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미디어교육 현장에서 찾은 한국 미디어교육의 미래

2025. 10. 29. 10:00웹진<미디어리터러시>

 

박소현(옥길산들초등학교 교사)ㅣ

 

미디어 리터러시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진 현재,
한국언론진흥재단은 교사의 미디어교육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매년 해외 연수를 실시한다.
올해 연수는 2025년 6월 14일부터 21일까지 벨기에에서 진행되었다.
이번 연수를 통해 한국 미디어교육의 새로운 해법과 방향성을 확인한
박소현 교사의 연수 참관기를 소개한다.

 

벨기에는 유럽 내에서도 일찍부터 미디어 리터러시를 체계적으로 정착시켜 온 국가로, 다양한 연령층을 대상으로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미디어교육 프로그램과 정책적 지원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번 연수에서는 현장에서 실질적인 미디어교육을 수행하고 있는 기관인 악시옹 메디아 존느(Action Médias Jeunes, 이하 AMJ)와 벨기에 미디어교육의 정책적 토대를 마련하고 지원하는 미디어교육최고위원회(Conseil Supérieur de l’Éducation aux Médias, 이하 CSEM)를 방문해 벨기에의 미디어교육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심도 있게 살펴볼 수 있었다. 이 글에서는 이 두 기관을 탐방하며 새롭게 알게 된 점과 함께, 한국의 미디어교육 현장에 적용 가능한 시사점을 알아보고자 한다.

 

악시옹 메디아 존느(AMJ) 회의실에서 담당 실무진과 해외 연수 참가 한국 교원들 간의 미팅 모습 (출처: 필자 제공)

 

현장의 힘: 청소년 미디어교육

벨기에 해외 연수 2일 차, 첫 일정은 나무르에 위치한 악시옹 메디아 존느(AMJ) 방문이었다. 미디어교육 코디네이터 클레르 베를라주(Claire Berlage), 실무자 올리비에 포르츠(Olivier Fortz)가 함께 자리해 주요 프로그램을 소개했고, 서로 미디어교육 현황 등을 공유했다.

 

악시옹 메디아 존느(AMJ)는 20년 이상의 전통을 가진 벨기에의 대표적인 미디어교육 기관이다. 주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며, 왈로니브뤼셀연방(Wallonie-Bruxelles Federation)으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고 있다. 이곳의 교육 목표는 단순히 미디어 사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미디어의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균형 있게 인식하고 비판적 사고력을 기르도록 돕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학생들이 미디어를 능동적으로 활용·분석하며 창의적으로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대표적인 활동으로는 워크숍과 방학 캠프가 있다.

 

악시옹 메디아 존느(AMJ)의 워크숍은 아동의 연령대를 고려하여 각기 다른 프로그램으로 제공된다. 기본적으로 만 3~8세는 미디어에 대한 감정 표현과 애니메이션 제작을, 만 9~12세는 비디오 게임 및 영상 제작과 소셜미디어 윤리를 다룬다. 이후 만 13~15세로 넘어가면 저널리즘, 인플루언서 문화, 성별 고정관념 및 AI 기술 분석 등 보다 복합적인 주제를 다루기 시작하고, 만 16~18세가 되면 AI 심화 과정, 디지털 생태학, 정치 커뮤니케이션, 허위정보 구분 등 심도있는 내용을 배우게 된다. 워크숍 프로그램은 연령대별로 구분은 돼 있지만, 아동의 발달 단계 및 상황에 따라 언제든 유연하게 적용이 가능하다. 같은 연령대 내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디지털 격차를 고려한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디지털 환경에서 아동 권리를 존중하고자 하는 기관의 노력이 엿보인다.

 

또한 이곳에서는 학생들의 적극적 참여와 창의성을 촉진하기 위해 영상 제작, 비디오 게임 개발, 만화 및 애니메이션 제작 등 주로 창작 활동 중심으로 구성된 방학 캠프 프로그램도 지원한다. 이 프로그램은 보통 3~5일간 진행되며, 학생들이 비판적 사고를 자연스럽게 익히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이 외에도 매주 금요일마다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에게 미디어 리터러시를 소개하는 라이브 제작 활동과 같은 장기 프로젝트 활동도 운영되고 있다.

 

이처럼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활동 외에도, 악시옹 메디아 존느(AMJ)는 가정과 학교에서 미디어교육을 일상적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부모와 교사를 위한 콘퍼런스를 지원하고, 어른을 위한 SNS 교육 가이드북과 ‘기자가 되어보기’ 활동 자료, 교사를 위한 미디어교육 자료 등도 함께 제공하고 있다. 이 가운데 ‘기자가 되어보기’ 활동은 단순히 뉴스를 제작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떤 주제를 선정하고 또 어떤 주제를 배제할 것인가?’와 같은 질문을 던짐으로써 학생들이 미디어 생산 과정의 책임과 영향력에 대해 성찰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이었다.

 

학생들이 매주 라이브를 촬영하는 스튜디오 (출처: 필자 제공)
 
벨기에 미디어교육의 체계

3일 차에는 미디어교육최고위원회(CSEM)에 방문해 벨기에 미디어교육의 간략한 역사와 현황, 장애물과 이에 대한 대안, 지향점 등에 대해 다양한 논의를 나누었다. 이날은 CSEM 소속 미디어교육 총괄 디렉터이자 벨기에 왈로니브뤼셀연방 미디어교육 석사과정 신설에 주요 역할을 한 파트릭 베르니에(Patrick Verniers), 전직 프랑스어 교사 출신인 세바스티앵 그로(Sébastien Grau), 그리고 역시 중학교 교사 출신인 다미앵 아엔쿠르(Damien Haenecour)와 함께 하였다.

 

CSEM은 벨기에 미디어교육의 정책 수립 및 지원을 총괄하는 핵심 기관이다. 벨기에 미디어교육의 역사는 1980년대부터 시작되었는데, 당시 교사와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미디어교육의 필요성이 인식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1995년, 정부 차원에서 미디어교육의 중요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면서 미디어교육위원회(CEM)가 설립되었고, 2008년 벨기에 연방의회가 법적 근거를 마련하여 현재의 미디어교육최고위원회(CSEM)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통해 CSEM은 현재 벨기에 미디어교육의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발전을 이끌고 있다.

 

CSEM의 미디어교육은 신문, 영화, 잡지, 디지털 미디어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인공지능(AI) 기술까지 모든 미디어를 포괄하는 넓은 개념을 기반으로 한다. 또한 CSEM은 실제 학생들이 미디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한 현황을 정기적으로 조사해 정책과 프로그램에 반영하고, 이를 기반으로 현장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악시옹 메디아 존느(AMJ) 실무진과 함께 (출처: 필자 제공)

 

CSEM의 대표적인 학교 지원 프로그램으로는 ‘교실 속 기자(Journalists in class)’가 있다. 이 프로그램은 매년 약 450명의 언론인이 학교를 방문해 학생들과 함께 다양한 미디어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교사들은 언론인의 전문 분야가 명시된 자료를 통해 적합한 전문가를 선택할 수 있다. 언론인은 교사의 역할을 보완하는 형태로 수업에 참여하며 학생들은 전문적인 관점에서 미디어의 특성을 배우고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외에도 CSEM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확산을 위해 미디어교육 주간(Media Education Week)을 운영하고 있다. 매년 한 주간을 미디어교육에 집중하는 기간으로 설정해 학교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신청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연간 약 4,000명의 학생과 교사가 워크숍, 영화 토론, 콘퍼런스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미디어교육에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벨기에 프랑스어 공동체(CFWB) 내에 위치한 CSEM 전경 (출처: 필자 제공)

 

또한 CSEM은 지속 가능한 미디어교육의 실현을 목표로 모든 교과목 내에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요소를 통합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파트릭 베르니에는 이러한 시스템을 ‘빅맥 햄버거’에 빗대어 설명해 주었는데, 정부의 정책적 압박뿐만 아니라 교사 양성, 프로그램의 질, 충분한 시간 등 모든 요소가 갖춰져야 미디어교육이 진정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의미였다. 너무나 적절한 비유였기에 듣고 있던 우리는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미디어교육최고위원회(CSEM) 관계자들과 함께 (출처: 필자 제공)
 
한국 교육에 시사하는 점

이번 벨기에 연수를 통해 현장과 정책 두 측면이 균형 있게 발전된 미디어교육 모델을 살펴보며, 한국 미디어교육의 발전 방향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벨기에 사례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미디어교육은 단순한 기술 습득을 넘어 비판적 사고력과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접근을 요구한다. 따라서 보다 나은 미디어교육을 위해서는 학생뿐 아니라 교사들에 대한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며, 이를 위한 명확하고 체계적인 정책적 접근 또한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국내의 연구공동체와 지역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모든 교과에서 미디어 리터러시를 자연스럽게 연계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급변하는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우리 학생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한국에서도 여러 이해관계자가 협력해 미디어교육 공동체를 구축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CSEM에서의 미팅 모습 (출처: 필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