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이 사라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2011. 11. 24. 09:38ㆍ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LA인근 소도시 벨을 발칵 뒤집은 소동
지난해 7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남동쪽에 있는 소도시 벨(Bell)에서 난리가 났다. 히스패닉계의 노동자들이 많이 사는 인구 3만 5000명 정도의 가난한 그 도시 책임자인 행정관 로버트 리조(Robert Rizzo)가 78만7637달러나 되는 엄청난 연봉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는 버락 오바마 연방 대통령 연봉의 두 배나 된다. 리조의 연간 수입총액은 150만 달러에 달했다. 그를 돕는 한 측근 관료의 연봉도 37만6000여 달러나 됐다. 로스앤젤레스 시 행정관관리장의 연봉이 25만 달러 정도인데 비하면 터무니없는 액수다. 경찰서장 봉급도 1만3000명의 수하를 거느린 로스앤젤레스 서장이 30만7000 달러인데 비해 고작 46명의 부하를 둔 벨 서장 연봉은 45만 7000달러였다.
평균소득 수준이 캘리포니아주 전체 평균에 한참 못 미치는 가난한 소도시 벨의 행정관리들이 주민 세금을 자신들 개인 호주머니로 마구 빼돌린 거나 마찬가진데, 어떻게 이런 터무니없는 일이 벌어졌을까. 1993년 리조가 벨 행정관에 처음 취임했을 때 그의 연봉은 8만 달러에도 못 미쳤다. 10여 년의 세월 동안 자신의 봉급을 10배 이상 부풀린 것이다. 벨 주민들의 평균소득은 그 세월 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다. 최근의 공식통계들은 미국 서민들의 실질 소득이 10여 년 전보다 오히려 약간 줄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미지출처 : 영화 모비딕>
취재공백이 부른 희비극
얼마 전 일본 <아사히신문>(2011년 10월29일)을 보다가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됐다. 벨에서 벌어진 이런 황당한 일이 1998년 이후 그곳 지방신문 발행이 중단된 사실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이었다. 지방신문이 사라지자 시청과 시의회를 취재하는 기자들도 사라졌다. 리조가 호화저택을 짓고 광대한 목장까지 구입했지만 시민들은 그 사실조차 몰랐다. 리조는 시의회와 경찰마저 구워삶아 제 편으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그는 이를 위해 별다른 위장전술을 구사하지도 않았다. 아무도 감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자 한 사람만이라도 취재했다면 속속들이 그 사정이 드러났을텐데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벨은 취재기자가 한 명도 없는 ‘취재 공백지대’였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리조 등의 비리를 폭로한 건 그 지역 커뮤니티 매체가 아닌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기자들이었다. 그들은 인근 소도시 메이우드(Maywood) 관리들의 비리혐의를 뒤쫓다가 그 사실을 알게 됐다.
<아사히신문(이미지출처 : 네이버백과사전)>
<아사히신문>은 최근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런 식의 언론환경 변화를 <뉴스위크>와 <유에스 뉴스 앤 월드 리포트> 기자 출신 스티븐 월드먼(Steven Waldman)과의 인터뷰를 통해 알리고 자세히 분석했다. 월드먼은 전자네트워크 보급 속에 미국 전역 커뮤니티의 보도수요가 어떻게 충족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의뢰한 위탁조사를 수행한 38명의 전문가 중 한 명이다.
월드먼에 따르면, 미국 지방지 기자 초임은 우리 돈으로 연봉 5000~6000만원 수준이다. 그러니까 만일 시민들이 그만한 돈으로 기자 한 명이라도 고용해 시정을 살피도록 했다면 100억 원이 훨씬 넘는 자신들의 세금이 몇몇 무책임한 관리들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가진 않았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광고수입 반토막난 미국 신문들의 브로콜리, 햄스터 기자들
미국에선 최근 5년간 신문광고 수입이 절반으로 줄었단다. 그 결과 신문 면수도 줄고 기자들 봉급, 그리고 기자들 수도 줄었다. 발행중단(휴간)된 신문이 212개에 이르는데, 20년 전 6만 명이었던 미국 전역의 신문기자는 지금 4만으로 급감했다. 기자감원은 직접 독자들 눈에 띄지 않는 편집분야에서부터 시작돼 영화평이나 서평을 자사 기자가 쓰지 않아도 되는 문화부, 그리고 교육, 재판(법조), 환경, 농업 등 바쁘면 건너뛰고 읽는 분야 담당기자들로 확대됐다. 미국에선 이들 분야를 ‘브로콜리 분야’라고 한단다. 영양학상 없어선 안 되지만 통상 맛나는 것부터 먹는 식탁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채소에 비유한 것이다.
그 결과 남은 기자들은 더욱 정신없이 바빠졌다. 기사를 쓰고 사진도 찍고 심지어 동영상까지 만들어 인터넷에 속보로 보내고, 개인 블로그도 갱신해야 하고 페이스북과 트위터까지 맡아 1인 7역, 8역을 해야 한다. 그래야 그나마 살아남을 수 있을 테니까. 제대로 취재할 여유도 없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 정신없이 허겁지겁 살아야 하는 기자들은 자신들을 ‘햄스터 기자’라 자조한단다. 매체가 줄고 봉급도 줄고 심지어 기자까지 줄어들자 지방취재, 특히 소도시의 관청, 의회, 학교, 지방법원 재판정 등엔 아예 기자들이 가지 않는, 갈 수 없는 취재공백지대가 늘기 시작했다. 미국은 원래 지역에 자사 기자들을 상주시키는 전국지라는 게 없다. 각 자치체 뉴스 취재는 현지의 각 지역단위 지방지들이 도맡아 왔다. 그런데 지난 150여 년간 수지맞았던 신문산업이 최근 매체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심각한 어려움에 봉착하면서 그런 전통이 무너지고 있다. 더불어 비리에 오염될 가능성이 커진 자치체들도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뉴스 원석을 캐는 건 신문기자들
<이미지출처 : 영화 모비딕>
신문이 없어지거나 취재기자가 줄면 공무원들 부정부패가 늘고 선거 투표율마저 떨어져 정치영역도 중대한 영향을 받게 된다. 오하이오주의 경우 2007년 지방지가 없어진 뒤 자치체 선거 후보수가 줄고 투표율도 하락했다. 현직 관료들의 실적이 전혀 보도되지 않아 투표할 때 누구를 찍어야 할지 판단할 변변한 자료조차 없다. 공판을 방청할 기자도 없는 법조 취재는 거의 절멸 수준이다. 의료나 교육 분야도 마찬가지란다.
월드먼은 이제까지 조사해본 결과 “오늘은 이 도시의 결산과 의사록에 부정은 없는지 뒤져 보자”고 마음먹는 사람은 기자들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지자체 움직임을 감시하고 주민들에게 소식을 전달하는 일을 개인들이 자비로 할 순 없으니 반드시 지역매체 소속 기자들을 배치해야 하는데, 지금 미국 전역에 적어도 5만 명 이상의 기자가 있어야 미국 민주주의가 돌아갈 수 있단다. 그러니까 4만 명밖에 안 되는 지금 1만 명 정도의 기자가 더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월드먼은 특히 신문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방송이나 인터넷 매체들이 뉴스의 가공이나 보급에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지만 그 원석이라고 할 뉴스 취재와 발굴에선 여전히 신문과 신문기자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신문기자들이 꾸준히 조근조근 현장이라는 갱내에서 (방송이나 인터넷 매체들이 재빨리 가공해서 널리 퍼뜨리는 뉴스의 원석들을) 채굴하는 작업을 중단하면 뉴스들은 그대로 파묻힌 채 죽어버린다.”
인터넷 매체 등이 신문(최근 한국사회의 예를 보건대 발군의 취재력을 보여준 일부 주간지들도 이에 포함돼야 할 것이다)이 빠진 공백을 메우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란다. 월드먼은 그게 현실이라는 걸 이번 미국 전국조사를 통해 확인했단다.
기자는 민주사회의 공공재
그렇다고 해서 그가 신문사를 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경기나 광고수익에 의존하는 기존 신문들의 비즈니스 모델은 이제 한계에 부닥치고 있다. 따라서 비영리기구(NPO) 보도전문조직을 각지에 만들고 대학과 대학생들을 취재 보도의 거점으로 활용하는 등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기자는 민주사회에 불가결한 공공재라는 것, 교사나 의원, 경찰관, 소방관이 그러하듯 필수불가결한 존재라는 것을 주민이나 대학, 재단, 기업이 이해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며 그 이해를 토대로 기부금을 받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를 월드먼을 인터뷰한 야마나카 스에히로 <아사히신문> 뉴욕지국장 버전으로 바꾸면 이렇다.
“민주제도 유지에는 영양소가 필수적이다. 정치나 경제가 하루라도 없어선 안 되는 탄수화물이나 단백질이라면, 보도는 비타민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2~3일 정도는 섭취하지 않아도 견딜 수 있겠지만 완전히 끊어버리면 중병에 걸린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는 이를 미국 민주주의의 장래가 걸린 심각한 문제로 보고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는 모양인데, ‘종편 올인’으로 신문업계의 큰손들을 뺀 다수 중앙지들과 대다수 지방신문들을 고사위기로 몰아가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대한민국 방송통신위원회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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