

전쟁 보도를 놓고 전장주의, 보도의 선정성, 기자의 위험성 등의 여러 논의에도 국익 우선의 보도를 할 것인가 아니면 진실 우선의 보도를 할 것이냐의 근본적인 긴장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물론 세계 곳곳에서 국가와 미디어, 기자들 간에 긴장이 형성돼 왔으며 앞으로도 여전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소설에서 박수득은 과연 국익과 진실 가운데 어느 편을 선택한 것일까요?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님은 과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무튼 전설적인 종군기자 피터 아넷이 2003년 방한 당시 남긴 다음의 말이 자꾸 공명합니다(김이경, 2003.9.17).

“언론의 가장 큰 무기는 사실이며 의견보다는 사실에 근거해 비판해야 합니다.”


<참고문헌>
김이경(2003.9.17). 종군기자 대명사 피터 아넷 기자 간담회 “9·11후 색안경 쓴 언론… 美정책 두둔만”. 『한국일보』, 2003년 9월17일, 27면.
김정필(2010.12.1). 조작·반쪽보도로 얼룩진 연평도 속보경쟁. 『한겨레』, 2010년 12월1일자, 28면. 
오인문(1987). 노기자의 죽음. 『노기자의 죽음』. 서울: 고려원.
이창호 이영미 정종석 김용길(2007). 한국 언론의 전쟁취재 여건과 문제점 및 개선방안 연구.『한국언론정보학보』, 40호, 80~113. 
이희용(2003.9.16). 종군기자 피터 아넷 기자간담회. 『연합뉴스』, 입력 2003년 9월16일, 11시56분. Online, <availible>:
http://media.daum.net/foreign/others/view.html?cateid=1046&newsid=20030916115657664&p=yonh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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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이지2011.11.09 15:12

    종군기자들은 정말 영화에 나오는 나와는 너무 먼 곳의 대단한 인물들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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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웬만한 사명감이 없다면 아무나 할 수 없겠죠?
      전쟁의 아픔과 슬픔을 알리는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이들이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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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872011.11.11 17:04

    노기자의 죽음 한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네요. 뭔가 살아있는 감동이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