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계적인 수업 설계와 충분한 교육 시간 확보로 민주주의의 꽃 피우고 열매 맺어야

2025. 9. 3. 10:00웹진<미디어리터러시>

 

|박한철(덕성여자고등학교 교사)|

 

 

학생들은 미래의 주역이기도 하지만 현재의 시민이기도 하다.
학생들의 정치 참여 능력 함양은 곧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성장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학생들의 선거 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필자가 실제 교육 현장에서 진행한
수업 사례를 통해 그 중요성과 한계를 확인해 본다.

 

사람들은 흔히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 ‘민주주의의 학교’라고 말한다. 민주주의가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선거’라는 꽃을 아름답게 피우는 것이 중요하고, 선거에 대해 제대로 배우고, 익히고, 실천해야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될 수 있다는 의미다. 국민을 대표해 일할 사람을 뽑는 선거는 민주 정치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선거를 통해 누가 대표로 선출되느냐에 따라 정책이 달라지고 우리 사회의 발전 방향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필자가 교육 현장에서 실천했던 선거 교육 사례들을 되짚어보며 그 의미들과 한계들을 성찰해 보고자 한다.

 

정치적 무관심에서 정치 참여로

 

[표 1]의 통계 조사 결과로 알 수 있듯이 중고등학생들의 선거 관심도는 생각보다 낮은 편이다. 대통령 선거를 제외하면 선거에 관심이 ‘있다’라고 답변한 비율이 50%를 넘지 못한다.

 

 

“선거는 어른들이 하는 것 아닌가요?”, “제가 선거에 관심을 가지면 정치가 변하나요?”, “제 삶과 선거가 어떤 관계가 있죠?”, “선거만 잘한다고 정치가 바뀔까요?” 등은 선거에 무관심한 학생들에게 질문하면 돌아오는 또 다른 질문이다. 학생들이 선거의 중요성을 체감하고 주인의식을 갖도록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은 선거에 관한 영화를 함께 보고 비평문을 작성해 이야기를 나누는 수업이다. 사회교과서에 나오는 정치 참여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그들의 무관심을 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2025년 대선을 앞두고 함께 본 작품은 참정권의 무게와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서프러제트>(2016)였다.

 


학생 비평문 예시

 

 

영화 <서프러제트>는 20세기 초 영국에서 일어난 여성 참정권 운동과 그 운동가들의 삶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권리들이 과거 누군가의 피와 눈물, 그리고 희생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참정권과 같은 기본권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것이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마지막에 자막으로 흐르는 여성 참정권의 역사적 과정은 마치 하나하나의 글자에 당시 여성들의 절절한 외침과 아픔이 새겨져 있는 듯하다. 결국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건 나와 너의 한 표가 모여 만들어 낸 민주주의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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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비평문은 한결같이 참정권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는 글로 가득하다.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건 ‘나의 한 표’라는 인식의 변화가 일어났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그러나 이런 인식의 변화를 태도와 행동으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정치적 효능감을 직접 경험할만한 기회들을 제공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들이 현재 부족하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상대적으로 학교에서의 학교 자치 활동이 위축되면서 선거와 자신의 삶을 연결하는 기회가 줄고 있다. 선거를 자기 삶의 문제로 인식시킬 수 있는 학급선거, 학생회장 선거, 학생자치의원 선거, 학교 주요 사안에 대한 찬반투표 등 다양한 정치 참여의 장을 만들어주는 것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기다.

 

선거 교육에서 정치 참여 교육으로

 

선거는 정치 참여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긴 하지만 선거가 일상적 행위가 아니다 보니 선거 교육은 지속성을 가질 수 없다. 그래서 선거가 없는 기간에는 정치 참여 교육으로 확장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현대사회의 다양한 정치 주체들(국회, 행정부, 법원, 언론, 정당, 시민단체, 개인 등)의 활동 사항을 인터넷 뉴스 검색을 통해 점검해 보고 현재 제대로 정치 참여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점수를 매겨보면서 진단해 보는 수업이다. 더불어 나의 정치 참여 점수를 높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도 함께 고민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이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 중 최근 들어 많이 등장하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이런 수업을 해도 되나요?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특정 정당을 언급하면서 비판해도 되나요?”, “정치적 중립을 어떻게 지켜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마도 이는 2020년 4월 총선에서 처음으로 고3 학생들이 참정권을 가지게 되면서 선거관리위원회가 ‘공무원의 정치,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 금지’의 위반을 언급하면서 학교가 사회의 정치적 갈등을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시작된 걱정이라 생각한다.

 

이유 있는 걱정에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제대로 된 정치 참여 교육이 되기 위해서는 정치적 중립이라는 이름에 함몰되지 않도록 정치 교육의 실제성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 현안들과 당파성을 회피하기보다는 학생의 입장에서 분석·비판하며 대안을 찾아보는 수업이 필요하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교사의 체계적이면서도 균형 잡힌 수업 설계와 진행도 필요하겠지만 선거 기간 소셜미디어에 ‘좋아요’ 하나만 잘못 눌러도 책임을 져야 하는 현재의 환경도 개선되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시민으로서 갖춰야 할 기초 역량은 강조하면서 시민답게 성장할 수 있는 구체적인 교육은 하지 않는 아이러니가 생기지 않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서울특별시교육청 학교민주시민교육 진흥조례에 나온 것처럼 균형적인 관점에서 논쟁적인 것을 슬기롭게 다루는 정치 토론과 참여 수업을 꿈꿔본다.

 

좌: 우리 사회의 정치 참여점수 조사 활동지 (출처: 필자 제공) 우: 학생들이 우리 사회의 정치 참여 점수를 온도계로 표현하는 활동을 실시한 뒤 관련 근거 자료와 함께 모둠별로 발표하고 있다. (출처: 필자 제공)

 

 
서울특별시교육청 학교민주시민교육 진흥조례(조례 제8311호, 2022.1.6. 일부개정) 4조 (기본원칙) 2항과 3항


2. 우리 사회에서 논쟁적인 것은 학교에서도 논쟁적으로 다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사적인 이해관계나 특정한 정치적 의견을 주장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해서는 아니 된다.
3. 주입식 방식이 아닌 자유로운 토론과 참여를 통한 교육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비판적 사고 능력과 선거 교육의 콜라보

최근의 선거 경향은 미디어를 제외하고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선거에 미치는 미디어의 영향력이 가히 절대적이다. 각종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정당이나 후보자 관련 정보는 유권자가 정당이나 후보자를 평가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거 관련 정보를 미디어를 통해 얻고 있다. 선거 관련 정보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판별하며 공유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 또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중요한 책무라 생각해 다음과 같은 수업을 진행했다.

 

선거 관련 정보(정당이나 후보자에 대한 정보, 선거 여론조사 결과, 선거 보도, 정치 홍보, 후보자 토론, 후보자 유세, 선거공약집, 선거공보, 방송 연설, 선거제도 등) 선거의 안팎을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분석하려면 다양한 관점에서 질문과 답을 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미디어에 따라 조금 다를 수 있지만 크게 다섯 가지 핵심 질문으로 요약할 수 있다. [표 2]의 핵심 질문에 근거해 각 미디어 콘텐츠에 맞는 하위 질문을 만들어본다. 학생들 스스로 조사하고 답하는 과정에서 미디어의 선거 보도에 대한 비판적 분석 능력이 자연스럽게 길러질 수 있을 것이다.

 

선거 관련 정보의 양이 과거에 비해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지면서 정보의 질, 진위 여부, 신뢰성을 정확히 판단해 투표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학생들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정보를 정확히 분석하고 검증·판별하는 사고능력을 길러, 올바른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학교에서의 시민 정치 교육은 대부분 사회 교과에서 담당한다.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사회 교과에 관련 성취 기준이 마련되어 있고 교과서에도 시민 정치 교육 관련 부분들이 나오지만, 위의 내용들을 다 다루기에는 절대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물론 정치와 법 교과서에 관련 성취 기준이 있고 교과서에도 많은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일반 선택과목인 관계로 선택한 학생만 배울 수 있다. 고등학교에서 정치와 법을 어느 정도 배우고 있는지에 대한 통계는 없지만 수능 선택과목에서 정치와 법 선택 비율을 보면 6% 내외다. 고3이 되면 선거권을 갖는 학생들이 아주 많은 만큼 정치 참여와 선거의 의미를 고민해 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고등학교만이라도 충분히 확보되기를 소망해 본다.

 

사랑스러운 우리 학생들은 미래의 주역이기도 하지만 현재의 시민이기도 하다. 그들의 정치 참여 능력을 함양시키는 것은 바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성장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학생들이 정치와 선거에 무관심하지 않도록 효능감 있는 정치 참여의 장을 마련해주고, 정치적 현안과 정보들을 학생들의 관점에서 조사하고, 분석하고, 평가하고, 논쟁할 수 있도록 하는 체계적인 수업을 설계하고, 충분한 교육 시간을 확보해 숙의할 수 있도록 한다면 민주주의의 꽃은 물론 풍성한 열매도 함께 맺을 수 있는 미래가 열릴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