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그냥 보지 않는’ 사람으로 성장하기

2025. 10. 1. 10:00웹진<미디어리터러시>

 

|박희라(인천국제고등학교 교사)|

 

 

 

인천국제고등학교 학생들은 미디어 재현 프로젝트 수업을 통해
미디어가 만든 인천 영상과 인천의 실제 모습을 직접 비교하며,

지역의 다양한 모습과 미디어가 지역을
재현하는 방식에 대해 깊이 있게 탐구했다.
지역사회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지역의 문제와 가능성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는 계기를
마련한 학습 과정을 따라가 본다.

 

 

마계 인천, 고담 대구, 노잼 도시 대전……. 인터넷에 지역을 검색하면 등장하는 키워드들이다. 지역의 일부 특색에 대한 농담으로 시작한 별명 붙이기는, 점차 인터넷과 미디어를 잠식하며 지역에 대한 편견과 비하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그저 인터넷 내에서 일부 누리꾼들이 하는 이야기 아닌가 싶지만, 실제 현실에서도 “인천에 살고 있다”고 밝히면 돌아오는 반응이 10년 전과는 사뭇 다르다. “바다가 보이냐”를 물었던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인천의 ○○동네에는 정말 무서운 사람들이 많냐”라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인천에 그런 사람들은 많지 않은데, 왜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냐고 물어보면 주로 인터넷 또는 유튜브와 같은 미디어를 통해 마계 인천의 모습을 접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렇다면 미디어 속 우리 지역의 모습은 실제와 어떻게 비슷하고 다를까? 내가 아는 우리 지역의 모습은 과연 미디어 속에 얼마나 담겨 있을까? 이를 탐구하기 위한 미디어 재현 프로젝트 수업을 학생들과 함께 진행해 보았다.

 

‘미디어 재현’이란

 

2022 개정 교육과정으로 인한 국어과 교육과정의 변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미디어 리터러시의 강조이다. 그중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개념은 ‘재현(representation)’이다. 영국의 미디어교육 학자 데이비드 버킹엄(David Buckingham)은 미디어의 재현은 필연적으로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며, “미디어는 우리에게 투명한 세계의 창을 제공하지 않고 매개된 버전을 제공한다”고 말한다. 미디어는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여 주지 않으며 편파적일 수밖에 없으므로, 수용자가 미디어의 재현을 자신의 경험과 비교하여 그 재현이 현실과 얼마나 가까운지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재현의 개념을 바탕으로 버킹엄은 미디어 재현을 학습한다는 것은 미디어가 어떻게 진실을 말하고 주장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며, 선택과 배제를 어떻게 선택하고 그것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특정 사회 집단이나 쟁점 및 세계의 일부를 어떻게 재현하는지, 그 재현이 얼마나 정확한지, 미디어 재현이 수용자의 태도와 신념 및 가치관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히고 있다.

 

2022 개정 국어과 교육과정에서는 ‘매체 의사소통’ 과목의 성취 기준 해설에 ‘재현’을 “현실에 존재하는 대상을 매체를 통하여 다시 나타내는 것으로, 매체가 재현하는 현실은 특정한 관점과 의도에 의해 선택되거나 배제된, 중재된 세상”이라고 제시하고 있다. 이는 미디어의 재현이 선택과 배제 등을 통해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개념임을 드러낸 것이다.

 

 

 
미디어 속 우리 지역의 재현 들여다보기

8차시 프로젝트 수업의 시작에서, 먼저 학생들과 재현의 개념을 이해하고 우리 지역이 미디어에 어떻게 재현되는지를 들여다보았다. 학생들에게 제시한 자료는 인천의 치안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담긴 뉴스 영상과 송도 신도시에 거주하는 연예인 A씨의 화려한 일상이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 영상, 인천광역시가 제작한 지역 홍보 영상이었다.

 

학생들은 재현의 개념을 바탕으로 기존 미디어의 재현이 자신들이 알고 있는 우리 지역의 모습과 다르다고 이야기하였다. 뉴스 영상에서는 인천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만을 선택했으며, 인천시 홍보 영상에서는 웅장하고 멋진 모습만 보여주고 상대적으로 낡고 오래된 건축물은 영상에서 배제되었다는 분석을 제시하며 미디어의 재현 방식을 분석하였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재현의 진실성을 평가하였다. 학생들은 인천을 치안이 좋지 않고 범죄율이 높은 곳으로 재현한 미디어에 대해, 전국의 범죄 발생률과 같은 객관적인 통계 자료를 활용하여 미디어의 재현이 실제와 다름을 증명했다.

 

그런데 눈에 띄는 한 학생이 있었다. ‘가람(가명)’이다. 가람이는 인천 영종도에 살고 있는 학생으로, “거주민의 입장에서 본 인천공항의 모습과 영상 속에서 미화된 인천공항 모습의 차이가 뚜렷하게 보여” 이질감을 느꼈다고 평가하였다. 대부분의 학생이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의 부정적 모습만 강조한 재현을 비판적 이해의 대상으로 삼은 것과 비교하면, 가람이는 지역의 긍정적 모습만 강조한 재현 역시 진실하지 않을 수 있음을 파악하고 이를 비판적으로 이해한 것이다. 또한 버킹엄이 재현을 설명하며 강조한 것과 같이 미디어의 재현을 자신의 경험과 비교하여 진실성을 판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미디어 재현과 관련된 수업에서 기존 미디어의 재현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를 잘 보여준다. 간혹 미디어 재현을 잘못 이해하는 경우, “대상의 부정적 모습만 선택해서 문제인 것 아닌가요? 그러면 대상의 긍정적 모습만 선택하면 되지 않나요?”라고 질문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그러나 미디어 재현의 초점은 ‘대상을 진실하게 드러냈는가’에 있다. 대상의 긍정적 모습만 선택·재현한다고 해도, 이는 이질감 등의 부정적 감정을 불러올 수 있다. 대상의 긍정적 모습만 선택한 재현이 가져오는 문제점까지 이해할 때, 미디어 재현을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재현하고 싶은 우리 지역의 모습은?

기존 미디어의 진실하지 않은 재현을 분석한 학생들은 모둠별로 미디어의 재설계를 계획해 보았다. ‘재설계(redesign)’는 힐러리 쟁크스(Hilary Janks)가 비판적 리터러시의 핵심 개념으로 제시한 것으로, ‘기존의 담론에 대항하거나 그것을 변화시키기 위해 다양한 문화적 위치를 넘나들며 복수의 기호 체계를 이용하는 능력’(Janks, 2020)을 말한다. 기존 미디어의 재현을 들여다본 학생들은 기존의 담론을 변화시키기 위해 자신들이 알고 있는 우리 지역의 모습을 뉴스레터의 형식을 통해 담아내었다.

 

학생들이 미디어 재현 프로젝트 수업에서 직접 만든 뉴스레터 (출처: 필자 제공)

 

학생들이 재현한 우리 지역의 모습은 매우 다양했다. 실제 범죄율을 바탕으로 인천이 위험하지 않은 도시임을 증명하고, 실제 인천에 살아가는 인천 시민들의 일상과 인천의 자그마한 섬마을에 살아가는 주민들의 모습 등 학생들은 뉴스레터를 통해 인천의 다양한 모습을 담아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띈 것은 가람이가 속한 A 모둠의 결과물이었다.

 

가람이는 기존 미디어 재현의 분석을 통해 대상의 긍정적 모습만 선택한 재현이 진실하지 않을 수 있음을 깨달은 뒤, 모둠원들과 재설계의 방향을 설정하는 과정에서 긍정적 모습만 선택되어 재현되는 대상의 부정적 모습을 보여주자고 제안했다. 이는 가람이가 기존 미디어의 재현이 갖는 문제점을 파악한 뒤, 이에 대항할 수 있는 대안적 관점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결과 A 모둠은 ‘송도 신도시의 긍정적 재현 뒤에 숨겨진 환경 문제 재현의 필요성’이라는 주제로 뉴스레터를 제작했다.

 

A 모둠은 먼저 기존 미디어가 송도 신도시의 긍정적 모습만 재현하고 있으나, 송도 신도시에는 갯벌 파괴와 악취 문제 등의 “신도시가 강조하는 글로벌 도시의 이미지와는 괴리가 있는 현실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글로벌 도시’와 같은 긍정적 모습만 선택하고, 환경 문제는 배제하고 있는 기존 미디어가 진실된 재현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후 A 모둠의 학생들은 미디어가 환경 문제를 재현하지 않는 이유는 “미디어가 경제적 이익과 대중의 관심을 우선적으로 고려 하기” 때문이며, “신도시 개발과 관련된 정치적 및 경제적 이해관계가 미디어 보도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기존 미디어의 재현에는 대중의 관심을 고려한 미디어 제작자들의 의도, 신도시의 이미지 악화를 막고자 하는 기관의 의도가 반영되어 있음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존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이해한 것이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왜 송도 신도시의 이면을 보여주고자 한 것일까? A 모둠은 이렇게 밝히고 있다.

 

“미디어는 여러 사람이 언제, 어디서든 쉽게 접할 수 있는 특성이 있다. 이러한 미디어를 통해 송도의 환경 문제가 널리 알려지면, 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전체 사회가 그 심각성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학생들은 기존 담론에 대한 대항과 변화를 위해 이루어지는 재설계의 취지를 이해하고, 더 나은 우리 지역의 모습을 만들기 위해 송도 신도시의 이면이 미디어에 재현되어야 함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는 기존 미디어의 재현을 넘어 자신들이 담고자 하는 우리 지역의 모습을 재현하는 재설계의 과정이 중요함을 보여준다. 학생들은 재설계 과정을 통해 재현의 주체가 되고, 대안적 관점을 제시하는 주체로서 성장한다.

 

학생 활동 모습 (출처: 필자 제공)

 

학생 산출물 (출처: 필자 제공)

 

미디어 재현의 이해를 통해 시민으로 성장하기

8차시의 프로젝트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은 기존의 미디어를 분석하는 것을 넘어 직접 뉴스레터를 만들어 보는 과정을 통해 현장 답사도 다녀오고, 기사를 만들며 배움의 즐거움과 흥미를 느꼈음을 드러냈다. 또한 ‘우리 지역’을 주제로 미디어의 재현을 학습한 과정을 통해 내가 몸담은 지역사회에 애정을 갖게 되었으며, 지역사회에 내재된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를 개선하고자 다짐하는 존재로 성장하게 되었음을 밝혔다. 아래 학생의 성찰일지는 활동을 통해 미디어의 재현과 지역사회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미디어 재현 수업 활동 중인 학생들 (출처: 필자 제공)

 

“마계 인천. (중략) 나는 항상 이 오명을 내심 원망하며 억울함을 느꼈다. 어느덧 그 오명에 대해서도 잊어갈 때쯤, 나는 미디어에 대한 수업을 듣게 됐다. 미디어는 세상을 비추는 창이다. 그러나 말 그대로 ‘창’일 뿐이다. 그 크기와 유리의 재질 및 색깔은 창을 만드는 사람의 의도에 의해 결정된다. 제작자가 파란 유리를 사용하면 우리는 파란 세상을 보고, 반투명한 유리를 사용하면 뿌연 세상을 본다. 미디어도 이와 마찬가지다. 미디어의 재현은 현실을 보여주기는 하나 의도에 적합하게 가공한 뒤, 효과적이고 극적이게 연출한다. 미디어의 제작자는 많은 사람에게 보일수록, 조회 수가 높을수록 이득을 본다. 나의 소중한 고향, 인천은 미디어의 상업성으로 희생당한 피해자였다.”

 

이 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미디어를 ‘그냥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미디어에 재현된 모습이 진실한지 고찰하고, 내가 아는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주체로서 성장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마무리한 수업이었다. 미디어 재현의 이해를 통해 자신들이 살아가는 진짜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수많은 주체의 등장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