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5. 8. 09:53ㆍ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글쓰기는 왜 어려운 걸까?
매달 3, 4권의 책을 읽고 그 남짓한 서평을 쓴 것도 몇 해째 입니다. 5년을 넘겼으니 이제 생활의 일부분이라고 봐도 무방하겠네요. 일상이 독서고 쉬는 날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하얀 백지 대신, 하얀 모니터 위에다 타이핑을 하죠. 서평을 쓰는 겁니다. 일요일은 짜장면을 먹는 날이 아니고 서평을 쓰는 날이라고 봐야 하겠죠. 그런데 뭔가를 쓴다는 게 참 어렵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기고문을 쓰기 전 2시간 가까이 모니터만 쳐다보고 있었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세상일이 다 어렵고 힘들지만 글쓰기만큼 어려운 일이 있을까요? 소위 서평 분야의 파워블로거가 된 게 3년째이고, 그간 다양한 리뷰대회에서 상을 받은 이력이 있는 저지만 글을 쓰기 위해 모니터 앞에만 앉으면 이상하게 머리는 백지상태가 되고, 가슴은 답답해집니다. 왜 이런 걸까요?
그래서 전 가끔 글쓰기 책을 일부러 찾아 읽어봅니다. 이 울렁증을 극복할 묘안을 찾기 위해서지요. 그런데 책을 열어볼 때마다 명쾌한 답보다는 울렁증 동지들과 만나는 기이한 경험을 했습니다. 알고 보니 글쓰기 책의 저자들도 모두 저랑 비슷한 증상을 겪고 있었던 것이죠.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라고 다를까요? <노인과 바다> <킬리만자로의 눈> 등의 작품으로 1954년도 노벨문학상을 받은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말년에 결국 창작의 고통을 호소하며 자책하다 머리에 장총을 겨누고 말았죠. 이제 분명해 졌습니다. 글쓰기는 어렵다. 초보인 당신에게나 프로인 작가에게나, 모두! 그러니 이젠 글쓰기로 자신을 책망하진 맙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꾸준히 읽고 쉼 없이 써보는 것입니다. 본분에 충실한 거죠. 정답을 알고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까? 답도 모르면서 한평생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죠. 글쓰기도 그와 같다고 생각해요. 어떤 글을 쓸 수 있을까? 글을 쓰기 전까진 아무도 모릅니다. 일단 여정을 시작해 봐야 뭔가 보이기 시작하죠.
그 여정에는 동반자가 필요해요. 우리와 같은 울렁증의 동료들이자 동시에 글쓰기의 달인이라고 봐도 무방한 두 명의 저자를 소개하고, 그들의 글쓰기 책에서 서평 쓰기의 노하우를 알아볼까 합니다. 그 주인공은 글쓰기 강사이자 <첫 문장의 두려움을 없애라>의 저자, 김민영과 1994년 이후 아홉 번째 독서일기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2>를 출간한 소설가 겸 서평가 장정일입니다.
<첫 문장의 두려움을 없애라>
삼인행 필유아사 (三人行 必有我師)라 합니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그 안에 내 스승이 있다, 란 뜻이죠. 서평 강사 김민영은 제게 그런 저자입니다. 블로그 이웃이자 파워블로거 동료이기도 한 김민영은 그간의 제 글쓰기에 여러모로 도움을 주신 분입니다. 몇 해 전 블로그에 올린 서평 한 편에 대해, 첨삭지도를 자청해준 인연으로 그를 알게 된 후, 자주 그의 블로그 글들을 읽어왔었죠.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글쓰기 입문과 서평 글쓰기를 다년간 강의하고 있는 인기 강사이자 독서 교육전문회사의 이사이기도 합니다. 그가 자발적으로 첨삭 지도를 해 준 것 자체가 무척 기쁘더군요. 그가 올리는 서평들은 깔끔하고 명쾌한 걸로 유명합니다. 또, 가끔 블로그에 게재하는 글쓰기의 즐거움과 괴로움을 토로하는 짧은 단상들은 무척 인상적이더군요.
그런 김민영이 얼마 전 자신의 글쓰기 노하우와 경험을 다룬 책 <첫 문장의 두려움을 없애라>를 출간했습니다. 이 책은 여느 글쓰기 입문서와는 집필의 방향이 좀 다릅니다. 독자와 저자의 거리를 좁히고, 마치 곁에서 선생님의 직접 지도를 받는 듯한 친근함이 돋보입니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강의를 들었던 많은 사람이 왜 글쓰기를 두려워하는지 분석합니다. 그의 설명은 명쾌하더군요. 처음부터 프로처럼 잘 쓰려고 하므로 첫 문장 자체를 시작할 수가 없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글을 전혀 써보지 않던 사람들이 작가처럼 쓰려고 하니 글이 쉽게 나오겠습니까? 저자는 나름의 처방전을 제시합니다. 그간 글쓰기를 시도할 때마다 우리를 포기하게 만들었던, 머릿속 빨간펜(검열자)를 잊고, 일상의 평범한 소재를 이용해 일단 글을 시작해 보라고 안내합니다.
저자 김민영의 독특한 이력도 글쓰기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큰 용기와 감동을 주죠. 이 책은 체계적인 글쓰기 입문서지만, 동시에 블로그 글을 보는 듯이 편안하고 저자의 경험담이 진솔하게 녹아있어 읽어가는 곳곳에 눈길을 두게 합니다. 강의가 없던 날, 목표한 글쓰기를 새벽 2시에야 끝낸 이후 밀려오는 알길 없는 행복감을 토로하는 저자는 `결국 나는 글을 써야 행복한 사람이구나!' 라고 고백합니다.
저자는 잘 다니던 증권사를 사직하고 글 쓰는 사람이 돼 보겠단 꿈을 이루고자 인생에 승부수를 던지죠. 오직 자신의 글을 쓰겠다는 일념 하나로 탄탄한 직장을 박차고 나와 방송작가, 영화평론가, 지방지 기자, 잡지사 기자를 떠돌았습니다. 그 뒤 `자발적 가난'이 뒤따릅니다. 그러나 이젠 독서교육 전문회사의 이사와 글쓰기 파워블로거로 글쓰기 전문강사로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책 읽고 글 쓰는 시간을 좋아하고 사랑한다고 그는 말합니다. 글을 잘 쓰고 싶으세요? 저자 김민영은 글을 쓰기 위해 인생을 걸었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걸 수 있나요?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2>
저에게 1990년대는 인생의 전환기였습니다. 대학입학, 군입대, 군제대, 복학 굵직한 인생의 사건들이 있어서 기도 하지만, 제 삶 자체의 근본적 패러다임이 바뀌었기 때문이죠. 1995년을 기점으로 제 삶의 시간표에는 `책 읽는 시간'이 자리 잡았습니다. 그 시절 숱하게 읽은 책 가운데 <장정일의 독서일기>가 있었죠.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하는지, 읽은 책은 어떻게 후기를 남겨야 하는지, 몰랐던 초보 독자에게 장정일이 1994년 처음으로 펴내기 시작한 독서일기 시리즈는 좋은 길잡이가 되어 주었죠.
까까머리 독서가요, 서평가인 장정일, <햄버거에 대한 명상>이란 시집을 펴낸 시인이자 훗날 소설가로 데뷔한 작가. 그가 그 시절 일기처럼 써내려간 서평들의 충실성과 형식의 파격에 놀라움이 컸습니다. 어느 날의 독서일기는 그날의 날씨와 기분, 그날 들은 재즈음악과 서재 정리라는 단출한 일상으로 끝을 맺는 경우도 있었죠. 그가 1994년 독서일기의 서문에 남겼던 문장은 지금도 제 기억에 남아 독서 인생의 이상이요 로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어린 시절의 내 꿈은 이런 것이었다. 동사무소의 하급 공무원이나 하면서 아침 아홉 시에 출근하고 오후 다섯 시에 퇴근하여 집에 돌아와 발 씻고 침대에 드러누워 새벽 두 시까지 책을 읽는 것. 누가 이것을 소박한 꿈이라고 조롱할 수 있으랴. 결혼은 물론 아이를 낳아 기를 생각도 없이, 다만 딱딱한 침대 옆자리에 책을 쌓아놓고 원 없이 읽는다는 건 원대한 꿈이다. "
1994년 장정일의 독서일기 서문 中
저자는 물론 저 또한 그런 꿈을 꾸고 살았지만, 결국 그 꿈은 이루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 이상에 가까이 다가갈 수는 있었죠. 장정일은 얼마 전 아홉 번째 독서일기 시리즈를 냈고, 하급 공무원이 아닌 소설가요, 대학의 문학 교수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의 독서일기를 탐독하던 독자는 결혼은 물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원 없이 책을 읽진 못합니다. 밥벌이의 고달픔을 잊을 정도로 느리고 꾸준히 책을 읽으며 살아가는 것에 만족할 뿐이죠.
아홉 번째 독서일기인 <빌린 책 산책 버린 책 2>의 서문에서 장정일은 새로운 독서론을 주창합니다. 쾌락 독서론이 아닌, 사회적 독서론이죠. 그러면서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단순히 무지한 게 아니라 아예 나쁜 시민이다"고 언급합니다. 독서를 하면 할수록 도통하는 게 아닌 다시 현실로 돌아오고 말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죠. 놀랍게도 이런 경향은 정확히 지금의 제 독서 방향과 일치합니다. 독서일기의 스승인 장정일과 닮아가고 있다는 것은 분명 기분 좋은 일이지만, 여전히 해를 거듭할수록 빛이 나고 날카로워지는 그의 서평은 제 글쓰기의 부족함을 비추어주는 거울 같습니다.
"글쓰기, 열정과 꾸준함의 기적"
이 글에선 두 명의 저자, 두 권의 저서, 이들의 삶과 책을 통해 서평 쓰기의 진수와 기법을 배우고자 했습니다. 그들에게서 제가 뽑아낼 수 있는 두 개의 단어는 바로 `열정'과 `꾸준함'입니다. 김민영은 글쓰기의 열정을 가슴속에 품고 살아가는 저자였습니다. 장정일은 아홉 번째 독서일기를 세상에 내놓으며 그 꾸준한 독서력을 과시합니다. 그들은 저자이자, 강사요, 독자이자, 서평가입니다. 그들의 글쓰기는 소박한 책 읽기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서평 쓰기를 통해 동시에 탄탄한 문장력을 단련시켜 왔습니다. 그들은 글쓰기의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일까요? 물론 재능이 없다고 할 순 없겠지요. 하지만 그것보단 그들의 열정과 꾸준함이 보여주는 미덕이 더 가치 있어 보입니다.
제가 태어나서 처음 서평이랍시고 무언가를 써 본 건 대학 3학년이 되던 무렵입니다. 인생 가운데 책을 읽는 귀중한 시간을 갖게 된 것도 그 시절입니다. 그 이후, 틈나는 대로 읽었고 또 꾸준히 서평 쓰기를 시도했습니다. 세상에는 독해력이 남다르고, 글쓰기에 탁월한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주위를 조금만 둘러보아도 그런 사람들은 셀 수 없이 많죠. 최근 어떤 책에서 한 화가의 고백 담을 읽었습니다. 그는 이십대 때 앞으로 뭘 해야 할까, 자신에겐 재능이란 게 있는 걸까를 두고 고민하느라 시간을 허비했다 합니다. 나이를 먹고 지금 그는 더는 재능에 대해 생각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더군요.
" 나의 가장 큰 재능은 어떤 일이 있어도 그림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두 시간 째 모니터만 바라보던 시간을 지나 어느덧 마지막 단락에 이르렀습니다. 이 기고문이 어떤 방향으로 쓰일지 전 몰랐죠. 결국, 이런 모습을 하게 되는군요. 글쓰기는 어렵고 힘이 드는 일입니다. 거기에 비하면, 책 읽기는 참 행복한 시간입니다. 하지만 고통 속에 쓰여진 글 한 편은 기쁨을 선물합니다. 그것이 독서와 서평쓰기의 선순환 원리입니다. 글쓰기는 기복이 심한 일입니다.
아르헨티나의 세계적 독서가이자 작가인 알베르토 망구엘은 젊은 시절 행복한 책 읽기에 빠져 소설가의 꿈을 포기합니다. 하지만 행복한 책 읽기는 훗날 그를 베스트셀러 저자로 만들어주죠.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글이 쓰이지 않을 때마다 달리기를 했고, 이제는 중급 마라토너가 되었습니다. 언제나 수많은 독자를 놀라게 하는 흥미로운 소설을 집필할 수 있는 비밀로 자신의 달리기를 말하더군요. 모두에게 글쓰기는 어렵지만, 극복의 방법은 분명 있습니다. 서평 쓰기의 달인들에게 배운 '열정'과 '꾸준함'을 힌트 삼아 열정적으로 읽고 꾸준히 써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글쓰기는 평범한 일상이 선물하는 기적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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