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뚤어진 사회의 거울, 세계 첫 SAT 시험취소

2013. 5. 7. 14:00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지난 4일로 예정되었던 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인 SAT가 우리나라에서만 시험 나흘 전에 전격 취소되어 그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져가고 있습니다. 시험 주관한 비영리기관 칼리지보드는 한국에서 치러질 시험 내용이 이미 너무 많이 유출되어 시험을 취소한다고 그 이유를 밝혔죠. 일부 업체와 공모자들의 불법적인 문제 유출과 부도덕한 응시생 부모들의 컨닝 때문에 성실히 준비한 수험생들까지 피해를 보게 되었습니다. 세계 최초로 시험 일정 자체를 취소한 전례를 남기게 된 이번 SAT 사태를 살펴볼게요.




[출처 – 서울신문]




국격 추락, 해외 입시 문제 유출 백태


SAT는 우리나라 수능 격으로 공정한 평가를 위해 전 세계에서 같은 날 동시에 시행됩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SAT를 보지 않아도 미국 대학에 입학할 수 있긴 하지만 주립대학 이상의 이른바 명문대는 입학사정관이 SAT 성적을 참고하기 때문입니다. SAT는 문제은행 식이라 기출문제를 확보하기 위해 우리나라 학원들은 혈안이 되어 있지요. 그러다 보니 문제 확보를 위해 강사들이 SAT를 직접 응시하는 건 물론이고 전 세계가 같은 날 시험을 본다는 점을 악용해 동남아시아에서 시험을 본 후 시차를 이용해 한국으로 답을 빼돌리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문제를 빼돌리거나 스마트폰을 이용해 대리 시험까지 이뤄지고 있었다는 의혹도 많지요.



[출처 - 서울신문]



칼리지보드는 시험센터에 보낸 질의응답 형식의 이메일에서 “SAT 주관기관인 미국교육평가원(ETS)은 5, 6월 한국에서 출제될 수 있는 SAT 시험 문제의 일부가 유출된 것을 확인했다”며 “많은 시험 응시자들이 이미 시험 문제를 접했기 때문에 한국 시험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후략) 


국격 떨어뜨린 한국 입시 자화상 (이투데이, 2013-05-03)




이런 와중에 이번 사건이 터진 겁니다. 지난 2월 검찰의 압수수색으로 강남 어학원들이 시험 문제를 빼돌려 한국학생들에게 건넸다는 혐의를 받았습니다. 압수한 SAT 시험문제를 공식 감정한 결과 문제가 일부 유출된 것이 사실로 드러났지요. 결국, 이 때문에 한국에서의 SAT가 시험일 직전에 취소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문제 유출로 인한 시험 취소는 한국에서 SAT 시험이 치러진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고 세계적으로도 처음 있는 일입니다. 




문제 유출, 10년 전에도 있었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문제 유출 사태가 SAT 뿐만이 아니라는 겁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미국 일반대학원 입학자격시험인 GRE와 영어구사능력 시험인 TOEFL에서도 부정행위가 많이 발생했습니다.



그 때문에 SAT 시험 취소처럼 토플은 시험 방식이 두 차례나 변경되었으며, GRE는 한국 학생들이 인터넷에 문제를 유출했다가 적발되어 시험횟수가 축소되기도 했습니다. SAT도 전체 시험 취소는 이번이 처음이지만 2006년에는 문제지 사전유출로 한 학교가 공식시험장 자격을 박탈당했고 2007년에는 기출문제 유포 때문에 한국 응시생 900명의 성적이 무효 처리되는 사태도 있었습니다.




[출처 – 서울신문]



2010년 1월 SAT 시험장에서 교묘한 수법으로 시험지를 유출한 일당 네 명이 붙잡혔다. 당시 붙잡힌 주범 장모(36)씨는 서울 강남의 유명 SAT학원 강사였다. 이들은 시험지의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유출하기 위해 각각 4부의 시험지 일부분을 자르는 수법을 이용했다.(후략) 


‘나라 망신' 문제 유출, 10년 전에도 있었다! (이투데이, 2013-05-03)




나만 잘 되면 된다, 돈이면 다 된다가 만들어낸 추태


5월 시험 응시생들은 응시료를 환불받거나 6월로 예정된 다음 시험에 응시할 수 있지만, 당혹감에 휩싸여 있습니다. 한 번 취소된 이상 두 번 취소되지 말라는 법이 없으며 이렇게 이미지에 한 번 타격을 입은 이상 미국 대학에서 한국인의 SAT 점수를 신뢰하겠느냐는 거죠. 이미 주관 기관인 칼리지보드는 미국 대학들에 이 사실을 통보했기 때문에 이미지 타격은 불가피해 보입니다.



이번 조치로 미국 대학들이 한국 지원자들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 강남구 모 SAT 학원 ㄱ원장(50)은 “바깥에서 보는 한국 학생들의 이미지가 굉장히 실추되는 부끄러운 일”이라며 “이런 일(문제 유출)이 빈번히 일어난다는 자체가 그 나라의 민족성이나 공부하는 학생들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을 부추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 SAT 학원 강사 ㄴ씨(28)도 “평가절하되는 부분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후략) 


“한국인 5월 SAT 취소” 미 대학에 통보 ‘망신’ (경향신문, 2013-05-03)



이 사태의 원인은 나만 그리고 내 자식만 잘되면 된다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돈이면 다 된다는 배금주의가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나온 점수 지상주의가 이 사태를 만들었고요. 미국 대학 진학이 또 하나의 출세 수단이 되면서 어학원들은 어떻게든 기출문제를 빼오려고 혈안이 되었고 학부모들은 이런 학원과 강사들을 족집게라고 추어올리며 막대한 돈을 주고 수강했죠. 이번 사태만 해도 발 빠른 학원들은 해외에서 SAT를 볼 수 있는 패키지 상품을 내놓았으며 숙박료, 응시료 등 수십에서 수백씩하는 이 상품에 학부모들의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는군요.




이처럼 '점수 올리기'에 급급해 반복되는 시험부정의 원인에 대해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그동안 우리나라 학교나 기업이 토익 등 시험 점수 위주로 쉽게 인재를 확보하려 해왔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성공을 위해서라면 편법과 탈법을 쉽게 여기고 '정직'이 오히려 '무능력'으로 여겨지는 것이 한국사회의 현실"이라며 "나만 살자, 이기고 보자는 인식에서 벗어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첫 걸음"이라고 말했다. (후략)


"SAT 취소 사유, 미국 대학에 통보" (한국일보, 2013-05-04)




[출처 – 서울신문]




애꿎은 성실한 수험생들만 피해를 본 이번 사태처럼 나만 살고 보자는 이기심과 돈이면 다 된다는 천박한 배금주의는 한두 명 성공하는 듯 보이다가 결국에는 그 사회 전체에 해악을 끼칩니다. 돈에 눈먼 일부 학원과 수단 방법 안 가리고 내 자식만 높은 점수 받겠다는 일부 뻔뻔한 학부모들이 우리나라의 국격을 깎아 먹고 한국 학생 전부를 거짓말쟁이로 낙인찍히게 합니다. 이번 문제 유출 사태의 관련자들을 엄벌하고 사람을 키운다는 교육의 본질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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