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와 세계 해석하는 시민적 능력 민주주의 및 시민성 함양을 위한 실천적 모델의 필요성

2026. 1. 15. 10:00웹진<미디어리터러시>

김경희(한림대학교 미디어스쿨 교수) ㅣ

 

미디어 리터러시의 중요성에 대해 공감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의 미디어 리터러시 정책은
아직 제도화되지 못하고 있다. 시민들의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은 살고 있는 지역이나 
교육 여건에 따라 차이가
있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격차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본다.

 

 

오늘날의 미디어는 단순한 정보 전달 도구가 아니라 시민의 사고와 판단, 그리고 사회적 관계를 매개하는 의사소통 인프라이자 민주주의의 기반으로 작동하고 있다. 정치적 의사소통, 사회적 참여, 일상의 관계 형성까지 모든 사회적 행위가 미디어를 통해 이뤄지는 현실에서, 미디어를 이해하고 비판하며 활용하는 능력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시민으로서의 기본 역량이 되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의 미디어 리터러시 정책은 여전히 개인 역량 중심의 접근에 머물러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개인이 스스로 쌓아야 할 능력으로 인식될 뿐, 국가의 책무로 제도화되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시민들의 미디어 리터러시 수준은 지역이나 교육 여건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새로운 기술의 등장과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그 격차는 점점 더 커지는 상황이다. 그나마 정부 차원에서 진행되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정보 판별’이나 ‘콘텐츠 생산’의 기능적 훈련에 치우쳐 미디어를 둘러싼 사회 구조적 맥락과 공적 가치 문제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미디어 리터러시 정책은 단순한 ‘기능 교육’을 넘어, 공공 정책 차원에서 재정립될 필요가 있다.

 

나아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최종적인 목표는 ‘시민이 사회정의를 보는 눈을 갖도록 하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이는 허위정보 판별 능력을 넘어, 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해석하고 타인과 연대하며, 공공선의 방향에서 사회를 재구성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과정이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사회 구조의 불평등과 권력관계를 비판적으로 읽어내는 시민적 감수성의 형성 과정이며, 결국 이는 민주주의의 지속 가능성을 지탱하는 핵심적인 시민 역량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언론학적 관점에서 본 미디어 리터러시의 본질

언론학은 미디어를 단순한 정보 전달의 기술적 장치로 보지 않는다. 미디어는 사회 구성원들이 현실을 해석하고, 의미를 교환하며, 공공의 문제를 논의하는 사회적 의미 생산의 장, 즉 공론장(public sphere)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미디어 리터러시 역시 공론장에서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민주적으로 소통하는 시민적 실천 능력으로 정의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미디어 리터러시는 비판적 이해→창의적 생산→사회적 소통→책임과 권리로 이어지는 통합적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개인의 정보 접근이나 활용 수준을 넘어, 미디어를 통해 사회와 관계를 맺고 공공적 의미를 창출하는 일련의 시민적 행위 과정이다. ‘미디어를 읽고 쓰는 능력’은 결국 사회 속에서 타인과 함께 세계를 이해하고 재구성하는 민주적 소통 역량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이러한 미디어 리터러시의 확장은 매체 활용 능력 이상의 것으로, 사회 현실을 성찰하고 의미를 재구성하는 비판적 사고의 과정을 전제한다.

 

[그림 1] 2024년 정부가 발표한 미디어 역량교육 지원전략 개념도 (출처: 문화체육관광부 ‘미디어 역량교육 지원전략’ 보도자료)
 

‘비판적 사고’는 언론학의 핵심적 토대이다. 언론학은 비판적 사고를 통해 사회적 담론을 성찰하고, 공론장을 유지하는 조건을 탐구한다. 이 지점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비판의 의미다. 비판은 특정 권력이나 제도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이 속한 사회와 담론 구조를 성찰하는 실천적 사유의 과정이다. 다시 말해, 미디어 리터러시는 자신의 관점에 대한 성찰로부터 시작된다. 이러한 성찰은 미디어 콘텐츠를 단순히 옳고 그름으로 평가하는 것을 넘어 어떤 관점이 어떤 맥락에서 형성되었는지를 이해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시민이 미디어를 통해 자신과 타인의 시선을 조율하는 능력을 기를 때 비로소 공론장이 건강하게 작동할 수 있다.

 

결국 미디어 리터러시의 본질은 ‘정보를 읽는 기술’이 아니라, 사회와 세계를 해석하는 시민적 능력이며 그 기반에는 비판과 성찰, 참여와 연대의 윤리가 자리한다. 이러한 철학이 정책에 반영될 때, 미디어교육은 교육 현장의 과목을 넘어 민주주의의 지속 가능성을 지탱하는 사회적 제도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미디어 리터러시 정책의 현황과 구조적 한계

한국의 미디어 리터러시 정책은 2000년대 중반부터 여러 부처가 개별 사업 형태로 추진해 왔으며, 통합적 운영을 위해 2020년 부처 간 협력 논의를 시작해 종합적인 ‘디지털 미디어 소통역량 강화 종합계획’을 마련했고, 2024년 3월에는 4개 부처가 공동으로 ‘미디어역량 교육 지원 전략’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러한 발표는 여전히 형식적 통합에 그치고 있으며, 현재도 교육부·문화체육관광부·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이 각자의 영역에서 독립적으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운영하고 있다. 각 부처는 학교 교육, 언론 산업, 방송 콘텐츠, 디지털 기술 교육 등 각기 다른 영역을 담당하면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이들 정책이 통합된 거버넌스 체계 아래 조정되지 못하면서 중복 투자와 비효율적 분절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

 

교육과정의 경우 다행히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미디어 리터러시 요소가 포함되어 초·중·고 전 교과에서 다루어지도록 범교과적 편성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실제 학교 현장에서는 교사의 역량 부족, 평가 체계의 부재, 정책 일관성 미흡 등으로 인해 실질적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교사들은 미디어교육을 담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교사 연수 프로그램 또한 체계적으로 지원되지 않아 교육 현장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실정이다. 또 정책의 효과를 검증할 평가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추진되는 다양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프로그램은 개별 기관 단위로 산발적으로 이루어져, 그 효과가 사회 전반의 미디어 리터러시 수준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를 검증할 수 있는 정량적·정성적 평가 지표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에 따라 정책이 일회성 사업으로 반복되고, 축적된 경험이 제도화되지 못하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미디어 리터러시 정책이 지향하는 ‘비판적 이해’의 개념이 사회적으로 오해받고 있다는 점이다.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교육이 종종 ‘정부나 언론에 대한 비판 교육’으로 왜곡되어 받아들여지면서, 공공 정책의 영역에서 ‘비판’이 불온하거나 정치적 행위로 해석되는 문화적 저항이 존재한다. 이로 인해 미디어 리터러시의 핵심 가치인 비판적 성찰과 공적 담론의 확장이 정책 설계 단계부터 위축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의 미디어 리터러시 정책은 개인 역량에 초점을 맞춘 한정된 접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미디어를 둘러싼 사회적 구조와 권력관계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채, 미디어 리터러시를 개인의 기술적 문제로 환원시키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또 정책의 설계와 실행 과정에서 사회적 맥락과 공공성의 인식이 부족하여, 미디어 리터러시가 민주적 시민성을 함양하는 공적 교육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나아가 이러한 인식의 한계는 국가의 체계적 지원과 거버넌스 구축의 지연으로 이어지면서, 정책의 지속성과 책임성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평생 학습 체계로 제도화해야

미디어 리터러시는 민주주의 사회가 유지되기 위한 핵심 시민 역량으로, 정보 해독 능력에서 더 나아가 사회적 참여와 공론장의 복원을 지향해야 한다. 따라서 미디어 리터러시 정책은 시민이 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사회문제를 공적으로 성찰할 수 있도록 돕는 하나의 새로운 방향, 즉 ‘공론적 시민성’의 제도적 구현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공론적 시민성’은 필자가 제안하는 개념으로, 미디어를 매개로 타인의 경험과 관점을 이해하고, 사회의 불평등과 차별, 혐오의 구조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며, 공공의 선을 추구하는 시민적 실천을 의미한다. 이러한 공공성을 기반으로 한 미디어교육은 시민의 참여, 권리, 책임을 통합하는 교육이어야 하며, 이는 곧 민주주의를 유지·확장시키는 공적 제도이자 문화적 인프라로 기능해야 한다.

 

[그림 2] 미디어교육의 5대 원칙 (출처: 문화체육관광부 ‘미디어 역량교육 지원전략’ 보도자료)

 

이러한 비전은 프랑스의 끌레미(CLEMI) 모델에서 잘 드러난다. 프랑스는 1980년대부터 미디어교육을 국가 교육정책의 핵심으로 삼아, 모든 교과 과정 속에 통합된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미디어교육은 모든 교사가 자신의 수업 속에서 비판적 사고력, 정보 판별력, 시민적 판단력을 함께 길러주는 과정으로 설계되어 있다. 교육부 산하 끌레미는 교사 연수와 자격 인증, 교육 자료 개발, 지역 단위의 ‘끌레미 코디네이터’ 운영 등 국가-지방-학교의 3중 연계 구조를 통해 제도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있다(진민정, 2023).

 

이러한 사례는 한국의 미디어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즉, 우리나라도 이와 같은 제도적 기반을 참고하여 범정부적 교육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중앙과 지역, 학교가 연계된 체계적인 미디어 리터러시 정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부처별로 분산된 미디어 리터러시 사업을 통합 관리할 수 있는 국가 미디어교육위원회(가칭)를 만들고, 부처 간 협력 체계를 제도화해야 한다. 이 위원회는 국가 차원의 미디어 리터러시 정책을 총괄하면서, 법·예산·인력·평가를 포괄하는 통합 관리의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이다.

 

또 미디어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해 교사와 강사 양성 체계의 전문화가 필요하다. 교육대학과 사범대학에 ‘미디어교육’ 관련 전공과목을 필수화해 예비 교사들이 미디어교육을 체계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공적 교육체계 안에 포함시켜야 한다. 이와 함께 현재 우리 사회 곳곳에서 미디어교육의 많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미디어 강사에게 교육자로서의 자격을 부여하는 국가 공인 미디어교육사 인증제를 도입해야 한다. 이러한 제도화는 교·강사들이 전문성을 갖춘 교육자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다. 나아가 이 토대를 바탕으로 교·강사의 전문성 향상을 위해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과 지속적인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아울러 지역 단위의 거버넌스형 미디어 시민교육 네트워크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지자체, 지역 언론, 대학, 시민단체, 미디어센터가 협력하여 지역사회의 공론장을 확장하고,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지역형 미디어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지역 방송국과 연계한 ‘청소년 시민저널리즘 프로젝트’, ‘노년층 디지털 스토리텔링 아카데미’, ‘이주민 커뮤니티 미디어 워크숍’ 등을 제도적으로 지원함으로써, 미디어 리터러시가 현장의 민주주의 실천 교육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추진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인공지능과 데이터 기술이 우리 사회의 의사소통의 구조를 바꾸는 시대에 걸맞게, 비판적 알고리즘 리터러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기술 이해가 아니라, 데이터가 사회를 어떻게 재편하는지를 성찰하고, 플랫폼 권력에 대응할 수 있는 시민적 판단력을 기르는 교육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알고리즘의 작동 원리, 데이터 편향, 개인 정보의 활용 구조 등을 분석적으로 탐구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시민이 스스로 정보 주권을 지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림 3] 정부가 발표한 미디어 역량교육 추진 과제 중 하나인 ‘생애주기별 교육설계표(안)’ (출처: 문화체육관광부 ‘미디어 역량교육 지원전략’ 보도자료)
 

마지막으로, 미디어 리터러시는 특정 세대나 학교에 한정된 교육이 아니라 평생학습 체계로 제도화될 필요가 있다. 공공도서관, 평생교육원, 지역 미디어센터 등 생활권 기반 기관을 통해 전 세대가 참여할 수 있는 미디어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세대별로 다른 미디어 환경과 학습 수준에 맞춘 맞춤형 교육 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평생 학습을 통해 키워나가야 한다’라는 원칙 아래, 미디어교육이 시민의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갱신되는 구조를 마련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같은 정책적 노력은 미디어 리터러시를 개인의 기술 향상이 아닌, 민주주의의 지속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공적 제도로 정착시키는 실질적 출발점이 될 것이다.

 

 

참고문헌

진민정, <AI 시대 미디어교육의 방향성: 프랑스 미디어교육과 교·강사 양성 시스템>, 한국언론학회 미디어교육특별위원회 (출처: 문화체육관광부 ‘미디어 역량교육 지원전략’ 보도자료) 발제문, 2023