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이 전쟁인 직장인들을 책으로 구하라!

2013.06.10 14:33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대한민국의 모든 계약직과 운이 좋아 정직원은 됐지만 하루하루 전쟁 같은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슬픈 정직원들의 애환을 그린 드라마 <직장의 신>이 얼마전까지 큰 인기를 끌었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캐릭터는 바로 슈퍼갑 계약직 미스 김. 주어진 업무시간은 단 1초도 넘기지 않으며, 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은 일은 수당 없이는 절대 하지 않고, 회사는 일만하는 곳이므로 일체의 인간관계 또한 맺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 계약직. 모두가 정직원이 되기만을 바라고 있을 때도 미스 김은 당당하게 정해진 일과 돈만 받으며 철저하게 일과 삶을 구분한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직장의 신’의 한 장면, 출처 : 서울신문>


미스 김의 이러한 캐릭터는 그동안 계약직이지만 감히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거침없이 쏟아내며 직장인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낸 것이다. 정직원이든 계약직이든 매일같이 출퇴근 전쟁을 벌여야하고, 매일같이 상사의 잔소리와 훈계를 견뎌야하며, 바른 소리를 내기보다는 회사에 맞는 목소리를 내야하고, 가끔은 치사하고 더러워 때려치우고 싶지만 나만 바라보고 있는 처자식 생각에 술 한잔으로 위로하는 그런 우리 모두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말이다. 미스 김은 그런 부조리 속에서 코믹하고도 후련하게 직장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기에 수많은 직장인들의 공감을 얻었고 그 캐릭터가 사랑받은 것이다.

 

<직장의 신> 미스 김처럼 만능은 아니지만 여기 직장인들, 특히 취업시장에서 매일같이 상처받는 구직자들을 위해 속 시원한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이 또 한명 있다. 바로 출판계의 미스 김, 바버라 에런라이크이다. 《긍정의 배신》에서 긍정의 산업화와 긍정을 통해 사람들을 착취하는 사회의 모습을 고발하며 99%를 대변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한 그녀는 이어 출간된 《노동의 배신》에서 뼈 빠지게 일해도 여전히 워킹푸어로 밖에 남을 수 없는 블루컬러의 현실을 몸소 체험을 통해 보여주며 전세계적인 작가의 대열에 올라섰다. 그런 그녀가 배신 3부작의 마지막이라 할 수 있는 주제로 고른 것이 바로 화이트칼라의 세계를 다룬 《희망의 배신》이었다. 몸 바쳐 충성하고 책상 앞에 앉아 죽도록 일하지만 결국 버려지는  화이트칼라의 실상을 담고 있는 것이 바로 오늘 소개하려는 책 《희망의 배신》이다.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3부작, 왼족부터《긍정의 배신》,《노동의 배신》, 《희망의 배신》, 출처 : yes 24>



7개월 가까이 구직 활동을 하고, 이미지 변신을 꾀하고, 비싼 돈을 들여 이력서를 거듭 수정하고, 4개 도시에서 네트워킹을 위해 애쓴 결과 내게는 Aflac과 메리케이, 2개의 일자리 제안이 들어왔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규정한 '일자리'의 기준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었다. 급료도, 복지 혜택도, 작업 공간도 제공되지 않았다.  _ 269쪽 중에서 



전작 《노동의 배신》에서 웨이트리스, 마트 점원, 청소부 등 직접 노동의 현장에 위장 취업해 그들과 똑같은 조건으로 살아보고 그들의 실상을 고발한 저자는 이번에도 역시 실제 취업시장에 뛰어들어 구직활동을 펼친다. 이번에는 고등교육 이상의, 사무직인, 몸이 아닌 머리를 써서 일을 한다는 나름 고급인력이라 불린다는 화이트칼라 시장을 공략했다. 과연 여기는 블루칼라 노동계보다 나은지, 꿈과 비전을 찾아간 이들이 과연 그곳에서 제대로 실현하며 일하고 있는지에 대한 답을 찾아보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목표였다. 


시작부터 쉽지는 않았다. 저자는 가상의 이력서를 만들고(기본적으로는 실제 해 온 일이지만 저자 본인을 알아볼 수 없게 만든 이력서로), 리쿠르팅 회사에 들어가 이력서를 등록하지만 그 누구에도 답변을 받지 못한다. 어쩔 수 없이 커리어코치라 불리는 사람들을 찾아가 수십 만원의 돈을 내고 강연을 듣고, 적성검사를 받고, 자기소개서를 쓰는 법에 대해 배우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그녀를 찾지 않는다. 더욱더 밝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이 되라고 강요만 당할 뿐 그 어느 누구도 그녀의 진짜 모습에 대해서는 궁금해 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그녀만의 언어로 채워졌던 이력서는 열정, 긍정, 비전 등의 기업형 언어로 바뀌어가고,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쌓아뒀던 통장 잔고는 각종 취업 관련 세미나 참가비로 줄어만 간다. 네트워킹이 중요하다는 말에 이곳저곳에서 벌어지는 모임에 쫓아다니지만 네트워크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대부분의 구직자인 모임 속에서 패배감과 좌절의 쓴 맛만을 엿볼 뿐이었다.  








결국 저자는 취업에 실패한다. 회사에 들어가 그 안에서 벌어지는 착취의 현장을 보여주길 바랐지만, 사실 그녀의 취업 실패 일기 그 자체가 대부분의 화이트칼라 구직자들이 경험했고 직장인들의 현재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이트칼라들은 원대한 꿈을 갖고 취업시장에 뛰어들지만, 종이 쪼가리에 적힌 숫자들로 평가받고, 그들이 원하는 언어로 말해야하고, '나'는 버리고 오로지 '조직'만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철저하게 이용만 당하고 씁쓸하게 버려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 작은 취업문에 골인을 한다 해도 더 심해지면 심해질 뿐 결코 적어지거나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저자는 자신이 경험한 화이트칼라의 세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블루칼라 노동자들은 몸을 써서 일하다 부상을 입고 녹초가 되지만,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은 꼼짝 않고 앉아 있다가 똑같이 고통스러운 결과를 맞는다. 어찌보면 화이트칼라가 되기 위한 보편적 필수 요건인 대학 교육의 요체는 가만히 앉아서 눈을 뜨고 있는 훈련인지도 모른다(206쪽 중에서)"고. 





이 책과 드라마 <직장의 신>의 인기를 연결해 다시 생각해보면 두 가지 모두 그만큼 우리 직장인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직장인들의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크며, 거기서 온 좌절감은 순응으로 변해 그저 하루하루를 묵묵히 버텨내려 하고, 그래서 모두가 부조리를 알면서도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으로 숨죽이며 회사에서 조직의 논리에 맞춰 살아가는 것 말이다. 크게 바뀌는 것은 실현 가능하지도 않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다만 우리들 직장인의 마음을 알아주고, 미스김과 에런 라이크같은 사람들이 대신 속 시원히 풀어주기만 하더라도 우리는 거기서 위로와 공감을 얻으며 힘을 낼 수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직장인들이 이 책을 통해 나처럼 위로받고 힘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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