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목표는 비판적 사고력과 민주적 역량 갖춘 ‘디지털 시민성’ 교육

2025. 8. 27. 10:00웹진<미디어리터러시>

 

|진민정(한국언론진흥재단 책임연구위원) / 김아미(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 독립연구자)|

 

프랑스의 미디어교육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끌레미(CLEMI)다.

끌레미는 ‘끌레미 코디네이터’라는 특별한 직책을

두고 학교 현장에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뿌리내리는 데 힘쓰고 있다.

전직 저널리스트이자 끌레미 코디네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세브린 퐁세-올리비에를 만나

끌레미 코디네이터의 역할과 운영 방식을 들어보았다.

 

프랑스 교육 현장에는 ‘끌레미(CLEMI) 코디네이터’라는 독특한 직책이 있다. 이들은 아카데미1) 소속으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학교 현장에 뿌리내리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단순한 교육 기획자나 행정 담당자를 넘어, 학교와 아카데미, 그리고 국가기관인 끌레미 중앙 본부를 연결하는 중재자이자, 교사 대상 연수 프로그램을 직접 설계·운영한다.

 

프랑스 미디어교육 현장의 실질적인 운영 방식과 끌레미 코디네이터의 구체적인 역할을 알아보기 위해, 지난해 5월 24일 베르사유 아카데미 소속 끌레미 코디네이터이자 전직 저널리스트인 세브린 퐁세-올리비에(Séverine Poncet-Olivier)를 직접 만났다. 그녀는 현재 디지털 교육 부서(La délégation académique au numérique éducatif, DANE)에도 속해 있으며, 프랑스 미디어교육 실천의 중심에서 활동하고 있다.

 

Q. ‘끌레미 코디네이터’는 다소 생소한 명칭이다. 이 직책은 어떤 사람들에게 주어지며, 어떤 구조 속에서 운영되고 있는가?

 

A. 프랑스 교육부 산하 국가기관인 끌레미는 전국 각 아카데미에 끌레미 코디네이터를 한 명씩 지정하고 있다. 이들은 단순한 교육 행정 담당자가 아니라, 현장 교사들과 아카데미 행정, 그리고 끌레미 중앙 본부를 연결하는 중재자이자, 미디어·정보 교육(L'éducation aux médias et à l'information, 이하 EMI)의 실천을 주도하는 핵심 인물들이다.

 

행정적으로는 각 아카데미 소속이지만, 동시에 끌레미의 방향성과 정책을 학교 현장에 구현하는 교육 현장의 실행자로서 기능한다. 또한 트레이너와 교사들을 대상으로 연수를 기획하고 교육을 제공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현재 프랑스 전역에서 약 30명의 끌레미 코디네이터가 활동 중이다.

 

코디네이터 선발은 공개 모집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언론·미디어에 대한 이해와 미디어교육에 대한 실무 경험을 갖춘 교사가 우대된다. 나 역시 10년간 언론사 기자로 일한 후 초등학교 교사로 전직해, 13년간 학교신문 제작과 언론 교육에 힘써 왔다. 이런 경력 덕에 현재의 직책을 맡을 수 있었다.

 

Q. 끌레미 코디네이터는 현장에서 어떤 활동을 하는가? 행정과 실천이 교차하는 지점에서의 실제 역할이 궁금하다.

 

A. 교사와 끌레미 코디네이터의 역할은 매우 다르다. 우리는 ‘학교에서의 언론과 미디어 주간(la Semaine de la presse et des médias dans l'École)’2)과 같은 행사를 조직하고, 교사 연수 계획을 세우고, 다양한 주제에 대해 교육한다. 현재 나는 학생들을 가르치지는 않고, 여섯 명의 교사와 함께 팀을 꾸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관련 연수 설계, 프로젝트 기획, 자료 개발, 교사 자문 등의 업무를 전담하고 있다.

 

역사, 문학, 기술 등 다양한 과목의 교사와 초등학교 교사인 이들은 각자의 과목을 가르치며 주당 10시간 팀과 함께 일한다. 교사들은 학교 수업 시간을 일부 줄이고, 나머지 시간에 교사 연수와 지원 업무에 참여한다. 우리는 단순히 미디어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 현장에서 발생하는 디지털 시민성, 소셜미디어, 사이버 폭력, 알고리즘과 같은 복합적인 주제를 교육적으로 해석하고 대응책을 마련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우리는 교사들을 위한 연수를 기획하고 직접 운영하는 ‘트레이너(formateur)’3)이기도 하다. 프랑스에서 이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자격 과정을 이수해야 하며, 교육학적 지식과 연수 설계 능력을 갖춰야 한다. 핵심은 교사들의 현실적 필요를 민감하게 포착하고, 그들을 위한 맞춤형 연수를 제공하는 것이다.

 

미디어·정보 교육(EMI)은 교사들이 정규 교육과정에서 배우지 않는 분야다. 그래서 끌레미가 교사 대상 미디어·정보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다. 다양한 주제에 대한 교육을 제공하고 있으며, 교사들은 원하는 교육을 선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웹라디오 제작, 학교신문 제작, 정보 및 허위정보 판별, 비판적 사고 훈련, 소셜미디어 이해 등이다. 끌레미 코디네이터는 교사들이 필요로 하는 주제에 대해 교육 목표를 설정한다. 지역에서는 이를 구체화하여 교사들에게 제공하고, 교사들은 자발적으로 교육에 참여한다. 우리의 목표는 EMI의 보편화지만 이를 달성하기는 매우 어렵다. 끌레미가 40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부 교사들에게는 새로운 분야이다.

 

Q. 일부 교사들에게 미디어교육은 여전히 낯선 분야일 듯하다. 프랑스에서 미디어교육의 보편화가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A. 이는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많은 교사가 미디어교육을 기존 업무에 추가되는 부담스러운 과제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미디어교육은 특히 웹라디오나 웹TV와 같은 ‘제작 중심’의 접근도 강조하고 있는데, 이러한 활동은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간다. 이에 따라 우리는 교사들에게 미디어교육이 학생들에게 줄 수 있는 교육적 이점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디어교육은 학생들의 글쓰기·말하기 능력, 사고 능력을 효과적으로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초등학교는 한 교사가 하루 종일 같은 학생들과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미디어교육 프로젝트를 자연스럽게 통합하기가 비교적 수월하다. 반면,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는 교과별 교사가 바뀌기 때문에 수업 시간에 프로젝트를 운영하기가 훨씬 복잡해진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우리는 교사들이 자신의 수업 속에서 미디어·정보 교육의 요소를 찾아내고 통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국어 교사는 신문 기사를 활용하여 학생들이 다양한 텍스트를 읽고 세상에 대한 이해를 넓히게 할 수 있다. 수학 교사는 표, 그래프, 설문조사 등을 통해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를 기를 수 있다.

 

이와 같은 접근은 학생들이 정보를 검토하고, 질문을 던지며, 세상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탐색하는 습관을 기르는 데 기여한다.

 

끌레미의 목표는 ‘디지털 시민성’ 교육

 

Q. 현재 베르사유 아카데미의 교사 대상 미디어·정보 교육 연수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나? 교육 규모와 방식에 대해 설명해 달라.

 

A. 우리 팀은 매년 3,000명가량의 교사에게 미디어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 교육은 트레이너 양성–재교육 시스템을 기반으로 운영된다. 먼저 우리가 트레이너들을 교육하고, 이들이 다시 현장 교사들을 교육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구조를 통해 연간 50~60개 학교에서 교육이 진행된다. 교육 규모는 유동적이다. 경우에 따라 소규모 그룹으로 운영되기도 하고, 150명 이상의 대규모 그룹이 참여하기도 한다.

 

우리는 교사들의 다양한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여러 형식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예를 들어, 초기에는 화상 회의로 기본 교육을 진행하고, 이후에 개별 학습을 통해 심화 내용을 습득한 뒤 마지막에 다시 모여 마무리하는 방식이 있다. 이런 형식을 흔히 ‘혼합형 교육(formation hybride)’이라고 부른다. 또한 6시간 동안의 집중 대면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으며, 12시간 또는 18시간 과정도 있다. 일부는 전면 대면 형식으로, 일부는 온라인과 병행하는 혼합형으로 진행된다. 이렇게 다양한 형식을 제공하는 이유는 교사마다 상황과 요구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교사들이 자신의 상황에 맞춰 미디어교육을 자율적으로 설계할 수 있도록, 점진적이고 유연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자 한다.

 

Q. 교사들의 실제 요구에 기반을 둔 맞춤형 연수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A. 프랑스의 EMI는 디지털 시민성을 포함한 매우 광범위한 주제를 다룬다. 특히 오늘날의 디지털 환경에는 디지털 교육과 EMI가 얽혀 있기 때문에 교육의 경계가 넓고도 복잡하다. 최근에는 EMI의 관점에서 디지털 관련 주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한 요구가 많아 이를 많이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학생들의 과도한 유튜브나 소셜미디어 이용에 대해 교육할 때, 단순히 그 악영향을 경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알고리즘의 작동 방식, 주목 경제(attention economy) 등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허위정보, 음모론, 불법 사이트 등의 식별 방법에 대해서도 교육하고 있다. 이러한 교육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미디어교육의 기본 개념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매체와 정보의 본질을 이해하면, 허위정보나 음모론에 대처하는 데 훨씬 더 효율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인공지능(AI), 사이버 폭력, 사이버 불링, 이미지 및 영상 분석과 같은 주제들도 EMI 교육에서 점점 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많은 교사가 공통적으로 요청하는 주제 중 하나는, 학생들에게 인터넷 검색 시 신뢰할 수 있는 자료를 선별·검증하는 방법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다. 이는 정보 리터러시의 핵심이기도 하며, 현재 매우 중요한 연수 주제로 다뤄지고 있다.

 

또한 우리는 ‘디지털 절제(digital sobriety)’, 즉 과도한 기술 사용을 줄이는 방법에 대한 교육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결국 우리의 목표는 디지털 세계 시민으로서의 책임 있는 태도를 갖추도록 돕는 것, 즉 디지털 시민성을 교육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연수 구성 방식은 EMI를 중심축으로 삼되, 디지털 관련 주제를 통합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연수는 6시간의 단기 대면 연수부터 18시간짜리 혼합형 연수까지 다양하게 구성되며, 교사들은 자율적으로 선택·참여할 수 있다. 교육은 교사 스스로 자신의 수업에 적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며, 우리는 교사가 자신의 수업 안에서 EMI 요소를 발견하고 통합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전략도 함께 제공한다.

 

Q. 미디어교육의 통합적 접근은 실제 수업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있나?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면 소개해 달라.

 

A. 대표적인 예가 바로 ‘미디어 클래스(Classe Médias)’이다. 이 프로젝트는 여러 명의 교사가 팀을 이뤄, 한 학년을 대상으로 1년 또는 최대 3년간 통합형 미디어교육을 진행하는 모델이다. 단일 교사가 아닌, 한 학교 안에서 서너 명의 교사들이 팀을 이뤄 공동으로 운영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예를 들어, 중학교 1학년 학급이 대상이라면, 프랑스어, 수학, 역사, 예술, 체육 등 다양한 과목의 교사들이 참여해 1년 동안 각자의 수업에 미디어교육을 접목한다.

 

미디어 클래스는 학급 전체를 위한 통합형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한 명의 교사가 모든 것을 담당하기 어렵다. 따라서 다양한 과목의 교사들이 협력·운영하는 구조가 필수적이다. 이 방식은 모든 학생이 자연스럽게 미디어 활동에 참여하도록 하는 데 효과적이다.

 

우리는 매년 15~20개 학급을 선발하며, 올해는 약 20개 학급이 미디어 클래스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프로젝트 첫해에는 모든 참여 교사에게 12시간 분량의 기초 연수를 제공해, 미디어교육의 기본 개념과 교수 전략을 익히도록 돕는다. 이후 2년 차와 3년 차에는 보다 전문적인 교육 모듈이 제공된다. 예를 들어, 버티컬 영상 콘텐츠 제작, 라디오 프로그램 및 팟캐스트 기획과 녹음, 디지털 플랫폼용 콘텐츠 구성법 등 구체적인 실습 중심 교육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접근은 교사들이 초급부터 고급 기술까지 순차적으로 학습하면서, 미디어교육 역량을 실질적으로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한편, 학생들은 팀을 이뤄 라디오 채널을 운영하거나 학교신문을 제작하고, 직접 제작한 영상 콘텐츠를 SNS에 배포하는 등 실제 저널리즘적 경험을 축적하게 된다.

 

프로젝트가 종료되면 우리는 각 학급의 활동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라디오, 신문, TV, 소셜미디어 기반 콘텐츠 등 실제 미디어 제작 프로젝트를 수행했는지를 확인하고, 프로젝트 이후에도 계속 ‘미디어 클래스’를 운영할 의향이 있는지 묻는다.

 

대부분의 교사는 이 프로그램이 학생들에게 매우 유익하다고 판단해, 프로젝트 종료 후에도 자발적으로 프로그램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 교사들의 만족도는 전반적으로 매우 높은 편이다.

 

체계적이고 이상적인 연수 프로그램 구성

 

Q. 교사들의 요구는 어떻게 파악하고 있으며, 그것이 연수 프로그램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궁금하다. 아울러, 연수의 효과는 어떤 방식으로 평가하고 있나?

 

A. 교사들의 요구를 반영하기 위해 우리는 두 가지 방식을 병행하고 있다. 첫 번째, 설문조사를 통해 전반적인 경향을 분석한다. 연수 전에 교사들에게 어떤 주제에 관심이 있는지를 묻고, 다수의 교사가 공통적으로 언급한 주제를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한다. 물론 모든 요청을 충족시킬 수는 없지만, 전체적인 흐름과 우선순위를 파악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두 번째는 팀 단위로 연수를 설계할 때, 참여 교사들의 전공과 실제 수업 맥락을 최대한 반영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양한 자료와 정보를 제공하고, 교사들이 그중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내용을 선택하고 수업에 적용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 과정은 교사들의 자율성과 실천 능력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울러, 새로운 교육 주제를 발굴하기 위해 EMI 관련 최신 연구, 언론 기사, 실천 사례들을 꾸준히 모니터링한다. 교육 연구자들과 협력해 새로운 주제를 탐색하고, 교사들에게 이를 소개한다. 어떤 주제는 도입 초기에는 반응이 적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관심을 얻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주제를 시범적으로 도입해 보고, 반응이 없으면 일시 중단하거나 나중에 다시 시도하는 등 유연하게 운영하고 있다. 연수 효과 평가는 정량적 평가와 정성적 피드백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모든 연수 종료 후에는 만족도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교사들은 교육을 마친 뒤 자동으로 설문에 응하게 된다. 비록 모든 교사가 응답하는 것은 아니지만, 응답 내용을 통해 대략적인 만족도와 개선이 필요한 지점을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워크숍 현장이나 연수 종료 후 개별 인터뷰를 통해 질적인 피드백도 수집한다. 예를 들어, 어떤 내용이 유익했는지, 실제 수업에서 어떻게 적용할 생각인지 등을 묻는다. 나아가 연수 이후 실제로 웹라디오, 웹TV, 학교 미디어 프로젝트 등이 어느 정도 실행되었는지 확인함으로써 간접적인 교육 효과도 함께 평가하고 있다.

 

물론, 교육이 교사의 수업 방식이나 학생의 학습 경험에 어떤 장기적 영향을 미쳤는지를 구체적으로 평가하는 일은 여전히 어려운 과제다. 교사 대부분이 연수에 자발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응답이 긍정적으로 편향되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드물게 나타나는 부정적 피드백 역시 향후 프로그램 개선을 위한 귀중한 단서로 적극 반영하고 있다.

 

Q. 이렇게 다양한 실천이 이뤄지려면 팀 구성원들 간의 협력뿐 아니라 코디네이터 간 협력도 중요할 것 같다. 협력 체계가 존재하나? 그렇다면 어떻게 작동하고 있나?

 

A. 끌레미 코디네이터들은 전국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 우리는 매년 5~6회 정도 화상회의를 열어 활동을 공유하고, 각 아카데미의 실천 사례나 교육 현안, 교육부의 정책 방향 등을 논의한다. 이 회의는 보통 두세 시간가량 진행되며, 전국 단위의 정보 교환과 주제별 심층 토론이 함께 이루어진다. 뿐만 아니라, 매년 한두 차례는 프랑스 본토와 해외령의 모든 끌레미 코디네이터들이 3일간 한자리에 모이는 대면 회의(워크숍)도 개최된다.

 

어떤 코디네이터가 특정 분야에 전문성이 있다면, 그로부터 직접 정보를 얻거나 자문을 구하기도 한다. 예컨대, 이미지 분석이나 공개출처정보(OSINT)에 전문성을 가진 코디네이터가 있다면, 그가 개발한 자료나 도구를 다른 아카데미에서도 공유·채택한다. 이렇게 지식과 자료를 상호 교환하는 구조는 교육 자원의 질을 전국적으로 고르게 유지하는 데 매우 큰 도움이 된다.

 

코디네이터 간 협력은 단순한 정보 교환에 그치지 않는다. 특정 주제에 대한 공동 학습, 실험적 모듈 개발, 자문 네트워크 형성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되고 있다. 덕분에 각 지역이 처한 교육 현실의 차이를 어느 정도 상쇄하면서도, 전국적 일관성과 지역적 다양성이 조화를 이루는 기반이 되고 있다.

 

끌레미 사무실에서 만난 세브린 퐁세-올리비에

 

 

Q. 코디네이터들 사이의 전문성 분담이나 자원 공유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A. 전국의 끌레미 코디네이터들은 각자 관심 있는 주제와 전문 분야가 달라 이를 바탕으로 교육 자원을 개발하거나 도구를 제작하기도 한다. 이렇게 생산된 자료는 다른 코디네이터들과 공유되며 전국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서로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협력을 가능하게 하고, 지역 간 교육 자원의 격차를 줄이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한 미디어 클래스는 3년간 학생들과 함께 지속적으로 미디어교육을 실천하는 학급 중심의 프로그램으로, 교사들이 각자의 수업 안에서 미디어 활동을 통합적으로 기획·실행한다. 우리는 매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급들의 결과물을 평가하고, 가장 창의적이고 잘 구성된 사례를 선정한다. 특히 이런 프로젝트에 참여한 교사들은 교육과정에서 실용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풍부하게 제시하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는 존재다.

 

그중 일부 교사들은 사례 발표자로 초청되어 다른 교사들과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고, 수업 적용 방법이나 교육 자료 활용 팁을 전수하기도 한다. 이러한 자리는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서, 교사들 간에 구체적인 질문과 실질적인 조언이 오가는 매우 실용적인 학습의 장이 된다.

 

결국, 코디네이터 간의 협업은 단지 자료 공유에 그치지 않고, 현장 교사들과의 연결을 통해 실질적인 교육 실천으로 이어지며, 이는 곧 교육 프로그램의 질적 향상과 실용적인 미디어교육의 확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Q. 말씀을 듣고 보니 프랑스의 미디어교육, 특히 교사 연수 시스템은 상당히 체계적이고 이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실제 교육 시스템 안에서는 이러한 모델이 갖는 구조적 특징이나 제약, 혹은 현실적인 한계점도 분명 존재할 것 같다.

 

A. 그렇다. 프랑스에서 끌레미는 EMI라는 특정 교육 분야를 국가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담당하는 유일한 구조다. 프랑스 교육부 내에서 이처럼 하나의 교육 분야에 대해 전국적 조직 체계를 갖추고 활동하는 기관은 끌레미밖에 없다. 다른 교육 분야에는 끌레미와 같은 중앙 조직도, 코디네이터 시스템도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은 각 아카데미 단위에서 자체적으로 소규모 팀을 구성해 협력하는 수준에 그친다. 이런 점에서 끌레미는 프랑스 교육 시스템 내에서 매우 독특하고도 안정된 구조를 가진 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끌레미는 설립 초기, 학교 현장에서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같은 매체를 활용하고, 신문사와 협력해 언론 교육을 실현하는 것이 주요 목표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디지털 환경이 급변하면서, 그 역할과 중요성은 점점 더 커졌다. 오늘날 끌레미는 프랑스 전역에서 미디어교육을 체계적으로 확산·실행하는 핵심 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국가 차원의 정책과 연계된 교육 실행 체계를 갖춘 유일한 모델이라는 점에서 그 특수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하지만 동시에 이 구조는 EMI가 교과 안에 온전히 내재화되지 못하고, 주변적인 교육으로 남게 만드는 한계를 지닌다. 연수나 자료 제공 시스템은 잘 갖춰져 있지만, EMI 자체가 정규 교육과정에서 필수적으로 다뤄지는 영역은 아니다 보니, 실행 여부는 오롯이 교사의 자발성에 달려 있다.

 

40년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EMI는 많은 교사들에게 낯선 영역이다. 어떤 교사들은 미디어교육을 “자신의 일이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EMI가 단순한 미디어 활용 교육이 아니라,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력과 민주적 역량을 키우는 핵심적인 시민교육이라는 점을 지속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결국 제도적 장치만으로는 부족하며, 인식의 전환이 병행되어야 EMI가 프랑스 교육 시스템 안에서 실질적이고 지속 가능한 교육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1) 프랑스에서 교육부 장관이 임명한 교육감(Recteur)이 관할하는 지역 교육 행정 단위로, 우리나라의 교육청 또는 학군에 해당함

2) 1989년부터 프랑스 교육부와 끌레미(CLEMI)가 매년 공동 주최하는 전국 단위 미디어교육 주간 행사로, 언론과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이해와 표현 능력을 기르기 위해 기획되었다. 전국 초·중·고등학교에서 신문, 라디오, TV, 디지털 미디어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수업과 프로젝트가 일주일간 집중적으로 진행된다.

3) 현장 교사들을 대상으로 연수와 교육을 설계·실행하는 역할을 맡은 인물을 프랑스에서는 일반적으로 ‘formateur(포르마퇴르)’라고 부르며, 이는 단순한 강사나 교사라기보다 전문 연수 담당자의 의미를 포함한다. 이에 따라 본문에서는 ‘연수 교사’ 대신 ‘트레이너’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4) 프랑스 교육부 산하 끌레미나 연관 교육 기관에서 제공하는 온라인 교육 자료, 수업안, 활동 제안서, 사례 모음집, 동영상 자료 등을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