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룩 업>, <댓글부대>가 그리는 여론 조작 메커니즘

2025. 11. 5. 10:00웹진<미디어리터러시>

배동미(씨네21 기자) / 사진((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넷플릭스 제공)

 

어디까지가 허구고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간혹 영화를 보면 헛갈릴 때가 있다. 

보고 난 후 떠오르는 사건이나 현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되짚어보게 만드는 영화들이 있다. 
<돈 룩 업>과 <댓글부대>, 두 편의 영화를 통해 우리 사회의
여론 조작 메커니즘과 미디어 리터러시의 중요성을 확인해 본다. 

 

‘하늘을 보지 마라’는 명령, 누구의 진실인가

 

망원경으로 별을 관찰하고 기록하던 천문학과 박사과정 수료생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렌스)는 어느 날 밤, 그전까지 보지 못한 혜성 하나를 발견한다. 궤적을 살펴보니 지구를 향해 정면으로 날아오는 중이고, 6개월 뒤면 충돌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발견자 이름을 딴 디비아스키 혜성이 지구와 충돌할 확률은 99.78%. 100%나 다름없다. 지도 교수 민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함께 분석한 결과, 이 혜성은 공룡을 멸종시킨 것보다도 훨씬 더 거대한 규모로 충돌하면 1.5km 높이의 쓰나미를 일으키고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10억 배에 달하는 충격을 가져올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아담 맥케이(Adam McKay) 감독의 연출한 영화 <돈 룩 업>(2021)은 ‘혜성 충돌’이란 진실을 두고 사회가 얼마나 분열할 수 있는지 비춘다. 다가오는 혜성은 너무나도 명백하고 단일한 진실인데도 말이다.

 

이 분열은 정치에서 시작된다. 재선을 앞둔 올리언 미국 대통령(메릴 스트립)은 떨어지는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그동안 관심조차 없던 혜성을 임박한 재난으로 포장해 정치적으로 활용한다. 한밤중 긴급 생방송을 통해 디비아스키 혜성의 존재에 관한 대국민 성명을 발표하며, 우주선을 발사해 혜성 궤도를 바꾸겠다는 해결책을 내세워 믿음직한 리더의 이미지를 강조하려 한다. 그러나 그 발표는 오히려 국민들에게 충격을 안긴다. 그리고 점차 사람들의 반응은 믿음과 불신, 공포와 냉소로 엇갈리기 시작한다. 급기야 올리언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혜성은 없다’며 “하늘을 올려다보지 마라(Don’t Look Up)” 운동까지 벌인다. SNS에는 ‘하늘은 올려다보지 마라’는 해시태그가 넘쳐나고, 사람들은 자신만의 ‘필터 버블(filter bubble)’ 안에서 확증편향적인 콘텐츠를 소비하며 진실을 외면하게 된다.

 

늦은 밤 마이크를 잡고 대국민 성명을 발표하는 대통령. 이 장면은 영화 속 이야기이지만, 최근 우리 현실과도 겹친다.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23분, 윤석열 전 대통령은 대국민 긴급 담화를 통해 4분 뒤인 10시 27분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약 1시간 반 뒤인 12월 4일 새벽 1시 1분,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상정하고 통과시키면서 계엄령은 선포 약 2시간 40분 만에 사실상 효력을 잃었다. 윤 전 대통령은 약 열흘 뒤인 12월 14일에 국회에서 탄핵 소추되었고, 직무가 정지되었다. 이후 헌법재판소 심리 과정에서 윤 전 대통령 측이 이를 “계몽적 계엄”이라 주장하면서 국민 여론은 이를 받아들이는 측과 그렇지 않은 측으로 양분되었다.

 

 

<돈 룩 업>은 ‘혜성 충돌’이란 진실을 두고 우리가 얼마나 분열할 수 있는지를 그린다. (출처: 넷플릭스 제공)

 

올리언 대통령은 재선에 승리했고 윤 전 대통령은 권력을 잃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겠으나, 위기 상황에서 진실을 대중 설득의 도구로 삼았다는 점에서 두 인물은 본질적으로 닮아 있다. 윤 전 대통령이 계엄을 계몽이라 호도한 것처럼 올리언 대통령도 권력을 쥔 다음 혜성 문제를 왜곡하고 지지자들을 동원해 혜성의 존재 자체를 지우려 한다. 진실은 존재하지만, 그 진실을 누가 어떻게 전달하고 조작하는지에 따라 대중의 반응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결국 영화 <돈 룩 업>은 진실 자체보다 ‘진실을 다루는 방식’이 현실을 어떻게 왜곡할 수 있는지를 시사한다.

 

탈진실과 필터버블이 뒤엉킨 선거 기간

 

2016년 옥스퍼드 사전 위원회는 ‘탈진실(Post-truth)’을 그해의 단어로 선정했다. “객관적 사실보다 개인적 신념이나 감정이 여론 형성에 더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라고 정의했다. 객관적 사실을 두고 교묘하게 달리 해석한 견해를 사람들이 믿게끔 만들고, 그 결과 개개인의 판단이 흐려지는 시대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탈진실은 순전히 가짜로 만들어진 ‘거짓말’과는 다른 개념이지만, 사람들이 ‘진실이 아닌 것’을 믿게 한다는 점에선 거짓과 비슷한 면이 많다. 옥스퍼드 사전 위원회는 2016년 ‘시대의 단어’로 탈진실을 꼽은 이유를 설명하며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Brexit)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와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이 단어를) 많이 사용했다”라고 말했다. 탈진실이 현실 정치에서 얼마나 강력하게 작동했는지 여실히 느껴지는 대목이다. 탈진실이 현실 정치에서 얼마나 강력하게 작동했는지 여실히 느껴진다. 안국진 감독이 연출한 한국 영화 <댓글부대>(2024)는 이러한 탈진실과 여론 조작의 실체를 우리 사회에 밀착된 이야기로 풀어낸다. 닉네임 찡뻤킹(김성철), 찻탓캇(김동휘), 팹택(홍경) 주인공 3인방은 댓글과 온라인 민심을 암암리에 관리하는 20대 젊은 청년들이다. 이들은 돈을 받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신종 담배와 개봉 영화, 대기업에 관한 여론을 교묘하게 조작하는 일을 한다. 찡뻤킹은 고객을 만나 일감을 따오고, 소설가를 꿈꾸는 찻탓캇은 자극적인 문구를 작성하며, 팹택은 한국의 커뮤니티 지형도를 잘 파악하고 있어 여론 조작글을 어디에 어떻게 업로드하면 좋을지 판단한다. 이들 사이에 일종의 수주-제작-배포 라인이 형성돼있다.

 

댓글부대 3인방은 온라인에 홍보 대상을 슬쩍 노출하는 게시글을 올려 호기심을 일으킨 뒤 여론을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수법을 주로 사용했다. 이를테면, 신종 담배를 홍보할 때 이들은 호화로운 생활을 자랑하는 한 여성의 SNS 게시글을 가짜로 꾸미고 캡처한 뒤, 이를 커뮤니티에 업로드한다. 이들의 목적은 단 하나다. 네티즌들이 몰려와 SNS 계정을 비난하도록 만들기. 한데 자세히 보면 가짜 캡처 사진의 귀퉁이에 담배가 슬며시 노출돼 있고 이를 본 사람들은 가상의 여성에게 분노하면서도 처음 보는 담배를 궁금해하기 시작한다. 탈진실의 시대에 비난과 관심이란 증폭된 감정은 한 끗 차이였다.

 

아담 맥케이(Adam McKay) 감독이 연출한 영화 <돈 룩 업> (출처: 넷플릭스 제공)

 

자동화된 선거 개입, 생성형 AI의 그림자

 

찡뻤킹 3인방이 일일이 수작업으로 여론을 조작한다면, 현실 선거 국면에서 가짜뉴스들은 생성형 AI 등 디지털 기술로 제작되고 대량 배포된다. 디지털 허위정보 활동을 적발하는 프랑스 정부기관 비지눔(VIGINUM)은 2024년 2월 러시아 온라인 여론 조작 네트워크 ‘포털 컴뱃(Portal Kombat)’의 존재를 밝혀냈다. 비지눔은 당시 유럽 사회가 유럽 의회 선거를 앞두고 있어 러시아 공작에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했는데, 포털 컴뱃은 139개의 사이트로 이루어져 있었고, 3개월 만에 15만 건의 정보를 유포할 정도로 그 규모가 컸다. 비지눔은 이 네트워크가 이처럼 대량으로 정보를 유통할 수 있었던 건 자동화 기술 덕분이라고 보았다.

 

같은 해 9월 마이크로소프트 위협분석센터도 미국 대선을 앞두고 “러시아와 관련된 계정들이 분열적인 정치 콘텐츠, 조작된 동영상, AI 선전물을 계속 확산시킬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 마이크로소프트 위협분석센터에 따르면, 러시아와 연계된 온라인 계정들은 카멀라 해리스(Kamala Harris) 민주당 대선 후보 지지자들이 반대 진영인 트럼프 집회 참가자들을 공격하는 가짜 동영상을 제작했다. 그리고 그 영상은 조회수 수백만에 달할 정도로 널리 퍼져나갔다. 해리슨 후보가 2011년 뺑소니 사고로 한 소녀를 마비시켰다는 가짜뉴스도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했으며, 그를 비방할 목적으로 지역 언론을 가장한 웹사이트까지 개설되었다. 같은 기간 FBI도 성명을 내고 경합 주 관리들이 투표를 조작한다는 뉴스는 러시아에서 만들어진 가짜뉴스라고 밝혔다. 민주당에서 재외국민 투표용지를 조작하여 해리슨 후보에게 몰표를 줬다는 이야기도 사실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정보의 바다를 항해하는 방법 ‘미디어 리터러시’

 

선거 기간 동안 우리 손안의 스마트폰에는 수많은 정보가 파도처럼 밀려온다. 게다가 찡뻤킹 3인방과 같이 온라인에서 활약하며 여론을 조작하는 이들까지 있다면 우리는 더욱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3인방이 온라인에서 활동하고 돈을 버는 방식은 정치 유튜버들이 조회수를 근거로 수익을 내는 메커니즘과 본질적으로 유사해 보이며, 유럽과 미국 선거처럼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대량 정보 교란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그렇다면 유권자는 어떻게 현명하게 판단할 수 있을까.

 

그에 대한 답은 간명하지만, 많은 정성이 필요한 일이다. 결국 우리는 눈을 크게 뜨고 시간을 들여 사안을 정확하게 판단해야 한다. 단순히 문자를 읽을 줄 아는 능력을 넘어 ‘미디어 리터러시’, 즉 문해력이 귀중해진 시대다. 자극적이고 즉각적인 주장과 이미지에 휘둘려 ‘좋아요’를 누르기보다 신중하게 정보에 접근하는 태도가 우리에겐 더 많이 필요하다.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다. 영화 <댓글부대>가 재현한 신종 담배 바이럴은 2014년에 실제로 벌어진 일이었는데, 누군가의 SNS를 캡처한 듯 보였던 이미지에서 본문과 댓글의 폰트가 달랐던 점을 수상하게 여긴 네티즌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꾸준히 신종 담배를 홍보하는 계정들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눈 밝은 네티즌의 힘으로 여론 조작의 메커니즘이 까발려진 것이다.

안국진 감독이 연출한 한국 영화 <댓글부대> (출처: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2013년 국가정보원 직원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은 게시글을 3,000개 넘게 작성하고 재판을 받은 사건도 있었다. 일부 무죄가 선고됐지만 해당 사건은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고 온라인 여론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니 우리는, 영화 <돈 룩 업> 속 누군가가 말했듯이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진실을 의심하고, 누가 그것을 조작했는지 끈질기게 따져 묻는 것. 그것이야말로 유권자의 책무이자 민주주의의 최전선에서 우리가 쥐고 있어야 할 도구이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어디서 시작된 것인지 알 수 없는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모르는 곳까지 떠내려가지 않을 수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이제 생존을 위한 ‘읽기’ 능력이다.

 

<댓글부대>는 탈진실과 온라인 여론전에 대해 다루고 있다. (출처: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